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일자 1면
사안, 사건의 진실 못지않게 이를 다루는 태도를 짚어내는 것은 비평의 한 역할이다.

중앙일보 2일자 기사 ‘이대통령 격노’ 심했다 싶다. 이명박 대통령의 격노와 모든 수단을 동원한 법적 대응이 앞으로 나왔다. 중앙일보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읽힌다.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지난 1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연임 로비 의혹에 이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관련돼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 것을 중앙일보는 반응을 중심으로 사실무근으로 몰아세우는 모양새다.

중앙일보가 사용한 격노라는 표현, 매우 선정적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격노란 ‘몹시 분하고 노여운 감정이 북받쳐 오름’을 말한다. 대한민국 상황에서 ‘격노’의 자격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다. 격노는 대통령의 감정상태만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날 민주당 강기정 의원은 구체적인 정황을 들어 ‘김윤옥 여사 로비설’을 제기했다. 하지만 중앙일보 3면의 작은 제목은 ‘격양된 청와대’ “참 소설 같은 이야기, 의원 아니었으면 구속감” MB '기 막힌다' 표정 지어 등으로 반박 수준을 넘어섰다.

기사 본문 내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구속됐을 것, 국가 품격을 떨어뜨리고 등의 표현은 가감이 없이 사용됐다.

“정진석 정무수석도 청와대 기자실을 찾아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 부인을 이런 식으로 깍아내린 예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청와대는 모든 법적인 수단을 강구하겠다’며 ‘대통령 부인을 들먹이면서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날조했다는 책임을 져야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재미있는 점은 중앙일보는 관련 기사에서 강기정 의원 소개를 따로 빼내 전했다는 점이다. 중앙일보는 강기정 의원은 광주 북갑이 지역구인 486 운동권 출신, 1985년 전남대삼민투 위원장을 지냈다. 정세균 전 대표 체제에서 비서실장을 지냈다고 소개했다. 강기정 의원에 대해 알아야 할 시점이라는 얘기인데, 486운동권, 전남대삼민투 위원장을 지낸 이력이 이번 의혹 제기와 무슨 관계에 있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 중앙일보 1일자 20면
다시 격노로 돌아와 보면, 세상엔 격노도 모자를 사람들이 넘쳐난다. 중앙일보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최근 KEC 사태를 소개한다. 중앙일보는 체포영장 집행에 반발해 KEC 김준일 지부장이 분신을 시도했다고 전했는데 중앙일보가 숨기고 있는 격노 차원을 뛰어넘는 사연이 있었다.

30일 KEC 사측이 교섭대표 간 독대를 요청해 오후 7시부터 교섭이 진행됐고, 밤 9시 50분께 노사 대화를 마치고 김준일 지부장이 다시 농성장으로 돌아가는 순간 경찰병력이 농성장으로 들이닥쳤다고 한다. 경찰들이 김준일 지부장을 연행하기 위해 쫓아가자 그는 근처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고, 그 안에서 시너를 붓고 몸에 불을 붙였다는 것이다.

노조 측에서는 사측의 교섭 요청은 김준일 지부장을 연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나타냈다. 실제로 그동안 노동자들 200여명이 공장안 점거농성에 들어갔지만 사측은 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노조 측에서 파업의 발단이 된 타임오프제 등을 수용하겠다고 했는데도 사측은 교섭에 나서지 않았다. 회사와 경찰이 공모해 교섭을 빌미로 김준일 지부장을 연행하려 했다는 것이다. 공정하지 않다.

대통령의 감정상태를 전하는 게 언론사의 역할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중앙일보, 공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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