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바른미래당이 창당 1주년을 맞았다. 바른미래당은 지난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당해 탄생한 정당이다. 그러나 바른미래당 1주년 기념식에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바른정당 출신 의원 다수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바른미래당이 이념정체성을 제대로 정립하지 않고 태생적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왼쪽)와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 (연합뉴스)

13일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바른미래당이 창당 1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이날 기념식에는 손학규 대표를 비롯해 박주선, 김동철, 김성식, 이찬열, 김수민 의원 등 과거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그러나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은 하태경, 유의동 의원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 의원과 유 의원은 각각 최고위원, 원내수석부대표 등 당직을 맡고 있다.

바른미래당은 지난 8~9일 이틀에 걸쳐 의원연찬회를 열어 바른미래당 진로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국민의당 출신 박주선, 김동철 의원 등은 민주평화당과 합당 추진을, 바른정당 출신 유승민 의원은 개혁보수 노선을 주장했다. 유 의원은 "우리 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 합리적 중도와 개혁적 보수를 포용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노선 차이로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이 바른미래당을 탈당할 가능성까지 제기되자, 지난 9일 손학규 대표는 "유승민 의원은 '당을 떠나지 않는다. 내가 당을 만든 사람이다. 창당 1주년을 계기로 바른미래당에서 내년 총선까지 확실히 간다'고 했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유 의원 측은 "손 대표께서 말씀한 발언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유승민 의원이 개혁보수 노선을 주장한 반면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은 민주평화당과의 합당을 추진하고 있다. 12일 박주선, 김동철 의원과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는 '한국정치발전과 제3정당의 길' 토론회를 열고 3세력의 결집을 주장했다.

박주선 의원은 "옛 동지인 평화당 정치세력이 바른미래당과 하나가 되면 세력이 확장되고 뿌리가 튼튼해져서 어떠한 정치적 상황이 와도 3당의 역할을 하고 존재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동철 의원은 "민주당과 한국당을 대체할 대한민국에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 중도세력을 아우르는 제3세력의 결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13일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바른정당 출신의 하태경 의원은 "지난주 연찬회 때 많은 것을 합의하지 못했으나 민주평화당과의 통합은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로 약속했다"며 "잉크도 안 말랐는데 다시 민주평화당과 통합을 거론하는 발언이 나온 것은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서 극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하 의원은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일어나면 당 차원 장계가 불가피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이 같은 바른미래당의 내부 갈등은 이념 정체성을 제대로 정하지 않고 출범한 바른미래당의 태생적 한계를 노출하는 것이란 지적이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은 지난 2017년 10월 안철수 전 의원 측이 조선일보에 합당을 가정한 여론조사를 제공하면서부터 시작됐다.(관련기사 ▶ 안철수, 또 '이합집산' 간보기 시도?)

10~12월에 걸쳐 진행된 몇 차례 여론조사에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당하면 자유한국당보다 지지율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고,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당시 바른정당 대표는 합당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호남 중진 박지원, 정동영, 천정배 의원 등이 안철수 전 의원과 등을 돌리고 민주평화당을 창당했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은 반쪽 통합이 됐다.(관련기사 ▶ 무너지는 안철수의 계산)

당시 통합정당의 이념정체성이 문제로 대두됐다. 국민의당은 호남을 기반으로 한 중도·진보진영 인사들이 주류였고, 바른정당은 새누리당을 탈당한 보수진영 인사들이었기 때문이다.(관련기사 ▶ 안철수도 모르는 통합정당의 이념적 정체성)

돌이켜보면 통합을 주도했던 안철수 전 의원과 유승민 의원의 통합 메시지는 달랐다. 지난 2017년 12월 22일 유승민 의원은 "중도보수라는 이념과 노선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는 늘 우리의 정체성이 보수에 있다"며 "그것도 새로운 보수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안철수 전 의원은 지난 2017년 12월 27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서 통합정당의 이념적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저희는 합리적 개혁이라고 생각한다"고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신율 교수가 "중도라고 보세요, 진보라고 보세요, 보수라고 보세요"라고 질문을 하자, 그제서야 안 전 의원은 "저희들은 중도개혁을 지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와 당시 상황을 종합해보면, 최근 벌어지고 있는 바른미래당 내 국민의당 출신과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의 노선 갈등은 바른미래당이 명확한 이념정체성을 확립하지 않고 여론조사 지지율을 따라 탄생한 정당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란 분석이다.(관련기사 ▶ 안철수, 극중주의서 이번엔 '진보'로 광폭 행보?)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최근 바른미래당 당내 논란에 대해 "이념적 지향이 다른 태생적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라며 "과거 신한국당의 경우 스펙트럼이 넓어도 영남이란 확고한 지지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지만, 바른미래당은 확실한 기반이 없고 지지율도 약하다"고 지적했다.

엄경영 소장은 정계개편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엄 소장은 "현재 상태로 총선을 치르면 바른미래당이나 민주평화당이나 쉽지 않다는 현실인식이 있다"며 "두 당의 통합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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