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보다 정치가 재미있는 세상이다. 자유한국당 당 대표 출마한다는 어떤 사람이 ‘총체적 난국’이라고 했다는데, 그와는 다른 의미로 ‘총체적 난국’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김경수 경남도지사 관련 판결 문제가 그렇다.

먼저 판결 자체의 문제다. 판결 다음날인 1월 31일 진보부터 보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언론이 사설을 통해 집권 여당을 꾸짖었다. 어쨌든지 간에 공론장을 왜곡해 민주주의를 파괴한 드루킹들과의 공모 사실이 인정됐으니 뭔가 반성도 하고 겸허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언론 입장에서는 그런 지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소 피상적 접근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드루킹 사건은 대선 캠프가 비밀리에 조직을 꾸려 불법 선거운동을 하다가 덜미를 잡힌 여느 사건과는 맥락이 다르다. 이런 경우 보통 자금 출처가 캠프나 당과 관련이 있기 마련이지만 드루킹들은 오히려 자기들끼리 재정사업을 해 만든 돈을 정치인을 엮는데 썼다. 선거판에서 이런 행태를 보이는 이들을 흔히 ‘브로커’라고 한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30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뒤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이 ‘공모관계’를 인정했다고 하지만 캠프 윗선에서부터 계선적으로 내려오는 어떤 체계가 있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드루킹들의 진술만을 100% 인정한다 하더라도 김경수 지사가 이른바 댓글기계인 ‘킹크랩’의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시했다고 볼 수가 없다. ‘산채’에서 시연을 통해 프로그램의 작동 과정을 보여줬고 김경수 지사가 이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는 등의 제스추어로 ‘허락’을 했다는 게 드루킹들의 주장이다. 이런 사실관계로 볼 때 ‘공모’란 결국 드루킹들이 저지르는 행위를 묵인하거나 방조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재판부는 김경수 지사와 드루킹 김동원 씨 사이에 오고 간 텔레그램 메시지 등을 근거로 ‘작업’의 지시와 보고가 일상적으로 일어났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이 대목도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드루킹들이 자기들의 실적(?)을 모아서 보고하면 김경수 지사가 알았다거나 고맙다는 취지의 의사표시를 한 것 정도에 불과하다. 이것조차 매번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김경수 지사는 당시 후보 지근거리에서 일정과 메시지 관리를 포함한 거의 모든 것을 챙겼다고 하는데, 그 와중에 드루킹들이 수집한 수많은 뉴스들의 링크를 눌러 어떤 내용의 댓글이 달리는지 추천 수는 얼마나 되는지를 따졌을 것으로 생각하긴 어렵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한 모든 가능성을 “메시지를 보냈고 읽었다”는 하나의 개념으로 퉁치고 있다.

유무죄를 논하는 것은 법리를 엄밀히 따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쨌든 이 정도만 갖고도 재판부가 김경수 지사를 드루킹들의 네이버에 대한 컴퓨터장애업무방해의 공범으로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정도가 있다. 과연 실형을 선고하고 현직 광역지자체장이라는 사실도 감안하지 않는 법정구속을 시킬 일인가 상식적으로 의문이다.

물론 김경수 지사에게 잘못이 없는 게 아니다. 김경수 지사는 ‘브로커’와 ‘지지자 모임’을 구분하지 못한 걸로 보인다. 즉, 법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맥락이 작용했을 걸로 추정된다. 첫째는 보수정치세력은 정보기관까지 동원해 덧글을 달 정도였으므로, 지지자 모임이 자발적으로 만든 매크로 프로그램 정도는 괜찮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니냐는 거다. 드루킹들의 행위를 알았으면서 만류하지 않았고 더 나아가서 소극적으로나마 이를 이용하려고까지 했다면 이런 추정이 힘이 실린다.

둘째는 다소 괴이한 면이 있긴 하지만 ‘경제민주화’ 등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드루킹들을 자신들과 철학적으로 동질적인 집단으로 간주했을 가능성이다. 그냥 2천명짜리 열성적인 지지자 모임으로만 여긴 게 아니냐는 거다. 김경수 지사가 드루킹 김동원 씨에게 정책적 판단을 문의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는 것과 센다이 총영사 등의 인사추천을 했다는 사실은 이런 추정을 뒷받침 한다. 이런 대목에서 우리는 정치 윤리의 어떤 빈곤함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건 비극이라기보다는 희극에 가까울 것이다. 김경수 지사와 여당은 네이버 댓글 여론을 왜곡해서 공론장과 민주주의를 파괴했다는 것보다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반성을 해야 한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열린 긴급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같지 않은 것을 같다고 우기는 ‘내로남불’ 논리를 또다시 들고 나온 보수세력의 행태는 이 비극적 희극의 한 축이다. 자유한국당이 정권의 정통성을 문제 삼는 것은 정확하게 2012년 대선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의 재현을 기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는 1일 사설에서 “민주당은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선 ‘상상도 못할 범죄’라고 했다. 그런데 그보다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드루킹 댓글 사건에 대해선 ‘개인 차원의 범죄’. ‘국정원 댓글이 새라면 드루킹 댓글은 파리’라고 한다”면서 “이들에게 내로남불은 체질화된 불치병이다”라고 했다.

과연 초법적 수단을 가진 정보기관이 인터넷을 통한 여론조작에 나서는 행위와 드루킹들의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댓글 추천 수 조작을 같은 층위에 놓고 다룰 수 있는 것일까? 드루킹들의 경공모와 느릅나무 출판사를 국정원에 비할 수가 있는 것인가? 국정원이 네이버 카페인가? 이런 주장이나 하니까 ‘새와 파리’와 같은 진부한 비유가 나오는 것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심을 맡은 판사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공소장에 등장한다는 등의 이유로 이 판결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수사에 대한 ‘사법부의 복수’로 규정하는 분위기다. 김경수 지사에 징역을 선고하고 법정구속을 시키는 게 구치소에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다.

아마 여당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건 진위를 따질 물증 자체가 별로 없어 판사의 심증형성 과정 외에는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지도부가 총출동하다시피 해서 이런 주장을 전면에 내세울 일인가 의문이다.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 여당의 태도로 볼 수도 없다. 오히려 개혁을 거부하는 사법부에 빌미를 줘 될 일도 안 되게 만들 수 있다.

보수세력은 집권 여당의 이런 태도를 두고 ‘사법농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입법부가 사법부를 정치적으로 압박해 2심에 영향을 미치려 하니 사법농단이고 그게 또 ‘내로남불’이라는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김경수 지사 재판 관련 정보를 변호인들에게 누설하고 청와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재판에 개입하고 말 안 듣는 법관들에게 뭔가 불이익을 줬다고 한다면 이런 주장도 인정할 수 있다. 하여간 이런 1차원적인 말장난에 지쳐가면서도 익숙해지는 국민들이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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