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민망했던 경험, 다시 그 상황을 꺼내놓으면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드는 폭로가 좋을 때가 있을까요? 각종 예능 프로그램은 서로에 대해 모함하고 옛 시절의 상처나 아픔을 털어놓는 것으로 도배가 되고 있습니다. 자극적이고 민감한 이야기일수록 주목받고 관심을 끌 수 있다는, 폭로는 점점 더 치열하고 잔혹한 경쟁을 강요하는 연예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편처럼 되어 버렸죠. 매일 아침이면 각종 포털 사이트는 그 전날 연예인들이 프로그램에서 털어놓은 이야기들에 대한 것으로 도배가 되고 이런저런 품평과 과거 추적으로 확대되기 일쑤에요.

하지만 어제 괴짜들의 모임 특집으로 마련한 놀러와를 보고 있자니 이런 식의 폭로도 잘만 활용하면 괜찮을 수 있다는 생각이 처음 들더군요.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기 힘든 뮤지션들이 이적의 앨범 홍보를 돕기 위해 모인 그 자리에서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틈틈이 꺼내놓는 폭로들은 전혀 불쾌하지도 짜증나지도 않았거든요. 이적이 나이트클럽에서 장윤주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라든지, 루시드폴이 만취상태에서 실수를 했다든지, 대부분 홍일점 장윤주를 통해 전달된 폭로들이라는 게 웃기지만 찝찝하던 다른 폭로들과는 달리 오히려 유쾌하고 재미났었어요.

그게 그런 겁니다. 근래 방송된 놀러와 중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가장 많은 과거 폭로가 이어졌지만 그런 식의 과거 폭로가 반복될수록 그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음악들이 만들어준 일종의 편견, 혹은 선입관들이 기분 좋게 녹아내리는 순간이라고나 할까요. 모범생처럼 보이고, 딱딱하고 뭔가 접근하기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의 빈틈을 발견하는 기분 좋은 접근? 아 저 사람도 그렇구나. 저런 모습은 의외인데? 싶은 그런 친근함을 만들어주는 계기로 활용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들이 보여준 1시간이 마치 친한 친구들끼리 모인 술자리에 새로운 친구들을 소개받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너 이사람 알아? 예전에 이 녀석이 어땠냐하면~ 하는 식으로 털어놓는, 서로 서로의 얼굴에 먹칠을 하면서 격이 없어지는 친분자리. 그러다가 흥이 나면 잘하는 노래 한가락씩 뽑으면서 서로가 어울리는 흥겨운 파티. 모두가 이름만으로도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는 뮤지션으로 음악으로는 너무나 친숙한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노래들로 마음의 위로를 받았던 것과는 또 다른 소개였어요.

우선은 어느 자리에서든지 유쾌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장윤주의 능력 덕분일 겁니다. 거침없이 과거를 말하며 좌우를 압도하는 그녀의 힘은 다른 이들의 분발을 촉구하며 끊임없이 분위기를 업시켰거든요. 그 뒤를 따라 모두가 함께 참여한 폭로잔치는 서로간의 돈독한 친분관계를 타고 예능 출연이 어색한 이들이 가진 입담쟁이의 장점들을 여지없이 끌어냅니다. 음악계의 장봉원, 애늙은이 장기하, 스위스개그를 구사하는 루시드폴 모두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는, 노래하는 괴짜들이라는 특집과 너무나도 어울리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어요.

이런 자연스러움. 혹은 편안함이야말로 누가 찾아오든지 넉넉하게 받아 줄 수 있는 관록의 주인장들이 버티고 있는 놀러와의 힘일 겁니다. 이들이 커버할 수 있는 출연진의 다양함은 다른 어떤 토크쇼보다도 넓고 다양해요. 문제를 푸는 것도 아니고, 주제를 정해 말하는 것도 아니고, 도입부에 각자 돌아가면서 노래를 하는 것 외에는 한 시간의 방송시간 동안 따로 준비한 포맷도 없는, 그저 서로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인 구성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방송 분량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역량. 이것이 313회를 넘어선 토크쇼의 능력입니다. 개편을 맞아 새로운 도전자들이 계속 생겨나긴 하지만 월요일 저녁의 지배자 자리는 흔들릴 것 같지 않아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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