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즐겨라(아래 오즐)가 방향을 스포츠 버라이어티로 잡은 듯하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출범 이후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여자축구 대표팀과의 연이은 시합은 자체 경쟁력을 높이는 데 분명 효험을 발휘했다. 특히나 예능 초보인 정준호, 신현준, 서지석 등에게 부담감을 덜어준 점은 무엇보다 다행한 일이었다. 다만 예능 선수인 김현철, 정형돈에게는 이런 축구시합이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를 박탈한 아쉬움 또한 없지 않다.

20세 이하 축구팀에 이어서 17세 이하 여자 축구팀과 시합을 끝낸 오즐이 다음에는 무엇을 할까 궁금했는데 마라톤 이봉주 선수와 오즐 멤버 등 아이돌 42명과의 대결을 펼친다고 한다. 얼핏 남자의 자격도 생각이 나고, 무한도전도 떠오르지만 딱히 어느 것도 아닌 오즐만의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 나름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된다. 두 주에 걸친 여자 축구대표팀과의 경기도 흥미진진했지만 마라톤 1대 42의 대결도 그에 못지않은 아니 지금까지 오즐의 미션 중 가장 흥미를 유발하는 종목이 아닐까 싶다.

오즐이 스포츠 콘셉트로 전환하면서 임시 기용한 캐스터 김성주가 축구시합에서도 그의 출세작 월드컵 중계를 떠올리게 하면서 프로그램을 잘 끌어가는 내공을 보여주어 그동안의 절치부심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였다. 물론 친정 MBC로부터 외면당했던 김성주가 다시금 예전과 같지 않더라도 일밤의 고정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슈퍼스타K를 통한 존재감 재확인이었다. 그러나 일밤으로서는 매우 순발력 넘치는 기용이었다고 생각되고 앞으로 김성주의 활약이 또한 기대된다.

한편 17세 이하 여자 축구대표팀은 몇 살 차이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20세 이하 대표팀과 많은 차이를 보여 흥미로웠다. 일본팀과의 결승전에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승부를 보여주었던 그 실력은 실력대로 놀라웠고, 경기장을 벗어나서는 그저 고만한 또래의 사춘기 소녀 모습 그대로여서 또한 놀라웠다. 정말 몇 안 되는 적은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해외 큰 대회에 나가서 놀라운 성적을 거두어도 남자 축구에는 비교도 되지 못할 적은 관심이 역시나 안타깝고 미안한 감을 들게 했다.

지난주 유상철에 이어 오즐팀의 감독으로는 2002년 타이거마스크 투혼으로 유명한 김태영 현 올림픽 축구팀 코치가 출연했다. 교체 선수가 없는 오즐팀에 신현준이 빠지면서 후반전에는 직접 경기장에 들어와서는 두 골을 연이어 성공시켜서 오즐팀의 체면을 세워주었지만 유상철만큼의 예능감을 보이진 못했다. 예능감을 보이지 못했다고 아쉬웠다는 것은 아니다. 선수는 그저 선수로서 자기 몫을 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번 시합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김현철이었다. 오즐이 스포츠 버라이어티화 하면서 김현철, 정형돈의 개그가 사장되는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김현철은 이 날 골키퍼를 맡아 매서운 여자 축구팀의 강슛을 몇 개씩이나 선방해내어 이운재 선수를 방불케 하는 그라운드의 미친 존재감을 뽐냈다. 김현철은 토요일에 천하무적야구단에도 출연하지만 야구로는 전혀 활약을 하지 못하고, 지난주 필드 플레이어로 뛸 때 역시도 아무런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은 역시 일부만 보고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김현철이 그렇게나 골키퍼를 천직처럼 잘 해낼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워낙 조직력과 실력이 알찬 여자 축구팀의 파상공세에 많은 골을 내줄 수밖에는 없었지만 그래도 김현철은 결정적인 슛을 여러 개 막아냈다. 천하무적야구단의 유령같은 존재감이 아니라 축구 골키퍼로서는 이운재 못지않은 그야말로 미친 존재감이었다. 처음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슛을 막아낼 때는 그저 우연인 줄 알았던 김현철의 골키퍼 본능은 경기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또한 필드에서는 보여주지 못한 그의 천직 개그맨으로서의 넉살과 애드리브로 예능감 또한 잊지 않았으니 그를 MVP로 뽑은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김현철은 오즐 자막이 말하는 것처럼 검소한 발음으로 어눌한 케릭터로 줄곧 살아왔다. 물론 선방을 하고도 김현철은 그답게 과장된 어눌함으로 리액션을 했다. 아무리 선방을 해도 오즐은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예능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정말 한시도 잊지 않은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 무명 아닌 무명 생활 끝에 진정한 전성기를 맞은 김현철의 가능성에 더 기대하게 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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