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여러 글에서 자주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저는 가수 출신의 연기 초년생들이 갑자기 주연으로 등장하는 급작스러운 캐스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의 활동무대인 무대 역시도 4분 내외의 노래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일종의 연기이고, 이젠 다양한 분야에서의 개인 활동이 기본이 되었기에 노래나 춤연습 만큼이나 연기 연습도 병행하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공통점과 준비가 있다 해도 어색하고 서투를 수밖에 없는 미숙한 연기 신인이 갑자기 작품을 책임지는 주연의 자리에 올라서는 것은 시청자에게 지나친 너그러움을 강요하거든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전파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방영되는 드라마는 그들의 연기 실습을 위한 연습공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표현하는 인물에게 집중하며 그 내용을 온전히 즐기기 보다는, 누구의 연기가 어떠했는지의 여부가 한 편이 방송될 때마다 화제에 오르내리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웃긴다는 말이죠. 음지에서 한발한발 정상에 오르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하는 수많은 연기 준비생들과 신인들의 노력을 생각해봐도 가수들의 뜬금없는 주연발탁은 인기세를 뒤에 업고 무임승차한 것만 같아 왠지 떨떠름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이런 많은 불만과 편견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연기자 선언이 주는 쾌감과 즐거움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정말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묘한 매력을 느끼는 ‘배우’의 미래를 발견하는 기분 좋은 뒤통수가 바로 그것이죠. 가수 출신이라는 낮은 기대치. 처음인데 그만하면 된거지라는 사실상의 폄하를 넘어서서 그냥 신인 연기자로서의 가능성,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이끌어낼 정도의 힘을 느끼게 되는 멋진 경험이 그것입니다. 마치 ‘또 한 번의 뻔한 꽃보다 남자의 아류작’, ‘좋은 원작을 망치는 또 다른 예’ 같은 편견을 보기 좋게 극복한 좋은 작품 성균관 스캔들처럼 말이죠.

이제는 사실상 해체한 동방신기의 맴버, 박유천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편견을 가지고 삐딱하게 보기 시작했던 전 점점 이 신인 배우의 성장과 매력에 납득되어 버렸거든요. 그가 출발한 배경을 굳이 언급하지 않고, 그냥 갑자기 등장한 신인 배우라고 생각하고 바라본다고 해도 올해 최고의 신인을 가리자는 자리에서 그의 이름은 분명 유력한 수상자 후보로 오르내릴 겁니다. 성균관 스캔들에서의 이선준의 역할은 그만큼 인상적이고 멋진 배우 데뷔 무대였어요.

사실 그가 연기한 이선준은 매력을 발산하기에는 조금 답답하고 꾸준한 성실함이 필요했던, 결코 쉽지 않은 역할이었습니다. 설정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메리트를 가지고 있는, 무뚝뚝하고 거칠지만 그 속내만은 따스한 재능 넘치는 능력남 걸오, 문재신이나 재기발랄하고 깐죽거리는 남자지만 자기 안에는 신분의 절망이라는 어두움을 가진 여림, 구용하에 비해 이선준은 딱히 강렬한 매력 포인트가 부족하거든요. 원칙주의자, 반듯한 모범생이 풍기는 이미지는 확실한 주인공으로 극의 중심에 서 있기는 하지만 등장할 때마다 무언가를 압도하는 존재감이나 독특함이 아쉬운 배역입니다.

그래서 이선준은 한 장면, 대사 한마디의 강렬함보다는 꾸준함으로, 한결같음으로 그의 성실하고 강직한 성품을 납득시켜야 하는, 그러면서도 그의 개성 넘치는 친구들과 동떨어지지 않게 너무 고고해 보이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해야하는 연기 초년생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숙제였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쌓아온 힘이 폭발하는 커밍아웃 장면이 감동적이고 마음이 흔들릴 수 있도록. 이 원칙주의자의 진심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실감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를 보면서 진정으로 이선준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를 가져야 하니까요.

그리고 박유천은 이런 무거운 기대를 충분히, 멋지게 만족시켰습니다. 초반의 평온한 성균관에서의 삶에서도, 이리저리 엇갈리는 애정전선 안에서도, 마지막 금등지사를 둘러싼 궁중의 암투와 추리극의 어수선함에서도 그의 이선준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꿋꿋하게 서있는 기준점이었고, 친구들과 그의 특이한 연인의 든든한 버팀목. 지켜주어야 할 소중한 가치로 가리 잡았습니다. 청년 선비들이 학문을 익히고 품성을 단련하는 공간인 성균관이라는 의미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로서의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한 것이죠.

이제 그 마지막을 장식한 성균관 스캔들에 대한 관전평은 다양하지만, 제게 이 작품은 아이돌이 연기자, 배우로 변하는 순간을 본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물론 개인적으로 가장 빛이 났던 출연자는 역시나 쉽지 않았을 역할을 태연하게 수행하며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매력을 과시한 송중기였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죠. 이런 류의 드라마가 주는 최고의 성과는 바로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 다른 작품에서 만날 수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재능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멋지게 변신 선언을 끝낸 박유천 뿐만 아니라 다른 잘금4인방의 멤버들, 그리고 누구의 동생이 아닌 연기자 전태수의 미래도 마찬가지로 기대되구요. 끝이 아니라 시작. 이 드라마만큼 이런 고루한 말이 어울리는 작품은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군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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