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박용택의 2009년은 화려했습니다. 데뷔 후 처음으로 타격왕에 오르며 생애 첫 골든 글러브까지 수상한 것입니다. 시즌 타율 0.372는 역대 타격왕 중 5번째에 해당하는 고타율로, 2002년 입단 이후 잠재력에 비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일소한 것입니다.

하지만 타격왕에 오르고도 논쟁에 휘말렸습니다. 시즌 최종전이었던 9월 25일 잠실 롯데전에서 경쟁자 홍성흔을 상대로 LG 투수들이 정면 승부하지 않았고, 박용택이 타율 관리를 위해 출장하지 않으며 정당하지 못한 타이틀 획득이라는 비판에 시달린 것입니다. 박용택이 구단 공식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시하고서야 간신히 비난 여론이 잦아들었습니다.

박용택은 2010년을 절치부심으로 출발했습니다. 주장을 맡으며 7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한 LG 부활의 선봉장으로 나서는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2년 연속 타격왕에 도전하는 포부를 세웠습니다. 시범 경기 초반 절정의 타격감은 2009년 못지않았습니다.

3월 13일 잠실 두산전에서 장민익에게 사구를 맞은 이후, 부상 후유증으로 박용택은 타격감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시즌 개막 후 타율은 1할 8푼 대까지 떨어졌고 6월까지도 2할 대 초반을 전전했습니다. 섬세한 성격의 박용택이 FA를 앞두고 평정심을 상실해 3할은커녕,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해 FA를 신청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주류였습니다. 한때 2군으로 추락하기도 했고, 취약한 송구 능력으로 인해 외야 수비에서 밀려나 지명타자로만 출장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예민한 심성의 박용택으로서는 수비를 하지 않으며 타격감을 회복하는 것이 더욱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 사이 LG는 4강 싸움에서 밀려나며 하위권으로 추락했습니다.

▲ 8월 17일 잠실 한화전에서 3회말 2사 후 류현진을 상대로 선제 솔로 홈런을 터뜨린 박용택
박용택의 부활은 가히 극적이었습니다. 7월에 21경기 81타수 32안타 월간 타율 0.395로 타격감을 끌어올린 후, 8월에도 3할 9푼대의 고타율을 유지하며 3할 도전에 청신호를 켰습니다. 결국 9월 25일 잠실 삼성전에서 3타수 2안타로 3할에 도달하며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박용택의 올 시즌 타율 3할은, 지난 시즌 0.372로 타격왕에 올랐던 작년보다 더욱 값진 기록입니다. 작년에는 4월 26일 사직 롯데전에 복귀한 이후 줄곧 좋은 타격감으로 타격왕에 올랐지만, 올 시즌에는 부상에 이은 타격감 저하로 2군으로 밀려나는 등 극도의 슬럼프를 극복하고 천신만고 끝에 달성한 3할 타율이기 때문입니다. 시련을 딛고 불가능할 것만 같은 3할에 도달했으니 내년 시즌 박용택은 예민한 선수라는 평가를 넘어 더욱 단단한 타자로 거듭날 것입니다.

박용택은 스토브 리그 FA 타자들 중 두말할 나위 없는 최대어입니다. 일각에서는 LG의 소위 ‘빅5’와 작은 이병규로 구성된 외야진이 풍부하니 박용택과의 FA 계약에 소극적일 수 있으며, 시장에 나올 경우 외야진이 취약한 팀들이 충분히 탐낼 만한 상황이라고 예상합니다.

과연 LG가 박용택을 전력에서 제외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LG 빅5의 나머지 선수들과 작은 이병규가 내년 시즌 어떤 활약을 보일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병규는 30대 후반의 나이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진영은 부상이 잦은 것이 약점입니다. 코너 수비에 약한 이택근은 내년 시즌 종료 후 FA라 LG에 잔류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대형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타격폼과 기복이 심한 성적을 보완해야 하며, 작은 이병규는 외야 수비에 약하고 내년 시즌 실질적인 2년차 징크스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양적으로 풍부한 듯했던 LG의 빅5가 올 시즌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모두 가동된 적은 거의 없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박용택도 보완해야 할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3년 연속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고, 어깨가 약해 송구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상황에 따라 박용택도 홍성흔처럼 전문 지명타자로 전업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LG가 프랜차이즈 스타 박용택을 포기해야 할 만큼의 설득력을 확보한 것은 아닙니다. 투수력이 약해 다년 간 하위권에 머물고 있지만, 박용택을 다른 팀에 내주고 얻을 수 있는 투수 보상 선수도 마땅치 않습니다. 타고투저 현상이 지속되면서 타 팀들이 보상 선수로 쓸만한 투수를 내놓지 않을 것은 자명합니다. 결정적으로 박용택을 눌러 앉힐 수 없을 만큼 LG의 자금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적정한 계약을 통해 박용택이 ‘미스터 LG’의 계보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신인이었던 2002년 기아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홈런 2개를 터뜨리며 팀을 한국 시리즈로 견인했던 박용택이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9년 만에 LG를 가을 야구로 이끌기를 기대합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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