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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 이유 있는 소년의 절규, 끝내 성찰에 이르게 하는 성실한 응시[미디어비평] 너돌양의 세상전망대
너돌양 | 승인 2019.02.14 15:26

자신이 저지른 일을 책임지지 못하는 어른들 속에서 자인(자인 알 라피아 분)은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책임지려고 노력하는 ‘어른 아이’다. 난민 혹은 불법체류자로 살고 있는 것 같은 자인의 부모는 아이들을 호적에 올리지 못하면서도 계속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을 거리로 내몬다. 

학교 다니는 또래 아이들을 동경하고, 악동 짓을 하긴 했지만 자신의 인생에 큰 불평불만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자인이 폭발한 것은 여동생 사하르(하이타 아이잠 분)의 결혼 때문이다. 16명의 아이를 둔 자인의 부모는 입 하나 줄여야겠다는 심정에서 이제 막 생리를 시작한 11살 딸을 그녀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은 동네상점 직원에게 시집을 보낸다. 동생의 매매혼에 강력하게 반발하지만, 이를 저지할 아무 힘이 없었던 자인은 집을 뛰쳐나가고, 한 놀이공원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홀로 아이를 키우고 살아가는 미혼모 라힐(요르다노스 시프로우 분)을 만난다.

영화 <가버나움> 스틸 이미지

지난해 열린 제71회 칸영화제에서 관객들의 압도적인 찬사를 받으면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가버나움>(2018)은 현재 내전으로 폐허가 된 시리아와 인접해있는 레바논 등 현재 이슬람 국가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총망라한 영화다. 난민 혹은 불법체류자로 추정되는 자인의 부모는 아이들만 낳을 뿐, 생계를 위한 어떤 노동도 돌봄도 하지 못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생계의 책임은 오롯이, 이제 겨우 12살(혹은 13살) 소년에 불과한 자인과 그의 동생들에게 떠넘겨진다. 자인의 부모는 이렇게 항변한다. 우리는 그저 열심히 산 죄 밖에 없어요. 

자식들을 거리에 나앉게 하는 부모, <가버나움> 자인의 부모는 무책임 그 자체이다. 이 가족의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무책임하게 아이만 낳는 자인의 부모를 비난할 수도 있다. 모두들 자신의 문제에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아예 책임질만한 일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 

영화 <가버나움> 스틸 이미지

다소 모호하게 느껴졌던 자인의 가족 상황은 자인의 부모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에티오피아 출신 불법체류자의 등장으로 구체화되어 간다. 자인의 부모와 달리, 라힐은 자신이 낳은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행여 자신과 아이 모두 레바논에서 추방됨은 물론 아이마저 빼앗길까봐,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가정부까지 그만둬야 했던 라힐은 갓난아이 요나스(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 분)를 데리고 투잡을 강행할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이를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자인의 부모도 매한가지이다. 그런데 자인의 부모는 아이들이 건강하고 무탈하게 자랄 수 있게 노력하기보다, 아이들을 낳는 행위에만 열중하는 것 같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자인의 부모는 아이를 많이 낳는 것으로 자신들의 가난과 고통을 보상받으려 하는 것 같다. 자인의 부모 또한 자신이 낳은 아이들이 거리로 나 안거나, 이제 막 초경을 한 어린 딸이 팔려가듯이 시집을 가 아이를 낳다가 죽는 비참한 최후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들을 둘러싼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자인의 부모는 자식을 잃을 고통 또한 또 다른 자식을 낳음으로써 극복하고자 한다. 

<가버나움>은 자인에게 벌어진 모든 불행과 비극을 그 부모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대책 없이 아이만 낳은 자인의 부모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자인과 그의 가족이 겪는 고통은 허구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 속 자인과 사하르에게 벌어진 일들은 지금도 레바논 베이루트 빈민가, 난민촌 혹은 전쟁 혹은 기근으로 폐허가 된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고, 라힐과 같은 불법체류자 문제 때문에 전 세계가 시끄러운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영화 <가버나움> 스틸 이미지

극중 자인처럼 실제 학교 문턱조차 가지 못하고 시장에서 배달 일을 하던 시리아 난민 자인 알 라피아 포함, 출연진 대부분이 시리아 난민, 불법체류자 등 극중 인물들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비전문 배우들로 구성되어 더욱 현실감을 부여한 <가버나움>은 영화 속 자인이 처한 문제가 영화 밖 현실 세계에서도 계속되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레바논의 일상적 풍경이 되어버린 난민 위기와 거리의 아이들에게 죄책감과 문제의식을 느끼며 4년간 <가버나움> 제작 준비에 매달렸다는 나딘 라비키 감독은 촬영 후에도 출연 배우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애쓰는 한편, 자인과 같은 아이들을 위한 가버나움 재단을 설립할 정도로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 

책임지지 않는 어른들에게 상처받는 아이의 고통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 자체를 응시하고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감독의 책임감이 느껴지는 영화 <가버나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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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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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마지니 2019-03-14 16:33:49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이 가지는 책임이란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같은 시간에 살고 있는 아이들인가 싶을 정도로
    보는 내내 마음 아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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