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스타에서는 H.O.T의 토니안이, 이번 주 해피투게더에선 핑클의 이진이 푸념하듯, 혹은 부러운 듯 털어놓은 이야기들은 대동소이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들이 활동하던 그때, 대한민국에서 아이돌이 처음 등장했던 그 당시 아이돌 그룹이 겪어야 했던 팬들의 열광적인 사랑과 그 이면에 숨겨졌던 압박이 그것이죠. 다른 남자 그룹 멤버와는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고, 같은 분야에서 활동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수많은 여성 팬들에게 미움 받고 괴롭힘을 당해야 했던, 여자 가수들을 동료가 아닌 기피 대상으로 여겨야만 했던 남자 아이돌의 고단했던 일상고백이었어요.

같은 나이 대, 같은 생활 조건에서 비슷한 고된 일과를 살아가는 한창 때의 선남선녀들이 가까워지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일 터인데도, 이런 가까운 관계 형성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이들에겐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는 말이죠.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며, 그래서 지금 활동하고 있는 이들을 보면 부러움이 느껴진다고 말합니다. 누구에게 관심이 간다며 좋아하는 것을 거리낌 없이 말하고, 실생활에서도 친분을 유지하는 이들의 관계가 너무나 좋아 보인다고 말이죠.

이런 부러움을 가능하게 했던 일등공신은 아마 우리 결혼했어요일 겁니다. 손을 잡고 같이 데이트를 하는 것은커녕 눈조차 마주치기 힘든 것이 정상처럼 느껴졌던 아이돌들에게 무려 가상이기는 하지만 부부라는 타이틀을 수여했던 이들의 과감함, 혹은 무모함은 모범적인 선두주자 조권-가인의 1주년을 앞세우며 남녀 아이돌 사이의 벽을 허무는 시발점이 된 것이죠. 팬들 역시도 가상은 가상일뿐이라며, 환상은 환상으로 치부하고 이 프로그램을 자신들이 아끼는 스타들의 숨은 매력을 발견하고 인지도를 높여주는 도구로, 그리고 그것을 통해 대리만족을 누리는 방법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죠.

그래서 아이돌 부부로 일구어낸 우결 2기의 성공은 어쩌면 이제 아이돌도 사랑을 할 수 있고, 팬들 역시도 훨씬 더 성숙해졌다는 증거처럼 받아들여졌었습니다. 실제로 슈퍼주니어의 신동은 아예 결혼을 전제로 공개 발표를 하기도 했고, 세븐과 박한별은 그토록 오래 숨기던 인연을 결국 공개했었죠. 연예인들도 연애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아이돌도 결국은 청춘남녀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이제야 가능해진 것만 같은 착각. 그것이 우결이 앞장서서 만들어낸 소박한 거짓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신세경과 샤이니의 종현의 연인 공개 인정 이후 일부 팬들이 보여준 몰지각한 행동과 반응들은 여전히 아이돌들이 남녀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예전보다 훨씬 더 자유로워지긴 했지만 그 벽의 잔해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습니다. 개인 홈피가 폐쇄되고, 해당 소속사 동료들의 공간까지도 침해받는 무절제한 공격이 아직도 벌어진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에요. 팬들의 철없는 애정을 탓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런 일방적이고 편협한 애정이 아이돌들의 입지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임을 부인할 수도 없구요. 우리 오빠, 우리 누나가 최고라는 소유욕, 경쟁심이야말로 그들의 가장 강력한 지지대. 팬덤의 기본적인 존재 이유니까요.

이번 주의 우결에서도 200일을 맞이한 용서 커플의 깜짝 이벤트가 벌어졌고, 아담부부는 제주도로 1주년 기념 여행에서 서로를 향한 존재감을 재확인했고, 닉쿤과 빅토리아는 오붓한 드라이브 여행을 떠났습니다. 2주 만에, 혹은 한 달도 넘는 시간동안 떨어져 있다가 한번 만나서 촬영하는 장면들이지만 화면을 통해 보고 있자면 정말 진짜인 것 같고, 서로에게 진실해보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에선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재확인했던 이번 주의 작은 소동을 접한 뒤에 보는 우결은 그렇게 달콤하지만은 않더군요. 아니 그래서 더더욱 더 애틋해보였다고나 할까요?

아직도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우결은 그 벽을 허물기 위한 작은 출발점이구요. 어쩌면 현실과 가상, 방송과 생활을 뒤범벅해서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의 장점이자 약점은 지금 아이돌의 삶에 너무나도 어울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이제 이 프로그램은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살펴본다는 출발점에서 완전히 벗어나 아이돌들의 삶. 이렇게라도 연애에 대한,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욕구와 갈망을 해소하고 싶은 재능 넘치는 젊은 청춘 남녀들의 작은 소꿉놀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들의 애정행각들은 정말 한없이 단순하게 보면 달콤하지만 그 달콤함에 취해만 있기엔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아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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