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모두와 팔 하나를 걸겠다. 너는 뭘 걸래?”는 잘 알려져 있듯 영화 타짜에 등장하는 ‘아귀’란 캐릭터가 애용하는 대사이다. 아귀는 이 말로 승부에서 상대를 궁지에 몰아 결국 팔이나 귀를 못 쓰게 만드는 악당이다. 이런 말이 현직 국회의원으로부터 나오게 될 줄은 몰랐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목포 투기 의혹’을 두고 “사실이 아니라는 것에 인생과 전재산은 물론 의원직을 걸겠다”고 한 것은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들게 한다. 투기 의혹이 사실일 경우에 인생과 전재산, 의원직을 어떻게 내놓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사실 이 사건은 무엇을 투기로 규정할 것인지부터가 문제가 되는 게 사실이다. 목포 현지에서 나오는 반응을 보면 손혜원 의원 측이 소유한 건물이 십수 채에 이른다는 사실은 놀랍고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의 혜택을 봤을 수는 있지만, 해당 지역이 워낙 낙후된 곳으로 여겨졌고 손혜원 의원이 워낙 장기간 공개적으로 오래된 건물들의 보존 필요성을 제기해왔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상상하는 전형적인 형태의 투기로 보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의견도 상당수인 것 같다. 애초에 이 사건을 쟁점화 한 SBS 보도도 투기에서 차명재산 소유로, 거기에 다시 공직자 윤리에 관한 문제로 초점을 옮겨가고 있는 느낌이다.

어쨌든 법적으로 볼 때 핵심은 손혜원 의원이 국회의원으로서 갖고 있는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사전에 ‘개발’에 해당하는 정보를 입수했다거나, 아니면 재산상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해당 지역을 개발할 수 있도록 압력을 넣는 등의 구체적인 사실이 드러나느냐 여부인 것 같다. 물론 손혜원 의원은 앞서의 반응처럼 이 대목에서 의혹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 사실 여기서 방점은 “인생과 전재산은 물론 의원직을 걸겠다”는 게 아니라 “투기가 아니다”에 찍히는 셈이다.

그러나 손혜원 의원의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국회의원으로서 부적절한 행위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는 대다수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 같다. ‘오비이락’이라는 등의 표현도 나오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직자 의식’이 부족했거나 아예 없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는 자신의 업무와 연관될 가능성이 있다면 가지고 있는 주식도 백지신탁을 해야 하는 자리이다. 그런데 손혜원 의원은 좋게 봐도 이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직위를 갖고 있으면서 과거 공직자가 아니던 시기에 하던 방식 그대로 ‘자기 사업’을 추진하려 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 해당 지역의 가치있는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해 본인이 직접 나서서 건물을 매입하는 것 외의 방법이 과연 없었던 것인지 의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논란을 일부라도 해소하려면 최소한 상임위를 옮기거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여당 간사직을 내놓는 수준에서라도 조치가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에게 공직자 의식을 갖추고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것도 당이 감당해야 할 중요한 임무이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이 문제에 대해 17일 본인의 해명을 수용한다는 등의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투기 의혹 자체보다 이게 더 문제이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경우로 오면 문제는 좀 더 명확해 보인다. 서영교 의원의 문제는 현직 국회의원으로서 국회 파견 판사를 통해 재판에 압력을 행사하려 한 사실이 검찰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기소장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임종헌 전 차장은 ‘사법농단’의 핵심 인물로 꼽히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문제는 여당이 특별재판부 구성을 주장할 만큼 중요한 문제로 다루고 있다. 이 문제에 연루되었다면 중요 인물이라도 단호하게 처리해야 사법개혁의 동력을 살릴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결정한 것은 서영교 의원의 원내수석부대표 자진 사퇴를 수용하고 징계 등을 논하지는 않기로 한 것이다. 물론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의원의 입장에서 보면 중요한 당직이고 이를 내려놓는 게 상당한 희생을 감수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결국 ‘내부인의 논리’일 뿐이다.

보도에 의하면 이 자리에서 박주민 최고위원만 중징계를 주장했다고 하는데, 이런 식이면 사법개혁의 의지를 의심받는 악순환이 될 뿐이다. 국회는 판사 파견 제도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했다는데 서영교 의원이 “기억이 안 난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까지 종합해보면 파견 판사를 통한 로비와 청탁이 국회에 일상화돼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가질만 하다. 결국 이 문제도 제 머리 중이 못 깎는 그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당 지도부가 서영교 의원에 대한 징계 여부를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17일 오후 전남 목포시 근대역사문화공간 내 손혜원 의원 조카가 운영하는 카페에 손 의원의 얼굴이 새겨진 장식품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이런 문제가 반복되면 결국 오만한 여당의 태도를 보여주는 전례로 남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손혜원 의원 등의 의혹에 대해 야당이 어떤 논리와 방식을 통해 문제제기를 하고 견제에 나서는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태도는 과연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룰 의지가 있는 것인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은 17일 “손혜원 의원이 여당 간사이자 영부인의 친구라는 위세로 사익을 추구했다는 점이 국민이 생각하는 의혹의 본질”이라고 했고 나경원 원내대표 역시 “손혜원 의원은 단순한 여당의 초선의원이 아니라 영부인인 김정숙 여사와 숙명여고 동창”이라며 “초권력형 비리”라는 표현으로 이런 주장을 거들었다. 일부 인사는 “박근혜의 최순실”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단지 손혜원 의원과 김정숙 여사의 개인적 관계만으로 이 문제를 청와대 핵심부가 연루된 스캔들처럼 표현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한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런 태도는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불필요한 정파적 대결구도를 재생산해 실질적 해결책을 모색할 수 없게 만든다.

자유한국당이 이런 무리한 포석을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짜 뉴스’라는 시대적 조류에 편승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주장이 유튜브나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유통되고 있는지는 이미 안 봐도 비디오이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이 매사에 이런 태도를 취하는 이유를 좀 더 근본적 대목에서 것에서 찾을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자신들이 국정농단의 당사자라는 점을 부정할 방법이 없으니 어떻게든 상대도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어 ‘똥 묻은 개’가 ‘또 다른 똥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구도를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사건만 생기면 대통령과 그 가족들부터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국정농단과 탄핵이라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어기제라는, 심리적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대통령이건 그 가족이건 구체적 사건으로 의혹이 드러났다면 야당이 문제제기를 하는데 한 점의 망설임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합리적 수준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차분히 대안을 제시하는 게 규모를 갖춘 정치세력으로서 부활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식의 정치가 만들어 내는 폐해가 너무 심각해서 정치를 비평하는 게 의미가 없어진 세상이라는 기분에 빠져들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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