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젊은 퇴직 공무원 영상을 보았다. 냉소와 불신의 시대지만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 노력했다. 사람이 하는 행동의 동기란 원래 복잡하기 마련이다. 배후의 ‘의도’에 대한 이런 저런 추정을 하기 보다는 현실을 짚어볼 때다.

이 사람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청와대가 민간기업인 KT&G 사장 교체를 기획재정부에 지시했으나 관철되지 못했고 서울신문 사장 교체도 시도했다는 것이다. 추가로 올린 영상에서는 청와대가 적자 국채 발행을 강요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최근 전직 청와대 특별감찰반 소속의 검찰수사관 폭로 정국과 맞물려 파장이 클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현실에서 개혁의 어려운 점은 무언가를 바꿔야 한다는 당위를 제시하기는 쉽지만 이를 위한 실질적 방법을 찾는 건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퇴직 공무원의 주장은 권력이 민간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으며 과거 ‘적폐’로 낙인찍힌 정권이 한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 또 초과 세수가 발생했는데도 ‘정치적 이유’로 적자성 국채 발행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 발언의 내용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은 없다. 그러나 맥락을 따져보면 상황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청와대의 민간 인사 개입 문제에 대한 문제다. KT&G의 백복인 사장은 과거 ‘친 이명박 성향’이라거나 ‘영남대 인맥’이라는 등의 구설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백복인 사장은 박근혜 정권 시절 KT&G 납품비리 등의 의혹에 연루되기도 했고 올해 들어서는 인도네시아 담배제조사 인수 과정과 관련한 문제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는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된 기업에서 반복해서 되풀이 되고 있다. 유력 인물들이 사장이 되기 위해 정권에 줄을 대고 이후 비리에 연루되며, 정권이 바뀌면 이를 겨냥한 투서 등이 나돌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다. 검찰이 결과를 내면 사장이 바뀌고 그렇지 않으면 유지된다. 이 과정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기업 내에는 자연스럽게 주류와 비주류 파벌이 형성되고 정권의 부침에 따라 같은 일들이 계속되는 것이다. KT나 포스코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일어났고 그 중 일부는 현재진행형이다.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정권이 이런 현실을 앞에 두고 민간 기업이니 정부가 개입해선 안 된다는 원칙을 쉽게 지킬 수 있을까? 최소한 갖고 있는 권한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문제의 소지를 제거(?)하고 새 사람을 앉히자는 생각을 하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퇴직 공무원이 주장한 내용은 여기에 해당하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KT&G의 기업은행 지분을 움직여 사장 교체 방침을 관철하려 했으나 외국인 주주 등에 밀려 실패했다. 기업은행은 정부가 과반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국책은행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 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신문 사장 교체도 유사한 맥락이 있다. 서울신문 사장은 기획재정부, 포스코, KBS가 대주주로서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해 결정한다. 현재 고광헌 사장의 전임은 이명박 전 대통령 특보 출신인 김영만 씨였다. 그 전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사’로 알려져 있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처남인 이철휘 씨였다. 그 이전 사장을 맡았던 이동화 씨는 이명박 정권 당시 실세였던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과 가까운 사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직전 사장인 노진환 씨는 서울신문 사장 추천권을 정부가 가져간 2006년에 취임했는데, 이명박 정권 당시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직접적으로 사퇴 압박을 해왔다는 폭로를 2012년에 한 바 있다. 당시 노진환 씨는 스포츠서울21 주식을 매각하면서 이면계약 내용을 공시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고 2009년 초 전격 사임했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폭로에 나선 전직 공무원의 주장을 그대로 적용하려면 공기업과 언론에 전임 정권들이 낙하산으로 내려 보낸 이런 저런 부적절한 인사들이 존재하더라도 정부는 개입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그게 원칙이고 정도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정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다. 왜냐하면 과거 참여정부의 실패가 그러한 원칙론의 일방적 적용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참여정부의 검찰 개혁이 왜 실패했는가에 대한 이 정부 핵심인사들의 회고와 평가를 보라.

전직 공무원이 폭로한 적자 국채 발행 문제에서도 이런 맥락이 드러난다. 전직 공무원이 썼다는 글을 보면 2017년 말 당시 세수가 늘어나 조기상환을 추진하려 했음에도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이에 반대하고 국채 발행을 강행하려 한 이유는 현 정권에서 GDP 대비 부채비율 증가폭이 늘어나는 결과를 착시(?)를 활용해 감추려 한 결과였다.

이 주장이 사실인지는 확인을 해봐야 한다. 하지만 올해까지 이어지는 맥락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재정을 더 써야 한다는 전문가들은 관료들이 세입추계를 보수적으로 해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쓰려고 해도 결과적으로 긴축이 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전직 공무원이 쓴 글에 관료들의 세입추계가 보수적으로 된 이유가 드러난다. 2013년 세입결손 사태 이후 세입예산을 적게 잡는 일이 일반화됐다는 것이다. 당시 세입결손은 이명박 정권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경기전망을 전제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박근혜 정권의 초대 경제수석인 조원동 씨가 이런 이유를 들며 ‘수퍼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고 설명했었다.

무엇이 정답인지 숫자로 말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어쨌든 김동연 당시 부총리가 이런 논리를 들어 초과세수를 통한 국채 조기상환 반대를 주장했다면 나름대로 모범적인 정책적 논쟁이 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정무적 고려’를 말했다면 소득주도성장론을 ‘도그마’로 본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관료가 정권의 개혁을 실제로 믿지 않으면서 단지 적당히 ‘코드’를 맞추는 방식으로 일을 해온 것 아니냐는 거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국민적 열망 속에서 정권이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공유하면서 개혁을 추진해 나가는 정치를 포기하지 않는 것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따지고 보면 폭로에 나선 전직 공무원의 국채 발행에 대한 견해도 전형적인 관료적 시각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채권시장에 투자해 피해를 본 사람들을 걱정하지만 보수적 정부 정책으로 가장 먼저 피해에 노출되는 것이 누구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정부가 ‘점찍은’ 인물을 공기업이나 언론사 사장으로 내정하는 시스템 역시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언론계 문제로 말하자면 KBS나 MBC 문제에 있어서도 이 점은 똑같다. 그래서 사장 추천을 어떻게 할 것인지, 지배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있어야 한다. 공영방송 문제에 있어서 현재의 여당과 일부 시민사회가 과거 내놓았던 방안은 그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람을 바꾸는 것보다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고 국민들이 이를 이룰 방안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도록 만들 수 있을 때에야 오늘과 같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권은 그 점에서 계속 실패하고 있다. 오히려 근본을 바꾸는 일보다는 사람을 바꾸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것은 보수세력이 제기하는 부당한 프레임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권 그 자신에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직 공무원의 폭로는 이 점을 보여주고 있다. 새해에는 좀 달랐으면 한다. 실질적인 개혁의 동력을 확보하는 정치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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