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유시민 대 홍준표의 대결이 시작되었다는 듯한 묘사가 많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팟캐스트와 유튜브 방송을 주제로 한 활동을 시작하였기 때문인 것 같다.

유시민 이사장의 첫 방송은 문정인 대통령 특보가 나와 북미관계에 대해 설명하는 등 바람직한(?) 형식과 내용으로 진행됐다. 유시민 이사장은 7일 팟캐스트 ‘고칠레오’를 통해 본인의 정계복귀설 등의 보도를 바로잡는 내용의 방송을 공개한다고도 한다. 그러니 언론이 그동안 현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뉴미디어 내 지형에 유시민 이사장의 행보가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팟캐스트는 그렇다 치고, 유시민 이사장이 보수에 유리해져 있는 유튜브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전에서 유리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유시민 이사장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 기반 매체들이 갖는 특유의 속성 때문이다.

첫 번째 문제는 어쨌든 현 정부는 방어적 입장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비주류는 국정에 책임을 지지 않기에 비교적 부담이 없이 자유롭게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국가를 실제로 통치하는 입장에선 이런 문제제기들에 성의 있게 답하기가 쉽지 않다. 한 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수십 개의 답변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유시민 이사장은 현 정부의 국정운영에 직접적 책임을 지는 위치는 아니다. 하지만 팟캐스트와 유튜브 방송을 통해 하려는 일은 마찬가지다. 그 점에서 시간이 갈수록 지지층이 열광할 수 있는 동력을 이어가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최근 보수세력의 행태는 정치적 구도를 상정해 싸움을 거는 전형적 형태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데에 있다. 대통령의 동선을 북한 문제와 연결시킨 것도 그랬지만 국채를 발행해 북한을 지원하려고 한 거 아니냐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그 창의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결국 문재인 정권은 ‘종북’이라는 색깔론의 다양한 변주가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보수세력이 인터넷을 통해 퍼뜨리는 주장은 거의 색깔론이거나, 아니면 정권의 핵심을 ‘착한 무능력자’로 만들어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것이거나, 좌편향적 정책을 맹신해 경제를 위기에 빠뜨렸다거나, ‘적폐청산’의 탈을 뒤집어 쓴 ‘내로남불’과 ‘이중잣대’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 등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으로 보면 문재인 정권은 취임 후 2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과도한 개혁적 정책을 밀어 붙여 실제 사회를 혼란의 도가니로 만들었어야 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특히 경제정책의 영역에서 최저임금 인상 외에는 변화를 추동할만한 계기를 만들려 한 게 없다. 오히려 일부에선 적기에 제대로 개혁을 추진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적 평가를 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바뀌었나”라고 하지 “바꾸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대다수 사람들은 이 정부가 잘한 일로 대북정책을, 아쉬운 점으로 경제와 민생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을 꼽는다. 수차례 지적했듯 전자는 범위가 좁고 후자는 넓다. 결국 대북정책 외에 성과를 낸 걸 말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유시민 이사장이 유튜브 방송의 첫 게스트로 문정인 특보를 선택한 게 나름의 이유가 있는 셈이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이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 등과 방송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하여간 “바뀐 게 없다”는 감각을 “어차피 똑같다면 솔직하고 화끈한 게 낫다”는 논리로 잇는 마술이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보수세력이 그런 일에 정통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인터넷이라는 형식의 특성을 빼고 말할 수 없다. 음모론에 기댄 정치적 냉소주의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는, 지금으로서는 거의 유일한 길이다. 그런데 세상을 완전히 이해하기에 충분한 지식을 갖추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과거에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공적으로 피력할 수단 자체를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나름의 전문성을 갖춘 기성 정치와 언론이 사람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래서 제한된 주체들이 참여하는 공론장이란 시스템이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논의를 가능케 하는 측면이 분명 있었다. 동시에 여기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기득권을 형성했기에 그들만의 리그에서 일어나는 문제도 있었다.

그런데 인터넷 특히 소셜미디어가 대중화 된 세상에선 누구나 자기 의견을 공적으로 피력할 수 있고 어떤 경우엔 심지어 이를 강요(?)당한다. 과거 인터넷을 통한 공적 발언은 ‘익명성’의 보장을 핵심으로 했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익명성’이 어떤 ‘예외’에 해당한다. 전직 사무관이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여과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런 변화는 모두의 의견이 체제에 반영되는 민주주의를 가능케 할 것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우리의 절망적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비극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조회 수가 곧 수익과 직결되는 시스템은 세상사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오직 시장적 가치만을 측정해 주장을 선별 수용하는 세태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시민 이사장이 하겠다는 것과 같은 시도들, 즉 가짜뉴스에 반박을 하고 사실을 바로잡고 정부의 정책을 공정한 잣대로 신의성실하게 평가하는 일들은 애초에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다.

실패할 것이니 빨리 그만두라는 말이 아니다. 가짜뉴스를 바로잡고 사실을 제대로 알리는 것은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사명감을 갖고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대중적 영향력이 큰 유시민 이사장이 그 역할을 충실히 맡아 하겠다고 한다면 응원을 할 일이다. 다만 우리가 이런 문제를 논하면서 유튜브 방송의 성공 여부, 또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홍카콜라’와의 대결구도와 같은 것을 넘는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피플파워”를 말하는 이 정부의 성공은 개혁적 정책의 관철이 실제로 얼마나 되었느냐를 놓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끝내 실패하더라도 실패를 거울삼아 이후에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으려면 다양한 주체들의 개혁을 향한 정치적 노력들이 평가돼야 하고 이 결과가 사회적으로 축적될 수 있는 틀이 갖춰져야 한다.

이것은 정부의 정책을 그저 ‘비판’하거나 혹은 ‘옹호’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꾸준히 넓히고 대중 스스로가 그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방법이다. 예를 들어 유시민 이사장이 ‘어용지식인’을 자처하며 방송은 해도 정치를 안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이 역할을 맡지 않겠다는 것이다. 유튜브 시장의 기울어진 운동장 얘기나 홍준표 대표와의 대결구도보다는 이 점이 더 중요할 것 같다. 청와대 바깥에서 그런 대안적 정치의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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