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청와대가 KT&G 사장을 교체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기재부가 기업은행에 지시해 민간기업 KT&G 사장 교체를 시도했다는 내용이었다.

KT&G는 1997년 주식회사 전환 이후 내부인사가 사장으로 선출되고 있다. 공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전환된 여러 기업들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장 인사를 두고 낙하산 논란이 일고 있지만, KT&G는 '무풍지대'다. 정권의 외압에 영향 받지 않는 것은 분명 공기업 민영화의 취지를 잘 구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이런 KT&G의 사장 인사에 청와대가 개입하려 했다는 의혹제기는 사회적 파장을 불러오기 충분했다. 그러나 신 전 사무관 폭로의 사실 여부를 가려내기에 앞서 KT&G 경영진의 내부 카르텔 문제를 따져볼 여지가 많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KT&G를 'MB(이명박) 라인'이 틀어쥐고 있다는 의혹이 파다하기 때문이다.

▲KT&G 로고.

KT&G의 수상한 '전임 사장 가족' 후원

비영리민간단체인 사단법인 스파크는 지난 2016년부터 3회째 국방부와 함께 '국방스타트업챌린지'를 개최하고 있다. 군 장병을 대상으로 예비 창업자들을 발굴·육성하고 우수팀에 대한 인큐베이팅을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KT&G는 이 행사를 1회부터 후원하고 있다.

KT&G 사회공헌실장이 직접 국방스타트업챌린지에 매년 참여하고 있다. 위키리크스한국에 따르면 KT&G는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군 지원을 비롯한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 협조요청이 왔고, 면밀한 검토 끝에 후원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KT&G의 해당 행사 후원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전임 사장 가족 밀어주기'가 아니냐는 문제제기다. 민영서 스파크 대표가 민영진 KT&G 전 사장(현 KT&G복지재단 이사장)의 친동생이기 때문이다.

민영진 전 사장은 지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KT&G의 사장을 지냈고, 지난 2015년 배임수재, 뇌물공여 등의 혐의를 받고 구속됐다가 무죄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이후 민 전 사장은 지난 7월부터 KT&G로 돌아와 KT&G복지재단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비록 민영진 전 사장이 무죄 선고를 받기는 했지만, 비리 스캔들로 사임한 사장이 회사로 돌아가는 인사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는 현재 사장인 백복인 사장의 승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볼 여지가 많다.

KT&G의 민영진 전 사장 동생 후원은 지난 2016년 민 전 사장이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시작됐다.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전임 사장의 동생이 주관하는 사업을 재판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후원하는 것 역시 흔치 않은 일이다.

KT&G는 스파크가 주관하는 국방스타트업챌린지에 상당한 액수를 후원한 것으로 보인다. KT&G는 지난 3년 동안 국방스타트업챌린지에 2016년 3억5000만 원, 2017년 4억8000만 원, 2018년 4억3000만 원을 후원했다. 2016년 6월 13일 국방스타트업챌린지 시상식에서 민영서 대표가 "시설과 재원이 없었다면 현실화하기 어려웠을 텐데 KT&G의 후원으로 가능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KT&G 측은 국방스타트업챌린지 사업을 후원한 것은 민영진 전 사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KT&G 관계자는 "저희가 사회공헌사업을 많이 하고 있다. 국방부도 오랫동안 후원해왔다"며 "군의 청년창업프로그램도 저희 사업의 방향과 맞기 때문에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사업 주관이 민영진 전 사장의 동생이 대표로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KT&G 관계자는 "동생인 것은 알고 있었다"면서도 "그러나 사람을 보고 지원한 게 아니다. 스파크가 아닌 다른 업체가 주관했어도 사업의 방향성이 맞기 때문에 참여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KT&G의 설명과 달리 KT&G의 수상한 후원이 뿌리 깊은 사내 카르텔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미 여러 언론이 KT&G의 사내 카르텔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연관성이 깊다는 보도를 내놓은 바 있다. 당장 KT&G의 후원을 받아 국방스타트업챌린지를 주관하고 있는 민영서 대표도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청와대 정무수석 산하 시민사회비서관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한 인물이다.

