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전당대회는 누가 봐도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자유한국당 윤리위는 전당대회에 출마한 김진태, 김순례 의원의 징계를 결정하지 못했다. 윤리위원들은 화가 난 김진태, 김순례 의원의 지지자들에게 매우 시달렸다고 한다.

세 문제 의원의 행위는 상식으로 본다면 모두 제명감이지만 그렇다고 경중의 차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백번을 양보해도 김순례, 이종명 의원의 행위는 우리 정치가 어떤 이유로도 용납해서는 안 되는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진태, 김순례 의원에 대한 징계는 전당대회 이후 재론될 것이고 제명 처분을 받은 이종명 의원의 경우도 의원총회의 추인이라는 마지막 관문이 또 남아있다. 이 결정이 어떻게 되는지에 주목한다.

흥미로운 것은 보수언론도 일제히 이들 행위의 비상식을 질타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언론들은 특히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극단주의자들, 이른바 ‘태극기 세력’에 대해서도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까지 ‘진보’들이 주로 동원한 레토릭이었던 ‘탈진실’, ‘가짜뉴스’ 등의 표현이 나올 정도이다. 보수적 논자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인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15일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칼럼에서 “‘5·18 망언’은 탈진실과 음모론이 얽힌 반동적 지역감정의 산물”이라면서 유공자 혜택 등에 관련된 가짜뉴스의 실상을 조목조목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런 글에 대해서도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지만원 씨나 ‘태극기’들은 윤평중 교수가 광주 출신이라는 점을 물고 늘어질 것이다. 이들은 조선일보가 호남 출신 인사들에 장악되면서 과거의 ‘정론’적 스탠스가 무너졌다는 음모론을 믿는다. 그러나 이런 인식 속에서도 조선일보의 본류(?)라고 볼 수 있는 김대중 고문과 같은 사람들도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드러난 현실에 비판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김대중 고문은 얼마 전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단절하지 못하는 보수정치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당 대표 후보로 나선 김진태 의원(오른쪽)과 최고위원 후보로 나선 김순례 의원이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수언론의 이런 태도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첫 번째는 어쨌든 최소한 언론으로서의 기능이 작동한 차원이다. 예를 들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도 이런 모습이 일부 나타났다.

두 번째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국면에 언론적 개입을 시도한 결과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들은 이런 태도를 통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개혁보수 깃발을 통한 수도권 승리에 영남권의 자유한국당 지지세력이 동의해야 보수정치의 위기를 탈출할 수 있다는 주장에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개 동의할 것이다. 물론 황교안 전 국무총리도 표현은 다르지만 유사하게 해석할 수 있는 주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보수언론들의 의중은 유력 후보인 두 사람 중 누가 대표가 되든 김진태 의원이 유의미한 득표를 해 전당대회 이후 자유한국당의 노선에 일정 이상의 영향을 미치는 것은 차단해야 한다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주요 언론이 하나가 돼 비판을 퍼부을 정도에 이른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의 비상식도 중요하지만 이 상황이 가리고 있는 다른 부분을 함께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진태 의원이 상징하는 ‘태극기’들을 배제하면 정론과 합리주의에 기반한 바람직한 정치적 담론 형성이 가능해지는 것일까? 우리 정치의 위기는 이 질문에 선뜻 답을 내놓기가 어렵다는 것에서 더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김진태 의원과 태극기들을 경계하는 보수언론들이 그동안 스스로 만들어 온 ‘프레임’을 되짚어보면 이런 문제가 드러난다. 보수언론들은 거의 모든 문제제기를 민주정부와 ‘진보’들이 내로남불, 위선, 무능, 탓, 척, 무조건적 옹호, 대안없는 반대 등을 하고 있다는 프레임에 맞춰 내놓아 왔다.

이를테면 최저임금 인상의 경우, 어차피 다 ‘똥 묻은 개’의 처지인 것은 다를 바 없으면서 정권이 착한 ‘척’ 하는 ‘위선’적 태도를 취하면서 나온 정책이라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경제가 위기에 빠졌으니 정권의 ‘무능’이 드러났는데, 정부는 통계를 조작해 문제가 없는 ‘척’을 하고 집권당은 최저임금 인상론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할 뿐이며 그러면서 보수정치의 전통적 노선에 대해선 ‘대안없는 반대’를 일삼고 탈원전 같은 비현실적 정책 아젠다를 밀어 붙인다는 것이다.

운동권 참모들에 둘러싸인 청와대가 탓과 척을 하며 옹호 뒤에 숨어 반대를 일삼고 위선적 내로남불을 자행하는 배경에는 ‘불순한 동기’가 있다. 운동권들끼리 ‘나눠먹기’를 하겠다는 것이거나, 정치의 파당적 이득을 채우기 위해 공적 이익을 희생하는 포퓰리즘이거나, 뭔가 태생적으로 ‘종북’이기 때문이라는 식의 설명이 이에 해당한다.

14일 오후 대전 한밭운동장 다목적체육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3차 전당대회 충청ㆍ호남권 합동연설회에서 당 대표 후보로 나선 김진태 의원이 당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세계관이 본질적으로 지만원 씨나 김진태 의원을 지지하는 ‘태극기’들의 그것과 얼마나 다를까? 사실 5.18 북한군 개입설은 어떻게 봐도 부정할 수 없는 악행을 스스로 저질렀다는 것에 대한 보수정치의 정치적 방어기제로 볼 수 있다. 잘못을 원천적으로 부정할 수가 없으므로 ‘나만 잘못’한 게 아니라 ‘너도 잘못’한 사건인데도 한쪽이 일방적으로 ‘민주화운동’임을 선언하고 유공자를 정파적으로 선정해 이익을 배분하고 있어 문제라는 서사를 고안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민주정부’가 드러내는 여러 한계와 문제를 침소봉대하는 방식으로 제기해 오히려 문제제기를 우스운 일로 만드는 일만 반복하는 이유도 사실은 같은 데서 찾을 수 있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과 탄핵을 부정할 수가 없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과연 5년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드루킹과 킹크랩이 국정원의 선거개입보다 더 큰 문제”라고 주장하며 ‘문재인의 최순실’을 찾는데 골몰하는 것이다.

이런 서사의 형식은 앞서 지적한 보수언론의 프레임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런 전제를 놓고 보면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보수언론이 김진태 의원과 ‘태극기들’을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스스로를 ‘정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와 근본적 문제를 회피할 수 있게 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이런 행위는 보수세력만의 전유물이라고 볼 수도 없다.

어쨌든 정치와 언론이 합작으로 재생산하는 이런 세계관은 오늘날 개혁이나 합리를 내세우는 정치노선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급진화를 초래한다. 정치가 내세우는 노선이나 가치는 근본적으로 믿을 게 못 되기 때문에 ‘각자도생’만이 유일한 남은 길이라는 믿음을 더욱 강화한다는 것이다. 비극은 이렇게 만들어진 ‘각자도생’과 태극기들 식의 퇴행이 결국 만날 때 배가된다. 이걸 우리는 이미 이명박 정권의 탄생으로 경험했고 외국인들은 도널드 트럼프 등 극우포퓰리즘을 통해 겪고 있다. 이런 일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개혁’을 자처하는 정부가 실제 성과를 내고 사람들에게 개혁에 대한 희망을 주는 정치를 되도록 잘 유지하는 것이다. 희희낙락이 아니라 타산지석과 반면교사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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