여기, 사랑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한 남녀가 있다. 1949년 나치의 지배에서 벗어나 공산주의 국가가 된 폴란드는 민중의 노래를 조명한다는 명분하에 민속음악단 ‘마주르카’를 결성한다. 당에 의해 마주르카 책임자로 임명받은 빅토르(토마즈 코트 분)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분을 속이고 마주르카에 입단한 줄라(요안나 쿨릭 분)에게 한눈에 반한다. 줄라 역시 빅토르를 사랑했지만 정치적 사상을 의심받는 그를 당 간부 카츠마렉(보리스 로직 분)에게 보고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결국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빅토르와 줄라는 뜨거운 사랑을 나누지만,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로 망명하자는 빅토르의 제안을 거절한 줄라는 이별을 택하고, 그렇게 빅토르와 줄라는 영영 헤어지는가 싶었지만 운명의 장난은 이들을 끝까지 놔주지 않는다.

영화 <콜드 워> 스틸 이미지

<이다>(2013)를 통해 주목받은 파벨 포리코보스키의 신작 <콜드 워>(2018)는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오직 음악과 사랑밖에 몰랐던 두 남녀의 멜로드라마를 통해 이 연인을 갈라놓을 수밖에 없었던 냉전의 엄혹함을 그리고자 한다. 줄라와 빅토르는 음악을 사랑했고, 서로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은 야속하게도 바라는 모든 걸 다 이뤄주지 않는다. 원하는 하나가 이뤄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또 다른 소중한 것을 거두어 간다.

헤어짐과 재회를 반복한 줄라와 빅토르에게도 사랑, 음악 모두를 가질 수 있었던 시기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 달콤함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냉전보다 더 차갑고 냉정한 서로 간의 오해, 질투로 줄라와 빅트로의 사이는 멀어져 갔고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영화 <콜드 워> 스틸 이미지

하지만 서로를 단념할 수 없었던 줄라와 빅토르는 사랑을 이루기 위해 가시밭길에 기꺼이 뛰어드는 선택을 감행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이룬 부와 명예, 하고 싶은 일, 자유까지 포기하면서 사랑을 택하는 줄라와 빅토르의 선택이 납득이 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서로를 열렬하게 사랑했던 감독의 부모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는 <콜드 워>는 말한다. 어떠한 시대적, 정치적 한계도 줄라와 빅토르의 영원한 사랑을 막을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서로를 파괴하면서 일구어낸 사랑을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이다>에서 구현된 포리코보스키 감독만의 절제된 흑백미학으로 빚어낸 줄라와 빅토르의 사랑은 충분히 매혹적 이지만 쉬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많은 걸 포기하고 나서야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던 줄라와 빅토르의 운명은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이 영화에서나 가능한 비현실적인 일임을 깨닫게 한다.

영화 <콜드 워> 스틸 이미지

물론 현실에도 줄라와 빅토르처럼 사랑을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는 커플들이 존재한다. 아마 <콜드 워>의 배경인 냉전시대에는 이데올로기의 장벽 때문에 많은 연인들이 실연의 아픔을 겪거나 죽음으로써 사랑을 확인하는 일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콜드 워>는 엄청난 비극으로 다가올 수 있는 줄라와 빅토르의 사랑에 초월성, 영원함을 부여하고자 한다.

영화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지만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욕망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주는 판타지이기도 하다. 사랑조차 마음껏 할 수 없었던 냉전시대의 차가움을 빌러, 두 남녀의 잔인한 운명에 낭만과 절대적인 영원을 덧입히는 <콜드 워>는 영화의 속성을 충실히 구현하는 방식으로 완벽한 러브스토리를 완성한다.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는 줄라와 빅토르를 연결하는 끈이자,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음악 또한 이들의 사랑을 더욱 인상 깊게 만든다. 냉전도 막을 수 없었던 두 남녀의 사랑, 그럼에도 진정한 영원한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을 남기는 영화 <콜드 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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