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선수들의 선전으로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입니다. 아직 선수들이 원하는 획기적인 시스템 변화가 있지는 않아도 선수들 또는 팀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는 걸 보면 새삼 실감이 나기는 합니다. 특히 지난 17일 수원월드컵경기장(빅버드)에서 열린 2010 피스퀸컵 수원 국제여자축구대회 한국-뉴질랜드 경기에는 무려 3만여 관중이 운집해 대성황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한국에서 여자 축구는 조금씩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아가고 있고, 그에 따라 많은 변화도 뒤따르지 않을까 기대감도 큽니다.

여자 축구의 최근 인기를 실감하고 느끼기 위해 피스퀸컵 A조 조별 예선 한국-잉글랜드 경기가 열렸던 수원 종합운동장을 지난 19일 찾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여자대표팀 경기를 직접 본 것은 지난 2005년 8월, 고양에서 열린 남북통일축구대회 이후 5년 2개월 만이었는데 그때보다 대표팀 전력도 좋아지고, 분위기도 많이 달라진 만큼 우리 선수들이 세계 9위, 유럽 2위인 잉글랜드를 상대로 어떤 경기를 펼칠지 기대가 있었습니다.

▲ 국가 연주 때 유일하게 거수 경례를 하는 권하늘 (사진 오른쪽에서 세번째-김지한)
하지만 경기력만 놓고 봤을 때는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많았던 경기였습니다. 컨디션이 정상 수준의 20-30%에 불과했던 지소연은 이따금씩 환상적인 개인기를 펼치면서 관중들의 기대에 부응했지만 U-20 여자월드컵 때만큼의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후반 25분 만에 교체됐습니다. 지소연을 비롯해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1차전 뉴질랜드전에 비해서 몸이 무거워보였고, 패스워크에서도 다소 문제를 드러내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그나마 홍경숙, 심서연으로 이어진 중앙 수비 라인이 제 몫을 다 해내면서 잉글랜드 장신 선수들의 공격을 잘 막아내고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치며 0-0 무승부로 이번 대회를 마쳤습니다. 결국 한국은 이틀 뒤 열린 잉글랜드-뉴질랜드전 경기 후 세 팀 모두 동률을 이루고 가진 결승행 추첨에서 행운을 잡으며 결승에 오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경기력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세계 9위를 상대로 비교적 해볼 만 한 경기를 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잉글랜드 파월 호프 감독은 "한국의 팀워크와 선수들의 기술이 인상적이었다"면서 나름대로 높은 평가를 내리기도 했는데요. 아직 새로운 감독이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만큼 서서히 팀을 만들어 보다 탄탄한 팀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에서는 매우 긍정적이었던 이번 시합이었습니다

▲ 한국-잉글랜드 경기가 끝난 뒤 털썩 주저 앉은 양 팀 선수들 (사진-김지한)
개인적으로 이 경기에서 참 재미있었으면서도 눈에 띄었던 것은 바로 경기 시작 전 양 팀 국가연주가 있을 때였습니다. 여자 축구 대표팀 선수 가운데 국가 연주시에 거수 경례를 한 선수가 있어 상당히 주목됐습니다. 이 장면은 지난 개막전 때도, 또 이번 잉글랜드전에서도 TV 생중계로 방영되지 않았는데요. 다른 선수들은 오른손을 왼쪽 가슴 쪽에 대는 일반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것과 달리 남자대표팀 군인들이나 하는 거수경례를 하고 국민의례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런 장면은 지난 남아공월드컵에서 현재 군인 신분인 광주 상무 김정우가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유일하게 거수 경례하는 모습을 보이며 눈에 띄었던 것과도 연결될 수 있을 텐데요. 그렇다면 이 선수도 현역 군인이었을까요.

▲ 지난 뉴질랜드전에서도 유일하게 거수경례를 한 권하늘 (사진 왼쪽에서 다섯번째- 피스퀸컵 조직위원회)
역시 알고 보니 거수 경례를 했던 선수는 현재 부산 상무에서 뛰고 있는 권하늘 선수였습니다. 다시 말해 현역 여군 선수가 국가대표로 뛰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권하늘 선수의 소속팀인 부산 상무는 여자 축구 내에서도 상당히 특별한 팀이면서 상무팀 가운데 유일하게 여자 구기 스포츠 팀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16주 동안 훈련을 받고 임관된 현역 부사관들로 구성돼 특이하면서도 특별한 팀으로 자리매김한 부산 상무 선수들은 이렇게 남자 상무 선수들과 동등하게 국민 의례 또는 국가 연주에는 거수 경례를 한다고 합니다. 여자 축구에서 이런 모습을 보게 돼서 처음에는 다소 독특하게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군인다움이 절로 느껴지는 멋진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날 권하늘은 90분 풀타임을 뛰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하는 플레이를 선보이며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답게 여자대표팀은 달라진 감독 체제 아래서 나름대로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일단 피스퀸컵 결승에 오르는데 성공했습니다. 상대는 지난 5월 아시안컵에서 한국에 패배를 안긴 바 있는 호주입니다. 경기 전 갖는 강한 의지, 다짐만큼이나 이전과는 다른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사상 첫 우승에 한발짝 더 다가설 수 있기를 한 번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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