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과거에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감찰 시도에 대해 했다는 말이 있다. “주말 지나면 잠잠해질텐데 왜 사건을 키우냐”는 게 그것이다. 그런 생각을 할 법도 한 것이 요즘은 웬만한 사건이 아니면 뉴스의 유통기한(?)이 3일을 넘기지 못하는 것 같다. 워낙 기상천외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다 보니 이제 다들 면역이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지난주에 나온 손석희 JTBC 대표이사 관련 뉴스에 대한 관심도 그렇다. 하루종일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였지만 주말 지나자 분위기는 다소 식은 것 같다. 보수언론들이 프리랜서 기자라는 김 모 씨 주장에 대한 보도를 이어가고 있긴 하지만 이런 저런 맥락과 이유 때문인지 아주 강하게 힘을 주는 분위기는 아니다. ‘태블릿PC’ 문제 때문에 악에 받쳐 있는 사람들만 열을 내고 있는 것 같다. ‘가짜뉴스’가 주로 유통되는 메신저 단체채팅방 등은 거의 백일장을 방불케 할 정도라고 한다.

언론들은 손석희 대표이사와 김 모 씨 주장을 ‘충돌’로 다루고 있지만 ‘다른 것’보다는 ‘같은 것’에 더 눈길이 간다. 두 사람 모두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사실은 손석희 대표이사가 김 모 씨에 대한 신체접촉을 했다는 것, 채용 문제 등을 놓고 두 사람이 모종의 갈등 관계에 있었다는 것, 경기 과천시 모처에서 손석희 대표이사가 차량 접촉사고를 냈다는 것 등이다.

주장이 갈리는 부분은 신체접촉이 폭행이라고 볼 정도에 이를 것인지, 채용을 먼저 요구하거나 제안한 것이 누구인지, 접촉사고 당시 동승자가 있었는지 등인데 물론 법적 책임 등을 따지기 위해서는 이런 대목들이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 윤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런 것들은 지엽적 문제일 뿐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 논란이 우리가 처한 언론의 문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 모 씨 측이 공개한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면 손석희 대표이사는 실제로 채용과 관련한 절차 등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협박을 당하는 입장에서 상대를 달래려고 한 행동일 수도 있고 김모 씨 주장대로 치부가 드러날까 걱정이 돼서 선제적인 관리(?)에 나선 것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사적인 문제의 맥락이 작용했을 거라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김 모 씨는 과거 강남 유흥업소 성매매 의심 리스트 등에 관한 정보를 언론에 제공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또 일부 보도에 의하면 전직 FBI 요원 등이 활약을 하는 어떤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손석희 대표이사가 김 모 씨의 이러한 능력을 높게 평가해 JTBC에 꼭 필요한 인물이라는 판단 하에 영입을 시도한 것일까? 상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기는 어렵다. JTBC에도 훌륭한 기자들은 많고 김 모 씨를 그들 모두를 제칠 만큼 검증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약점을 잡혔거나 협박을 당하는 상황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최대한 법적 문제를 남기거나 혹은 특혜라는 ‘뒷말’이 나오지 않을 만한 수준에서 요구를 들어주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일부 보수언론은 손석희 대표이사가 월수입 1000만원 이상의 용역계약을 제안하기도 했다는 김 모 씨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하고 있는데, 맥락으로 살펴보면 채용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최종 확인된 후 취재와 관련된 일종의 ‘외주’를 주려는 시도를 했다는 얘기다.

손석희 JTBC 대표이사 (연합뉴스)

어쨌든 JTBC 입장에선 이런 상황 자체가 곤란한 일일 수밖에 없다. 손석희 대표이사는 JTBC 뉴스의 상징적 인물이고 방송에 관한 전권을 가지면서 뉴스진행자의 역할을 겸한다. 때문에 이번 사건은 손석희 대표이사 입장에서 뿐만이 아니라 JTBC 입장에서도 타격이다. 손석희 대표이사가 계속 화면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선 뉴스의 신뢰성에 관한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석희 대표이사를 빼고 뉴스 진행을 이어가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누가 ‘손석희’를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상황은 손석희 대표이사 한 사람이 구설에 오르면 바로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취약 조건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손석희 대표이사 단 한 사람에 의해 JTBC가 좌지우지 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결국 ‘종편’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가장 신뢰성 높은 언론인을 전격적으로 영입해야 했고, 그의 능력과 ‘브랜드’에 의존하는 구조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관점을 넓혀보면 이런 것들이 꼭 JTBC와 종편의 문제만은 아닌 듯도 하다. 오늘날 인터넷의 뉴스수용자들은 전통적인 ‘편집’의 영향으로부터 상당부분 자유로운 상태다. 그래서 최근의 인터넷 이용자들은 어느 언론사의 기사인지 만큼 어느 기자가 쓴 기사인지에 주목한다. 그래서 기자가 소셜미디어 등에 남긴 개인적 메시지가 보도의 신뢰성을 흔드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인터넷 독자들의 인식 속에서 언론사는 거대한 페이스북 그룹 정도에 불과하고 기자들은 이 그룹에 각기 글을 올리는 파편화된 개인들일 뿐이다.

언론사들은 소속 기자의 소셜미디어 이용에 관한 가이드라인 등을 만드는 방식으로 이런 조류에 대응하려고 하지만 미봉책에 그치고 있다. 그러다보니 아예 기자 개인을 브랜드화 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돌파하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기자와 연예인의 구분이 거의 무의미해진 사례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언론과 기자는 사회적 공기(公器)라기보다는 그저 상품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안주하는 듯 보인다.

상품적 가치를 기준으로 한다면 양품과 불량품은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정직하게 있는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는 기자는 양품이고 사실을 왜곡한 기사를 통해 사익을 추구하는 기자면 불량품일 것이다. 실제 우리는 ‘불량품’에 해당할 만한 기자들과 그들이 일으킨 사건을 너무나 많이 봐왔다. 그런데 언론의 윤리란 단지 정직한 인물이냐 사기꾼이냐를 판단하는 것만으로 구해지지는 않는다. 언론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이란 거짓말쟁이를 가려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섬세해야 한다.

즉, 법 논리가 아닌 언론 윤리에서의 판단 범위는 손석희 대표이사가 어떤 파렴치범이냐의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의 윤리를 다루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판단해야 하는 대목은 사건이 보도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냐는 것이다. 실제 김 모 씨가 채용됐다면 JTBC의 보도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까? 이것을 따지는 게 언론 비평의 본질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은 비평은 실종되고 기자 개인과 언론에 대한 불매선언만 넘쳐나는 사회이다. ‘손석희’라는 상품가치의 훼손 여부에만 관심의 초점이 모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론 스스로가 이를 넘어서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