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가짜뉴스 제재 방안 마련에서 한 발 물러난 더불어민주당이 우리사회 혐오표현 문제 해소를 위한 현상 진단과 해결방안 논의에 나섰다. 민주당은 다섯 차례에 걸친 관련 토론회를 바탕으로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으로, 필요하다면 법·제도 개선에도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21일 오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하는 '혐오와 차별 문제 해소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과대학 교수, 김정학 국가인권위원회 혐오차별대응기획단 팀장, 박미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여성리더십센터 소장 등이 발제를 맡았다.

이해찬 민주당 원내대표는 축사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는 포용국가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차별과 혐오가 늘어나지 않도록 갈등을 해소하는 게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지금까지 개별 의원 차원에서의 토론회에는 있었는데 당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매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김해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혐오와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며 5차례의 토론회 논의를 통해 법과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도출된다면 국회가 정부가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1일 오후 국회 도서관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주최로 '한국사회 혐오와 차별에 대한 현상진단'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첫 토론회에서는 혐오와 차별에 대한 개념과 현상 진단, 해외 규제 사례 등 총론적 논의가 이뤄졌다. 발제를 맡은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혐오표현'의 개념을 "소수자에 대한 편견 또는 차별을 확산시키거나 조장하는 행위 또는 어떤 개인·집단에 대해 그들의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 모욕, 위협하거나 그들에 대한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이라고 정의했다.

홍 교수는 "처벌에 관련된 행위뿐만 아니라 차별을 야기하고 재생산하는 거의 모든 말들을 혐오라고 한다"고 했다. 해당 정의에 따르면 '혐오표현'의 범주는 매우 넓게 설정되는데 이에 대해 홍 교수는 "과격하고 폭력적인 말뿐 아니라 사실 표현의 뉘앙스 자체는 약하거나 악의적이지 않아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한 정의로, 발화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차별을 생산·재생산하는 표현을 포함한다.

홍 교수는 한국에서의 혐오 확산 조건으로 ▲경제적 맥락 ▲선동가의 등장/가짜뉴스·허위사실 유포 ▲혐오·차별 확산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대응 실패 등을 주요하게 꼽았다. 세계적으로 악화된 불평등 구조에 취약한 어떤 개인은 우울·열등감·허탈감·불만 등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 때 한 선동가가 나타나 복잡한 구조적 문제의 원인을 단순히 한 가지 원인 때문이라고 제시하면 취약한 개인은 혹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게 소수자에 대한 혐오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빼앗아간다", "동성애를 통한 에이즈 감염이 계속 급증하면 10년 안에 세금폭탄을 맞게 될 것" 등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여성가족부 조사와 세계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를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는 응답이 31.8%(미국 13.7%, 호주 10.6%, 스웨덴 3.5%), '동성애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응답이 79.8%(네덜란드 6.9%, 미국 20.4%, 싱가폴 31.6%, 대만 40.8%, 중국 52.7%, 말레이시아 58.7%)로 나타났다.

21일 오후 국회 도서관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주최로 '한국사회 혐오와 차별에 대한 현상진단' 토론회가 열렸다. (미디어스)

때문에 한국에서도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홍 교수는 정치·사회적 대응이 중요하다며 특히 혐오표현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을 강조했다.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는 표현의 자유와 함께 실효성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홍 교수의 설명대로 혐오표현을 피해자 중심주의에 따라 정의해보면 혐오의 뉘앙스가 잘 보이지 않지만, 혐오표현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경우 이를 민·형사상 처벌의 대상으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결국 규제할 수 있는 혐오표현의 범위는 작을 수밖에 없는데 이 같은 규제가 실제 우리사회의 혐오표현을 줄이기도 어렵고, 차별과 혐오의 인식을 낮추기도 어렵다.

홍 교수는 "저는 혐오표현을 금지하자, 처벌하자는 말 보다는 '코너로 몰아야 한다'는 말을 쓴다"면서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지만 위축시켜 놓는 것이 현실적 목표다. 그러려면 정치인과 사회유력인사들이 혐오표현에 있어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혐오표현 정책은 반차별 정책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어 홍 교수는 "혐오에 맞선다는 것은 도덕적·윤리적 이유에서 맞선다는 것"이라며 동료시민(소수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무고한 동료시민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우리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직면하기 위해서 혐오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혐오표현과 관련한 가이드라인 마련과 교육기회 제공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혐오표현 예방·가이드라인 마련 실태조사(2018)에 따르면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자신이 소속된 기관에 혐오표현의 판단 기준과 처리 절차 여부에 대해 없거나, 잘 모른다고 답했다.

초중고 교사 집단에서는 '있다'는 응답이 없었고, 70.0%가 '없다', 30.0%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정부기관 공무원 집단은 50.0%이 '잘 모르겠다'고 답했으며 '있다'는 9.3%, '없다'는 응답은 40.7%로 나타났다. 기자집단은 47.7%가 '잘 모르겠다', 45.5%가 '없다'고 답했다. 각 집단별 교육훈련의 기회제공에 대한 조사결과 역시 '없다'와 '잘모르겠다'라는 응답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반면, 가이드라인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응답자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모든 집단에서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없었으며, 별로 또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집단별로 2~4명 수준이었다. 대부분의 응답자는 가이드라인이 매우 또는 다소 필요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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