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대기업의 중대한 위법에 대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두고 보수언론은 '연금 사회주의'를 운운하며, 정부가 기업에 개입하려 한다고 날을 세웠다.

23일 문재인 대통령은 공정경제추진전략회의를 열어 "공정경제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책임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를 통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하게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상생경제는 대기업 자신의 혁신과 성장을 위해서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틀린 것은 바로잡고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4일자 조선일보 사설.

보수언론은 '연금 사회주의'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24일자 조선일보는 <지금 정권이 국민 노후 자금 갖고 기업에 개입할 때인가> 사설에서 "공적 연금이 지분 보유 기업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다른 나라도 하고 있는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그 대전제는 공적 연금이 정권으로부터 독립돼 순전히 경영적인 관점에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썼다.

조선일보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 국민연금은 의사 결정 구조가 독립적이지 못하고 정부에 사실상 예속돼 있다"며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 위원장을 복지부 장관이 겸임하고 4개 부처 차관이 당연직 위원을 맡게 돼 있다. 국민연금 이사장엔 연금과는 거리가 먼 전직 여당 의원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냈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결국 정부 입맛에 따라 자의적으로 경영 개입이 이뤄질 위험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조선일보는 "문 대통령은 대선 때 '국민연금 독립성' 보장을 약속했지만 거꾸로 국민연금을 정부의 영향력 확대 수단으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며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297개에 달한다. 삼성전자·현대차·SK하이닉스·포스코·네이버 등 대표적인 기업이 대부분 망라돼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민간 기업을 지배하는 '연금 사회주의'가 현실로 벌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24일자 중앙일보 사설.

같은 날 중앙일보는 <대통령의 "스튜어드십 적극 행사"…과도한 '기업 길들이기' 될라> 사설에서 "국민연금의 정치적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는 기업의 경영권 위축, 나아가 '연금 사회주의'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며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 위원장을 겸임하는 구조에서는 정부나 정치권 입김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 기금운용본부장 추천권을 지난 국민연금 이사장도 정권에 따라 좌우되는 게 현실"이라고 썼다.

중앙일보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기업으로서는 민감한 사안이다. 상당한 기업에서 국민연금은 주요 주주"라며 "경우에 따라 경영권 향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국민연금의 가장 큰 임무는 국민이 맡긴 재산을 잘 관리하고 불리는 일"이라며 "연금의 사회적 책임도 좋지만, 어디까지나 장기수익성이 판단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썼다. 중앙일보는 "대통령 발언이 기업 경영 자율성을 위협하는 과도한 가이드라인이 되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도 ‘연금 사회주의’라고 반발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24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기업의 잘못을 바로잡는 게 아니라 기업을 때려잡는 수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특히 “일부 다른 나라에서도 공적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면서도 “공적연금의 정치적 독립이 제대로 안 되는 우리 정치 환경과는 전혀 다른 경우”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의 해당 사설과 유사한 부분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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