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에 걸쳐 텔레파시 특집이라고 진행을 하긴 했지만 무한도전의 이번 특집의 주제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지난 글(무도, 텔레파시 특집의 비밀, 그들의 엄청난 자신감)에서 말한 것처럼 첫 번째 방송 분의 주제가 추억 따라잡기였다면 이번 주의 주인공은 바로 리얼함이었던 것이죠. 지금은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의 필수 과제처럼 되어버렸지만 그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작이 누구였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허술하고 밋밋하고 때로는 무식하지만 진솔함과 담백함, 솔직함을 담고 있는 것인지를 말해주는 방송이었어요.

모두가 떨어져서 동일한 장소에 모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6년간의 시간 동안 거쳐 온 장소도 많고 서로가 기억하는 인상적인 장소도 다른 만큼 이 막연하고 답답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만만한 과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만큼 과거의 추억, 서로를 향한 애틋함이 증폭되면서 나름의 찐한 감동과 감상을 던져줄 수 있는 주제이죠. 그래서 조금만 욕심을 부리면, 솔직하게 말하자면 제작진의 욕심을 좀 더 집어넣어서 드라마틱한 구성을 꾸민다든지 대본에 의한 조작을 덧붙인다면 훨씬 더 부드럽고 유연한, 보기에 좋은 그림을 만들 수 있는 주제였습니다. 어차피 TV에서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그들이 짜고 치는지 아닌지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그렇질 않습니다. 가는 길은 단 몇 분의 사이로 매번 엇갈리고, 같은 장소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손바닥만한 작은 핸드폰 하나가 없어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죠. 때로는 박명수와 정형돈처럼 조금의 어색함 때문에 보고도 모른척하기도 하고 기껏 힌트까지 얻어 놓고도 여의도공원과 남산 팔각정 사이를 몇 번씩 오르내리기를 반복합니다. 이런 되풀이도 한 두번이지 가면 갈수록 살짝 지겨워지기도, 속도감은 늘어지고 감동은 흐지부지해져버렸습니다. 실제로 프로그램 후반부의 무한도전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따로 또 같이 포맷의 특집들이 갈수록 흥미진진하게 대단원을 향해 달려갔던 것과는 달리 결말이 궁금한 것보다는 허공에 대고 텔레파시 같은 거 쏘지 말구 그냥 빨리 만나고 말지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헌데 이런 허무함, 어설픔, 예측할 수 없음이 바로 무한도전식의 리얼함이었습니다. 매우 정교하고 짜임새 있게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그 틀을 마련하면서 결과물 역시도 세련되게 풀어 넣은 편집의 묘를 보여주는 무한도전이지만 정작 그 내용은, 7명의 멤버들이 그 안에서 웃고 울며 살아가는 방식은 무척이나 단순하고 솔직하고 또 소박했어요. 마치 만나면 눈물이 날 것처럼 두근거렸으면서도 정작 감동의 만남을 한 뒤엔 5분만 지나도 별일 아니었다는 식으로 담담해지고, 무식하게 힌트만 쫒아서 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고, 그러면서도 제작진의 요구에 별말 없이 순응하며 서울 시내를 헤매고 다니는 우직함. 그것이 바로 무한도전식의 리얼함과 진정성이었다는 것이죠.

출연진에게나 제작진에게나 결코 쉽지도 않고 단순하지도 않은 작업니다. 팔각정을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하고, 똑같은 길을 되풀이해서 오고가고, 그러면서도 주변분들, 일반인분들에게 혹이나 구설수라도 날까봐 사랑해주셔서 감사해서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일까요? 당연히 빨리 끝날 줄 알고 조명장비조차 챙겨오지 않아 레스토랑 메뉴판 조명에 의지해 촬영하다 허겁지겁 공수해오고, 7명 모두에게 전담 작가와 카메라 팀을 붙여서 11시간 동안 줄기차게 서울경기 일원을 돌아다니는 특집이 제작진에게 과연 편한 작업일까요? 분명히 좀더 쉽게, 좀더 간단하고 부드럽게 갈 수 있었습니다. 대충 헤매다가 슬쩍 정보를 주거나 적절한 감동과 긴장감을 줄 수 있는 장소와 타이밍에 만날 수 있도록 알려주는 그런 조작의 유혹에 넘어 갔다면 결과물 역시도 훨씬 더 매끄럽고 간단하게 나왔을 것이구요.

하지만 묵묵하고 담백한 리얼을 강조한 무한도전의 이번 텔레파시 특집은 그런 조작과 눈속임이 줄 수 없는 의미. 몇 분의 시간, 몇 미터의 거리 상관의 엇갈림이 주는 안타까움과 막막함. 지나친 감동과 감상에 빠질 수 있었던 추억 특집의 위험을 피하는 감정조절.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한도전은 역시 막무가내이고 무모하게 도전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에 거짓은 없다는 시청자들의 신뢰를 획득했습니다. 어쩌면 6년의 시간 동안 무한도전이 보여주고 있었던, 그들이 찾아갔던 모든 장소들에서 증명했던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겠죠. 모두가 리얼이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이들은 따라할 수 없는 무한도전만의 진정성. 멤버가 변하고 도전 주제는 매번 바뀌지만 결코 변하지 않았던, 앞으로도 그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 가치를 뽐내는 방송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다소 심심했고 산만하고 긴장감이 없기는 했지만 이번 텔레파시 특집은 6년간 그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오랜 무도의 팬인 저에게 특별했습니다. 한동안 어수선했던 7인 체제를 확고하게 다지고, 프로레슬링의 커다란 감동에서 벗어나 또 다른 도전으로 나아가려는, 무언가 한번 호흡조절을 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쉼표 같은 시간이었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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