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의 투박함은 김기덕 감독의 그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후자는 워낙에 센 이야기를 더 세게 표현하려다 보니 그리 된 것도 있겠지만, 실은 그보다는 아직 채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느낌이 강해 세련미가 떨어졌다면, 전자는 다분히 의도적인 투박함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었죠.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인 '쌈마이 정신'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서 이 쌈마이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역시 액션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정두홍과 정재영이 벌인 혈투를 제가 본 영화 중 최고의 격투씬으로 꼽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기존의 장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우와~ 멋지다!"라는 감탄사는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당장이라도 싸움판에 가세하고 싶어 안달하는 치기어린 십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흥분으로 가득합니다. 그만큼 류승완 감독의 영화는 보다 날것에 가까운 에너지를 뿜어내는 이색적인 힘이 있습니다.
다만 이처럼 확연한 색깔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독이 되어 스스로 규정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 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데뷔 이래로 쭉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관객이나 평단은 그 이상의 결과물을 바랐던 탓이 크겠죠. 그런데 마침내, 류승완 감독도 이제 자신의 역작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영화를 한 편 탄생시켰습니다.
하필 최철기 반장이 독배가 든 잔을 하사받을 인물로 택해진 이유는 간단합니다. 실력도 뛰어나지만 경찰대학 출신이 아니라 여차하면 언제든지 뒤탈 없이 내칠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최철기 반장도 이를 잘 알고 있었지만 진급에서 번번이 미끄러진 탓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외줄타기를 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범행현장에는 최소한의 증거조차 남아 있지 않아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만한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애당초 경찰청장부터 최철기 반장까지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에게는 단순히 여론을 무마할 도구가 필요했을 뿐입니다. 급기야 최철기 반장은 부여받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자신이 뒤를 봐주고 있는 장석구에게 부당거래를 제안합니다. 물론 장석구 역시 자신의 이득을 위해 최철기 반장과 같은 배를 타기로 합니다. 그 결과, 두 사람은 용의선상에 올랐던 인물 중 가장 그럴듯한 자를 찾아내 범인으로 둔갑시키려는 계략을 세우게 됩니다.
한편 조작수사가 진행될수록 이들의 이해관계 뒤에는 든든한 장인을 등에 업은 주양 검사가 얽혀있음이 밝혀집니다. 그 또한 최철기 반장처럼 재벌의 뒤를 봐주고 있었는데, 그 재벌은 다름 아닌 장석구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최철기 반장과 주양 검사는 묘한 대립구도를 갖추게 되면서 서로 물고 물리는 판국에 이르게 됩니다.
두 번째는 다들 짐작하고 계시다시피 공권력을 가진 자들의 비리와 부패에 대한 고발입니다. 황정민은 <사생결단>에 이어 <부당거래>에서도 자신의 야심을 위해 경찰로서의 직권을 오용하고 남용합니다. 그 밖에도 <부당거래>에 등장하는 많은 공무원 양반들이 그러한 캐릭터로 비춰지고 있는데, 여기서 두 작품의 중요한 차이점이 나타납니다. <부당거래>는 <사생결단>의 이야기에 뼈와 살을 붙이면서 전 국가적으로 판을 키웁니다. 후자에는 그저 경찰과 범죄자의 결탁이 있다면 전자는 먹이사슬의 최상층에 군림한 자들이 점층적으로 최하층에 깔린 자들을 짓밟고 내려오는 비루한 현실을 조명합니다. 이와 동시에 정,재,검,경 그리고 언론까지 끌어들여 뼛속까지 썩은 더러운 커넥션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칩니다.
비난여론이 들끓자 대통령이 친히 경찰청에 납시는 영화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보면 이것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경찰청장이 '정치 퍼포먼스'라고 칭한 이 방문이 결국 시발점이 되어 경찰청장 - 부서장 - 반장 - 기업가 - 전과자에 이르는 부당거래가 성사됐던 것입니다. 물론 이때 을의 입장이나 의사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달리 부당거래가 아니란 것입니다. 그리고 반장과 기업가 사이에는 또 다른 부패권력인 검사와 기업가 및 언론이 한데 엮입니다. 이를 통해 <부당거래>는 먹이사슬의 구도와 함께 그들만의 공생관계를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류승완 감독은 자신의 영화의 근본이 어디까지나 쌈마이 정신에 있다는 것을 유감없이 증명합니다. 여전히 에너지가 가득하다는 점도 변함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쌈마이 정신이라 함은 싸구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팔딱팔딱 살아 숨쉬는 생선과도 같은 날것의 느낌을 지칭합니다) 그러면서 외적인 표현수단만이 아닌 내적인 이야기를 녹여내는 리드미컬한 연출력도 한층 능수능란해졌다는 것이 <부당거래>의 핵심입니다. 사실 <부당거래>는 시나리오도 좋긴 하나 치밀함과 예리함에선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도리어 류승완 감독 특유의 연출과 만나면서 시너지 효과를 얻어 정체성이 뚜렷한 영화로 탄생했습니다. 분명 <부당거래>는 날이 잔뜩 서 있는 사회비판적인 영화로 분류하기는 좀 힘들지만, 그 덕분에 차별화를 이루며 상업영화로는 어지간한 경지에 다다라 있습니다.
덧 1)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부당거래>에서 기자가 가진 힘은 검사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기업가에게 반말 찍찍 내뱉고 검찰청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장인을 둔 막돼먹은 검사가 기자 앞에서는 설설 깁니다. 왜일까요? 이것은 대통령이 이른바 정치 퍼포먼스를 벌인 이유와 일맥상통하는데, 그만큼 여론의 향방이 그들에게 치명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기자를 구워삶으려고 안달할 수밖에요. 다시 말해서 영화 속에 보이는 이 부당거래의 꼭짓점에는 바로 '우리'가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의 방문이 경찰청장에게 부당거래를 하도록 암묵적으로 지시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덧 2) 일부 기자들은 공권력에 기생하는 부패한 기자들을 묘사한 데 대해 불쾌해했다고 하던데...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게 아주 설득력이 있어 보이더군요. 참 이상하죠, 일부 기자 양반님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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