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미디어스

Updated 2019.5.19 일 12:54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칼럼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여해, 바다와 같아라]
백종훈 원불교 교무 | 승인 2019.01.11 09:37

[미디어스] 학교정문 앞 자동차 운전면허 학원. 주머니가 가벼운 복학생은 “합격할 때까지”라는 광고문구와 수상하리만치 싼 학원비에 솔깃해 2층 계단을 올랐다. 허름한 사무실에서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등록비를 냈다. 

대개는 1종 보통 면허를 딴다. 기능시험 볼 때 언덕에서 쉽게 밀리지 않고 시동도 잘 안 꺼지며, 차고車高가 높아서 시야가 좋은 데다 엔진룸이 전면으로 나와 있지 않아 주차가 쉽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생계를 위해 용달차를 몰지 모른다는 심리도 있다. 그러나 난 2종 보통 수동에 도전했다. 응시자가 별로 없어 설사 떨어져도 곧 재시험을 치를 수 있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필기시험은 70점 턱걸이로 이미 통과했고. 이제 운전을 배울 차례였다.

안내를 따라 가보니 오락실에서나 볼법한 커다란 게임기가 있었다. 이게 뭐냐는 눈빛에 운전연습용 장비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작동법과 운전시험 합격 비결을 배웠다. 그러곤 혼자서 여러 날 시뮬레이션 기계에 의지해 반복을 되풀이하며 운전 흉내를 냈다.  

사진 출처 = www.freeqration.com

기능시험 당일 새벽 이른 시간에 약속장소에 모인 사람들은 학원에서 준비한 승합차에 탑승했다. 차는 낯선 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이건 또 뭔가 싶었다. 꼬불꼬불 비포장 길을 달리다 도착한 장소에 조잡한 운전연습장이 있었다. 거기에서 딱 한 시간. 처음으로 실제 차를 운전했다. 엉터리 실력에 운전강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찌나 타박을 주던지 주눅 들었다. 하지만 어찌어찌 운 좋게 그날 시험에 덜컥 붙어버렸다. 딱 80점. 커트라인에 걸쳤다.  

그로부터 일곱 해 뒤 2008년. 출가하여 전라북도 진안 만덕산에서 간사(행자)생활을 시작했다. 만덕산 훈련원에는 15인승 그레이스가 있었다. 당장 1종 면허가 필요했다. 때마침 2종 수동 면허를 1종 보통 면허로 바꿔주는 기준이 무사고 10년에서 7년으로 변경됐다. 

줄곧 자동변속기 차를 운전하다가 면허시험 이후 오랜만에 수동변속기 차에 적응하려니 마음 같지 않았다. 소형승용차와 달리 차체가 길어서 회전반경에도 주의해야 했다. 안 하던 일이 단번에 몸에 익을 리 없다. 신고식은 가혹했다. 오성 교무님에게 도로연수 받을 때, 동네 삼거리에서 우회전 하다가 전봇대에 차 측면을 받아버렸다. 심하게 찌그러졌다. 그래도 훈련원장님은 호되게 나무라시거나 운전대를 거두지 않으셨다.

훈련원장 농타원 이양신 교무님을 모시고 길을 가던 어느 날, 빨간 신호등을 보고 정지선에 멈췄다. 살짝 경사진 사거리다. 푸른 등으로 바뀌어 전진하려는데, 아뿔싸! 사거리 가운데서 시동이 꺼졌다. 다시 시동을 걸고 앞으로 나가려했지만 뒤로 밀리다가 다시 시동이 꺼졌다. 클러치와 액셀 페달을 떼고 밟는 요령이 서툴러서 벌어진 일이다. 그러기를 연거푸 몇 차례. 사방에서 클랙슨 소리가 울렸다.

당황한 나머지 온몸에 식은땀이 흐른다. 백미러로 간간히 뒷좌석에 계신 교무님을 훔쳐봤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두고도 아무 말 없으셨다. 가만히 눈을 감고 염주를 굴리신다. 1초, 1초가 하염없이 긴 진땀나는 시간이었다. 간절함과 집중력이 맞물려서일까. 몇 분이 더 흘러 간신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제야 한 숨 돌렸다. 교무님도 묵언을 거두셨다. 

시끄러운 경적과 교무님의 침묵, 요란했던 내가 머물던 그 순간은 흩어진 지 이미 오래이나, 그 텅 빈 자리에 부족한 후배를 믿고 기다려 주셨던 어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깃들어, 때때로 오늘의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실수를 거듭하는 이로 인해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성내지 않고 인내하며 그가 스스로 일어서기를 기도하는 ‘너그러운 나’인가? 곤경에 빠진 이를 도울 줄 아는 ‘마음이 여유로운 나’인가? 손가락질 할 뿐 그가 어찌되거나 말거나 외면하는 방관자는 아닌가? 나의 실책에만 유달리 관대하진 않는가? 

음력으로 2018년 12월 섣달이다. 이달 마지막 날 그믐밤에 고백할 답이 부끄러움이라면,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라고 어리석은 나에게 다시 물으리라. 뒤 이을 성찰과 기해년己亥年 새해 다짐이 헛되지 않도록 할 책임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 - 1616년 광해군이 출제한 과거시험 문제의 요지 

백종훈 원불교 교무  webmaster@mediaus.co.kr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2길 22 가든빌딩 608호 (우) 07238  |  대표전화 : 02-734-9500  |  팩스 : 02-734-2299
등록번호 : 서울 아 00441  |  등록일 : 2007년 10월 1일  |  발행인 : 안현우  |  편집인 : 임진수  |  개인정보책임자 : 윤희상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희상 팀장
Copyright © 2011-2019 미디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mediaus.co.kr

ND소프트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