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요즘 자유한국당 얘기를 글로 쓰면 제대로 읽는 이가 없을 것이다. 애초에 관심사가 아니거나 너무 뻔한 얘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보수정치의 중심이자 명색이 제1야당이 그것도 전당대회를 치른다는데 다루지 않을 방도가 없다.

굳이 이런 얘길 쓴 것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7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출마 선언을 했는데 반응이 영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이미 당권주자 행보를 해온데다 대중적 파급력도 크지 않아서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오세훈 전 시장이 출마 선언을 한 것은 확실히 ‘뉴스’다. 원래대로라면 지난달 31일 출판기념회에서 출마 선언이 나왔어야 했기 때문이다.

오세훈 전 시장은 당시 사실상 출마 선언 연기를 한 것에 대해 더 고민을 해야 되고 숙성도 시켜야 된다는 얘기를 했다. 7일 출마 선언에서도 이에 대한 질문이 나왔는데, 당 내에 존재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우호 여론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는 취지의 답을 했다. 이날 오세훈 전 시장 출마선언의 핵심은 역시 “정치인 박근혜를 극복하자”는 것이었다.

오세훈 전 시장이 말한대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의 한 축은 박근혜 전 대통령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오세훈 전 시장은 명확히 선을 긋고 총선에 임해야 바른미래당과의 통합 논의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고 수도권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개혁보수’ 간판으로 총선을 치러야 그나마 수도권에서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은 물론 일리가 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조직 기반은 대부분 영남에 있고 이들의 표심이 전당대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즉, 오세훈 전 시장의 레토릭은 “영남만으로 되겠느냐”는 게 핵심이다.

이런 전략은 물론 황교안 전 총리 출마를 겨냥한 것이다. 황교안 전 총리에 대한 지지 논리는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차기 대권주자로서 여론조사상 지지율이 높고 인지도 역시 높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존재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층이 황교안 전 총리에 대해서도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세론’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만일 황교안 전 총리와 양강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면 오세훈 전 시장도 승부를 걸어볼만 했을 것이다. 다음 총선 전에 박근혜 전 대통령 문제를 정리할 거냐 이대로 안고 갈 거냐를 묻는 구도를 만들 경우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개 전자를 지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 중앙당사에서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홍준표 전 대표가 출마를 하면서 일이 좀 꼬였다. 이른바 비박계 표가 분산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홍준표 전 대표는 원래 전당대회에 출마할 계획이 없었다고 설명한다. 이른바 대선직행론인데, 이런 설명에 근거가 없지 않다. 그렇잖아도 홍준표 전 대표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후원금 문제로 선관위의 지적을 받은 상태이다. 유튜브 방송은 조직 기반이 부족하지만 예능감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홍준표 전 대표가 승부수를 걸만한 대목인데 지금처럼 법인 설립 등의 방식으로 접근하면 반드시 돈 문제가 쟁점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유튜브 방송에만 집중하고 전당대회 출마 등의 정치적 행위를 자제했으면 논란의 소지가 덜했을 것이다.

그러나 홍준표 전 대표가 출마를 결심하게 만든 일은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유튜브 방송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둘째, 황교안 대표 체제가 되면 대권주자가 공천권을 행사하는 그림이 되므로 자신의 대권전략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셋째, 오세훈 전 시장의 움직임이 기대보다(혹은 예상대로) 큰 파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오세훈 전 시장이 갖지 못한 영남권 연고를 갖고 있다. 고향이 경남 창녕이라는 것과 경남도지사를 역임했다는 것에 중고등학교를 대구에서 나왔다는 점 등이다.

