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출신의 유튜브 폭로를 선입견 없이 보기 위해 노력했다고 썼다. 이 전직 사무관은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도 했지만 큰 일에 이르지 않았다. 여러 맥락을 떠나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꼭 이 일이 아니더라도 여당 소속 인사들이 이 전직 사무관의 ‘의도’를 문제 삼아 공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일전의 글에도 썼지만 사람이 하는 행동의 의도는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을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불순한 의도’를 찾아 공격하는 것보다는 사건의 실체를 놓고 논쟁하는 것이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더 바람직하다.

신재민 전 사무관의 주장은 일방적인 것이다. 여기서 ‘일방적’이라는 것은 근거가 없다거나 의도적인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따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획재정부 내에 존재한 문건에 등장하는 KT&G 사장 교체 시도는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 이미 언급한 대로 현 사장이 여러 구설에 휘말려 있고 이런 일이 민영화 된 공기업을 대상으로 늘상 일어난다고 해도, 문건에 적시된 것처럼 정부가 사장 교체 권한을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의 해명은 단지 현황을 파악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인데, 기업은행의 지분 등을 이용해 외부 출신 CEO 영입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은 이런 수준을 넘는다.

그런데 신재민 전 사무관과 보수세력 일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를 전임 정권에서 벌어진 국정농단 등에 비유하는 것은 무리다. 예를 들어 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 논란의 경우 국민연금이 찬반 입장을 가진 것 자체가 문제인 게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세습경영을 부당한 대가를 통해 약속하고 과도하게 산정된 합병비율에 의도적으로 찬성한 것인지가 문제가 일 뿐이다.

신재민 전 사무관 등은 KT&G를 삼성 등 대기업에, 기업은행을 우리은행 등에 비교해 부당성을 설명하려고도 했는데 이것 역시 합리적인 비교가 아니다. KT&G가 다루는 업무 영역은 법에 의해 공적 제한을 받는 측면이 있다. 기업은행도 애초에 국책은행으로서 설립된 것으로 외환위기 때 공적자금이 투입된 결과인 현재 우리은행의 상황과는 경우가 다르다. 신재민 전 사무관이 언급한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의 경우 구조조정이나 부실기업 정리 등에 실제로 적극적 역할을 이미 하고 있다.

어쨌든 이런 현실인식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 정부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 등 주요 기관투자자가 기업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도록 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말한다. 이를 통해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면 새롭게 투자를 유치할 수도 있다는 게 정부의 논리다

그런데 만일 신재민 전 사무관의 주장대로 한다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역시 정부 개입의 주요 경로로 보아야 할 것이다. 보수세력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연금사회주의’라는 딱지를 붙여 비난하려 드는 것과 유사한 세계관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연기금 의결권을 더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명박 정권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그만큼 현실적 필요성이 제기되는 문제인데, 단순히 정부의 개입 가능성 또는 유무만으로 옳고 그름을 단순화해 따질 수 없다는 것이다.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재민 전 사무관의 주요한 폭로 내용 중 하나인 국채 발행 문제로 오면 논란은 더 복잡한 양상이다. 신재민 전 사무관의 주장은 애초 기획재정부가 국채 조기상환을 추진했지만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가 오히려 청와대와 함께 국채 추가 발행을 주장하며 이를 만류해 취소됐고 이 결과 채권시장이 불필요한 혼란에 빠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김동연 전 부총리가 국채 조기상환에 반대한 이유인데, 신재민 전 사무관은 이를 부채비율 증가폭을 줄이려는 일종의 눈속임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와 김동연 전 부총리의 기획재정부가 정책적 차원에서 논의를 통해 선택한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신재민 전 사무관의 주장대로 일종의 ‘마사지’ 차원에서 논의가 된 것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김동연 전 부총리 주장대로 국채를 추가 발행했더라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신재민 전 사무관은 김동연 전 부총리를 비롯한 당시 기획재정부 고위 관리 등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숫자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내용 등을 공개했지만, 이게 ‘마사지설’을 뒷받침해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국채 발행 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 가장 합리적으로 보이는 가설은 ‘추경 실탄 확보설’이다. 국회에서의 예산 논의에서 가장 첨예한 논쟁의 소재가 되는 것은 재원 확보 방안이다. 이 구도에서 국채 발행은 늘 최악의 선택지처럼 다뤄진다. 따라서 정부 입장에서 이러한 논란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정공법이 아닌 일종의 꼼수를 선택한 것 아니냐는 거다. 만일 그렇다면 적자 국채 발행으로 세계잉여금 규모를 키우고 이를 다음해 추경에 투입하자는 언급을 신재민 전 사무관이 오해(?)해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관료가 정책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견을 갖는 문제는 정부 내에서 소화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생산적이다. 내부에서 토론을 통해 해결될 문제를 그렇게 되도록 하지 못한 조직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진단해봐야 한다. 또 이 문제가 결국 정부의 재정정책에 대한 철학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관료가 정권의 변화된 철학을 받아들이고 내면화하는 과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또 하나 짚을 것은 신재민 전 사무관의 행위를 내부고발로 볼 것인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내부고발이나 양심선언은 언론이나 사회단체 등이 조직적 지원을 하는 형태로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보호의 대상과 범위에 대한 논의가 좀 더 수월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신재민 전 사무관의 경우 새로운 형식과 수단을 통해 폭로가 진행됐다. 덕분에 무엇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운 측면이 있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윤리와 제도가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개인의 폭로가 정당한가 그렇지 않은가만 따지는 게 아니라 이런 논의도 활발하게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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