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순리대로 되었다고 해야 할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보이콧을 풀고 자유한국당 대표 후보 등록을 마쳤다. 이로써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대표 후보로 출마한 사람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 황교안 전 국무총리, 김진태 의원으로 압축됐다. 물론 이 구도로 전당대회가 마무리 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김진태 의원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폄훼 논란으로 자유한국당 윤리위에 회부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만일 당원권 정지 이상의 징계를 받는다면 피선거권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어쨌든 홍준표 전 대표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대결구도는 선명해졌다. 계파로 보면 비박 대 친박, 지역으로 보면 수도권 대 영남, 추구하는 가치로 보면 개혁보수 대 안보보수(?)이다. 오세훈 전 시장이 내세우는 프레임은 ‘친박-영남-구시대적 정치’의 방식으로 2020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혁보수를 내세우며 수도권 득표를 이끄는 중도 공략을 성공시킬 수 있는 사람이 대표가 돼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논리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메시지에 힘을 실어준 게 오히려 친박들이라는 점이다. 애초 오세훈 전 시장이 이런 주장을 처음 제기했을 때만 해도 당내의 반향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두 가지 사건이 오세훈 전 시장 주장의 근거가 되는 일이 일어났다.

첫 번째는 유영하 변호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메시지’를 방송을 통해 공개한 것이다. 유영하 변호사의 주장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감옥의 불편한 점을 개선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모든 후보를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유영하 변호사는 심지어 황교안 전 총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수인번호를 알지도 못하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런 주장이 나오자마자 황교안 전 총리를 과연 ‘친박 후보’로 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불거진 것은 자유한국당 내부의 상태를 볼 때 당연한 일이었다. ‘정치초년생’ 황교안 전 총리는 특검 연장을 거부했다는 등의 논란의 소지가 있는 해명을 내놓기도 했다. 보수언론이 일제히 나서서 공당의 전당대회가 의자, 책상, 수인번호 등을 최대 쟁점으로 해서 치러지면 되겠느냐는 비난을 꺼낼 정도가 이르렀다. 구시대적 정치의 폐해가 강하게 강조되는 국면이 형성된 것이다.

두 번째는 국회의원 ‘제명’ 논의까지 이뤄지고 있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폄훼 문제이다. 이 사안은 김무성 의원이나 이재오 전 의원 등까지 나서서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을 할 정도로 보수정치 내부에서도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이 상황이 더욱 심각한 것은 자유한국당의 일부 극단적 지지자들과 이들을 대변하는 김진태 의원 등이 처음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논란을 키우고 이용할 목적으로 진상규명 논의에 개입해왔다는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라고 할 때의 ‘진상’은 발포 지시를 누가 했는지, 헬기 기총소사 등이 실재했는지 등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김진태 의원 등 자유한국당 일부 인사들은 이 ‘진상’의 범주에 북한군 개입설 등 이념적 음모론을 끼워넣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 왔고 결국 성공했다.

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 후보에 등록한(왼쪽부터) 황교안 전 총리, 김진태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연합뉴스)

이런 판국에 문재인 대통령이 자유한국당 추천 5.18 진상규명위원 임명을 거부하면서 이 사안의 파장은 배가되었다. 청와대가 거부 의사를 밝힌 근거는 이 사람들이 특별법에 규정된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진상규명위원 후보들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관련 단체 등을 통해 이미 제기되던 터였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권태오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의 경우 직업군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5.18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적절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평가돼왔다.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의 경우 1996년 월간조선에 광주민주화운동의 피해자에만 이입을 한 나머지 오보가 양산되고 있다는 취지의 기사를 게재한 게 문제가 됐다. 법조인 출신이기에 ‘자격 요건’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은 차기환 변호사의 경우 당시 조준사격은 없었다거나 <화려한 휴가> 등의 영화를 통해 사건의 내용이 왜곡됐다는 등의 주장을 해왔다는 점에서 부적격자라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런 비상식적인 인사 추천이 오히려 나름대로 반발을 고려한 결과였다는 점이다. 애초 물망에 오른 것은 5.18 북한군 개입설의 원조라고 볼 수 있는 지만원 씨였다. 지만원 씨는 본인 추천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김성태 전 원내대표의 집 앞에서 시위를 하는가 하면 나경원 원내대표를 향해서는 욕설을 퍼붓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다. 즉, 지만원 씨 대신 추천된 인물들의 면면은 광주의 비극을 아직까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부 극우적 세계관의 사람들이 자유한국당 내 여론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어쨌든 이런 상황이 부각되는 것 자체는 오세훈 전 시장의 출마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오세훈 전 시장도 이를 알기 때문에 전당대회 보이콧을 물리고 출마를 강행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오세훈 전 시장은 오락가락하는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일관한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고 바른정당 창당에 참여했으면서 슬그머니 탈당하고 자유한국당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전당대회 출마 문제에 있어서도 출마를 한다고 했다가, 출마 선언을 연기했다가, 다시 출마를 한다고 했다가, 보이콧을 한다고 했다가, 후보등록을 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이걸 유능한 지도자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지만 당분간은 이런 면모 보다는 전당대회가 ‘반쪽짜리 경선’으로 전락해 당이 위기에 빠지는 상황을 방치하지 않은 공이 더 크게 평가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이 오세훈 전 시장이 열세를 뒤집을 수 있는 결정적 근거가 될 수 있을까? 그건 쉽지 않을 것이다. 구시대적 정치가 문제라는 맥락의 돌출은 그게 실제로 존재하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는 생물이고 당장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니 전당대회의 판이 드라마틱하게 바뀔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반복해서 확인되는 것은 큰 틀에서 자유한국당이 스스로를 혁신하기보다는 극단화된 구태세력으로의 길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저런 의혹과 사건의 한가운데서도 여당의 주요 인사들이 “우리가 야당복은 있다”고 말할만 하다는 것인데, 더불어민주당 20년 집권의 꿈을 과연 자유한국당 이루게 해주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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