만일 홍준표 전 대표 출마에 대한 반응이 본인이 주장하는대로 ‘열광적’인 수준에 이르렀다면 오세훈 전 시장의 출마에도 불구하고 황교안 전 총리와의 양강구도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나온 여론조사 결과나 언론 반응 등을 종합해보면 홍준표 전 대표 출마 역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다보니 후보단일화론까지 나오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가 애초 제기한 것은 ‘TK단일화론’이었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나 주호영 의원 등과 단일화 해 영남권 내의 비(非)황교안 여론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다. 김문수 전 도지사는 출마를 접었지만 주호영 의원은 컷오프 4인 내 진입을 노리고 있기에 당분간은 독자행보를 할 것으로 보인다. 주호영 의원 이외에 컷오프 통과 가능성이 있는 주자는 정우택, 김진태 의원 등이다. 김진태 의원의 ‘대선무효’ 발언은 이런 상황을 겨냥한 것이다.

이어 홍준표 전 대표는 7일 한국일보 지면에 실린 인터뷰에서 오세훈 전 시장을 대상으로 후보단일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세훈 전 시장은 출마선언 자리에서 이를 부정하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출마선언 단계에서 단일화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SBS 방송에 등장한 홍준표 전 대표는 재차 단일화의 필요성을 거론하며 “누가 양보할 거냐의 문제”라고 했다.

단일화는 보통 본인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쪽이 먼저 제안하기 마련이다. 오세훈 전 시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와 이후 처신이 기회주의적이란 평가와 서울시장 시절 무상급식 투표에 직을 연동해 보수정치의 위기를 촉발했다는 주장에 고전하고 있다. 오세훈 전 시장이 ‘개혁적 보수’의 정체성에 맞는지 의문인 ‘핵개발론’이라는 극단적 주장을 꺼내들었던 것도 이런 상황과 관련이 있다. 앞서의 두 문제가 보수적 지지층에게 부정적인 요인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평가될 만한 얘기를 꺼낸 것이다. 각 당권주자들의 전당대회 구도에 대한 자기 평가를 봐도 오세훈 전 시장의 상대적 약세가 확인된다. 황교안 전 총리는 대세론을, 홍준표 전 대표는 1강 1중 1약 구도를, 오세훈 전 시장은 3파전을 얘기하고 있다.

이런 여건을 보면 반(反)황교안 단일화 가능성이 제로인 것은 아닐 수 있다. 홍준표 전 대표와 오세훈 전 시장은 황교안 전 총리를 같은 논리로 비판하고 있다. 첫째는 황교안 전 총리를 대표로 내세워서는 다음 총선에서 ‘박근혜 프레임’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고 둘째는 황교안 전 총리는 ‘검증’이 덜 된 사람이라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다. 전관예우 및 고액수임료, 병역 면제 등 과거 인사청문회에서 이미 다뤄졌던 문제가 새삼 언급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오세훈 전 시장과 홍준표 전 대표 모두가 대권을 보는 이상 단일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단일화 논의가 이뤄지는 것과 별개로 오세훈 홍준표 두 카드로 황교안 대세론을 깨기는 어렵다. 유일하게 기대해볼만한 것은 황교안 전 총리에 대한 예상하지 못한 검증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하다. 홍준표 전 대표가 2차 북미정상회담 날짜 문제를 갖고 전당대회 연기론을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8일 비대위가 전당대회 연기 여부를 결정한다는데, 결론을 내리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이 결정에 따라 황교안 전 총리 출마 이후 계파 갈등 우려 등을 내놓은 김병준 비대위원장의 발언에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광을 판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되리란 생각도 든다.

황교안 대표 체제에서 ‘박근혜 간판’으로 총선을 치르게 되면 보수정치는 또 다른 구세주를 염원하게 될 것이고, 그 때는 이번 전당대회판에 없었던 사람이 다소 유리할 것이다.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황교안 전 총리도 ‘중도화’를 나름 추진하겠지만 한계가 있을 것이고 7일 유영하 변호사 등의 반응에서 보듯 일부 ‘태극기’들의 이탈도 감수해야 할 수 있다. 이렇든 저렇든 집권 여당으로서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재집권의 희망을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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