KT&G의 'MB라인' 의혹

지난 1997년 공기업이었던 KT&G는 상법상 주식회사로 전환해 민영화 절차를 밟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인 김재홍 전 KT&G 사장은 1997년 KT&G의 첫 공채사장이었다. 김 전 사장은 2001년까지 KT&G 사장으로 재임했고, KT&G 복지재단의 이사장으로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재직했다.

김재홍 전 사장의 영향력은 1998년 IMF 금융위기 사태를 겪으면서 축적된 것으로 보인다. 월간조선 보도에 따르면 김 전 사장은 당시 협력업체 담당 라인이었던 장병환 당시 사업지원단장, 민영진 당시 조달국장(전 KT&G 사장), 장신현 품질관리국장 등과 함께 협력업체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구조조정으로 협력업체 수가 줄어들면서 살아남은 업체들은 KT&G와 유착관계를 맺었다는 후문이다. 2개사로 통폐합된 팁페이퍼업체 정아공업사와 유니온은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신장됐다. 김재홍 전 사장과 구조조정을 진행했던 장병환 단장은 2010년부터 정아공업사 회장으로, 장신현 국장은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유니온 사장으로 근무했다.

김재홍 전 사장의 영향력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더욱 막강해졌다. 당시 KT&G 복지재단 이사장이었던 김 전 사장은 민영진 전 사장을 KT&G 사장으로 밀어주고자 했다. 당시 사장이었던 곽영균 전 사장이 민영진 사장 만들기를 반대하자, 김 전 사장이 청와대를 통해 곽 전 사장의 뒷조사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월간조선 보도에서 KT&G 전직 임원은 "당시 한 청와대 기획비서관에게 직접 메시지가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김재홍 전 사장의 지원 속에 사장직에 올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민영진 전 사장은 김 전 사장의 최측근이었다. 민 전 사장의 친동생인 민영서 스파크 대표는 이명박 청와대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한 인물이다. 김 전 사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촌처남이기 때문에 관련성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현재 KT&G 사장인 백복인 사장은 민영진 전 사장이 직접 점찍은 후임자라는 설이 제기된다. 지난 2015년 민영진 전 사장은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대표직에서 물러났는데, 민 전 사장이 당시 전무였던 백 사장을 후임으로 정했다는 후문이다. 월간조선 보도에서 한 KT&G 전직 임원은 "민 전 사장으로부터 각종 특혜를 제공받은 사외이사들과 노조는 '외부 낙하산 절대 금지, 내부사장 선임'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백복인을 차기 사장으로 낙점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는 민영진 전 사장이 KT&G 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영전한 것이 백복인 사장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일요시사 보도에 따르면 KT&G 내부 관계자는 "백 사장 승인 없이 민 전 사장이 KT&G에 복귀하는 건 불가능하다. 민 전 사장은 비리로 검찰 수사 때 사임한 전 사장이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는 건 악수"라며 "백 사장은 민 전 사장의 최측근이다. 이들은 KT&G 'TK카르텔'의 정점"이라고 주장했다.

KT&G 복지재단의 이사 중 일부가 민영진 전 사장과 두터운 친분관계가 있다는 의혹도 있다. 일요시사 보도에 따르면 일간지 기자 출신인 이 모 이사는 민 전 사장이 추천했으며, 탤런트 이 모 씨는 고 모 전 KT&G 사외이사의 추천으로 선임된 것으로 전해졌다. 고 전 이사는 민 전 사장과 친분관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고 전 이사는 백복인 사장의 추천으로 KT&G 사외이사를 지냈다고 한다.

KT&G 내부 카르텔 의혹에 대해 KT&G 관계자는 "김재홍 전 사장은 전매청 말단부터 시작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며 "자꾸 이명박 전 대통령과 연관을 시키는데 김재홍 전 사장은 그것과는 별개로 성공한 분"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저희 회사 이사회는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지배구조를 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투명하게 경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KT&G 측은 민영진 전 사장의 KT&G복지재단 이사장 선출에 대해 백복인 사장과의 관계성은 없다는 입장이다. KT&G 관계자는 "(민 전 사장이) 몇 년 동안 고초를 겪었지만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억울한 건 논외로 치더라도 회사 내에서 경영을 하면서 사회공헌의 틀을 잡은 분이 민 전 사장"이라며 "KT&G와 복지재단은 다른 법인이다. 그 안에서 판단을 해서 사회공헌 철학을 갖고 계신 분을 선임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