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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집, 김갑수, 5분의 미친 존재감[블로그와] 들까마귀의 통로
들까마귀 | 승인 2010.10.28 12:49

MBC의 속을 썩이는, 황금시간대이지만 오랫동안 명함도 내밀지 못했던 두 시간대. 일요일 저녁 예능라인과 수목 드라마는 강력한 경쟁자들에게 밀려 늘 침체를 거듭해왔습니다. MBC의 후속작 중 누가 먼저 부진에서 벗어나느냐가 관심의 초점이었는데 점점 스케일이 커지지만 재미는 점점 없어지는 일밤은 그렇다고 치고, 그나마 회복의 기운이 느껴지는 수목드라마가 시작했군요. 김혜수와 황신혜를 투톱으로 내세운 즐거운 나의 집은 비호감 비 때문에 비틀거리는 도망자와, PD와 작가 모두 교체라는 이상한 행보로 점점 소물이 되어 가고 있는 대물에게 견제구를 날리기에 충분한 스타트를 보여주었어요.

   
   
당연히 중심은 두 여자 배우입니다. 그야말로 욕망덩어리인 천박한 팜므파탈 황신혜와 차갑지만 맹렬한 분노를 품고 있는 김혜수. 신성우를 중간에 두고 가슴 속에 불을 품고 달려드는 두 여배우의 연기 대결이 이 드라마의 모든 것이죠. 이를 위한 장치들도 매력적이구요. 사건이 먼저 터지고, 그런 파국을 만들어낸 과거의 쌓아온 것들을 서서히 하나씩 밝혀지지만 결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드러내지 않아요. 하나씩 새로운 것이 밝혀질수록, 서로간의 갈등이 더해질수록 조금씩 사람도 위치도 변해가는, 그야말로 소름끼치는 광기와 감정의 충돌이 지배하는 세련된 갈등극. 정말 특이한 드라마가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드라마의 출발점을 강렬하게 장식한 사람은 오랜만에 복귀한 두 사람의 여자 호걸들이 아닙니다. 신성우나 이의정처럼 오랜 침묵 후에 반갑게 돌아온 얼굴들도 아니구요. 파국을 반복할 이 드라마의 방아쇠를 처음으로 당긴 인물은 분량이 얼마가 나오든 화면을 지배하는 미친 존재감의 소유자. 너무나 자주 죽음으로 하차해서 무릎팍도사가 처방을 내린 것처럼 이젠 죽어야 사는 남자가 되어버린 멋진 배우 김갑수가 그 주인공이죠. 어쩌면 그 사람만큼 이 음습한 드라마의 출발을 열어주는 데 적합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5분도 안 되는 그 짧은 등장시간 동안 이 비틀어진 남자는 수많은 의문거리를 남기며 이후의 방향을 지배했습니다. 황신혜의 과거가 있는 남편, 정신과 의사 김혜수의 상담 환자, 신성우의 생사여탈을 좌우할 수 있었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던 이사장. 그런 중심 배우들과의 관계만이 아니더라도 그 스스로도 많은 음침한 비밀을 품고 있는 긍정할 수 없는 인물. 언뜻 보기에는 신성우와 두 여자의 삼각관계이지만 김갑수는 앞으로도 등장하지도 않으면서도 묘한 꼭짓점의 하나로 은연중에 자리 잡아 필요할 때마다 언급되고 회자되면서 이 남녀들의 갈등을 고조시키고 만들어나갈 겁니다. 결코 쉽지 않은, 그만이 할 수 있는 압도적인 존재감이 가능하게 만든 것이죠.

   
   

   
   

 

 

 

 

 

벌써 몇 번째의 죽음으로 인한 중도 하차, 아니 이렇게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죽어버린 것을 보면 ‘중도’라는 말도 민망한 깜짝 등장이긴 하지만 그 몫을 충분히 넘치도록 했다고 해야겠죠. 창백한 표정, 속을 알 수 없는 눈빛, 세심한 몸짓으로 표현하는 그가 연기하는 인물들은 나오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에요. 그만큼 이 배우의 연기는 순간만을 지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두고두고 꺼내 보아도 그 힘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오랜 여운을 남깁니다. 이런 식의 하차가 불가피한 배역에 김갑수를 부르는 이유가 분명 있다는 것이죠. 그처럼 죽어도 죽은 것 같지 않은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그리 흔하겠어요?

   
   
분명 아쉽기는 합니다. 남자를 사이에 둔 감정선이 강렬하게 부딪치고, 지식 사회의 위선과 가식이 그 위를 어설프게 포장하고 있는 이런 드라마만큼 김갑수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는 없거든요. 그의 무표정한 얼굴만 클로즈업하고 있어도 긴장감이 배가되는, 즐거운 나의 집이 이 남자를 중심에 두고 진행했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길 수 있었을 겁니다. 물론 성균관스캔들에서의 모습을 보며 위안을 삼을 수는 있겠지만 추노의 선조를 연기했을 때처럼 이 남자가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 풍기는 분위기는 그야말로 전혀 다르니까요. 너무 강렬해서 짧은 등장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그래서 더욱 더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늘 품게 하는. 어쩌면 그런 기대감과 아쉬움을 안겨주는 것이 김갑수라는 배우에게 더욱 더 매료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네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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