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누구도 이 팀이 결승까지 오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른 K-리그 팀의 결승 진출이 가장 주목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온갖 역경을 딛고 조용한 혁명을 시도하더니 마침내 아시아 정상을 가리는 무대 결승에 오르는 '초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바로 'K-리그 전통의 명문구단'이지만 아쉽게 스쿼드만 놓고 보면 뭔가 허전한 구석이 많은 팀,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똘똘 뭉친 팀으로 하나가 돼 마침내 아시아 정상을 꿈꾼 팀 성남 일화가 그 주인공입니다.

성남 일화가 20일 오후, 성남 탄천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0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알 샤밥(사우디 아라비아)과의 홈경기에서 전반 30분에 터진 조동건의 결승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두고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결승 진출을 확정지었습니다. 이로써 성남은 지난 2004년 이후 6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으며, 지난 1996년 AFC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아시아클럽챔피언십 우승 이후 14년 만에 아시아 정상을 꿈꾸게 됐습니다. 결승 진출을 확정지은 뒤 신태용 성남 감독과 선수들은 서로 부둥켜 안으며 결승 진출을 자축했고, 모처럼 탄천 경기장에 모여든 1만여 관중들 역시 큰 박수를 보내며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 2010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샤밥과 한국 성남 일화의 경기에서 1대0으로 승리, 결승 진출에 성공한 성남 선수들이 경기 후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두에 밝힌 것처럼 성남 일화가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를 것이라는 예상을 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경험이 부족하고 여기에 가용할 수 있는 자원도 부족한 '빈약한 스쿼드' 때문이었습니다. 재정 문제로 예년과 달리 이렇다 할 선수 보강을 하지 못했던 성남은 주축 멤버들을 오히려 외부로 내주는 수난을 겪으며 순탄치 않을 한 시즌을 보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상위권은커녕 중위권에 걸치면 잘 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고, 그 전력으로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8강, 4강 이상의 성적을 내기도 쉽지 않아보였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여기에 성남을 좋아하는 팬들이 홈경기장을 많이 찾지 않은 것도 또 다른 외적인 문제로 작용해왔습니다. 충분히 좋은 성적을 거둔 명문팀임에도 평균 관중 수가 1만명은 커녕 5천명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은 성남 축구에 대한 이미지를 반감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흉한 잔디를 드러낸 탄천 구장 문제는 한동안 K-리그뿐 아니라 아시아 축구 도마에 오르며, 구단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남은 어려운 시기를 '팀 단합'을 통해 극복해내며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눈높이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잘 이끌어나간 '팀 레전드' 출신 신태용 감독 지휘 아래 선수들은 똘똘 뭉친 팀워크와 유기적인 플레이를 앞세워 '강팀의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몰리나, 라돈치치 같은 외국인 선수들의 희생정신도 돋보였고, 조동건, 송호영, 홍철 같은 아직 미래가 창창한 선수들은 한발씩 더 뛰면서 팀 승리에 잇달아 기여해 왔습니다. 결국 성남은 예상을 뒤엎고 K-리그 3위에 오르는 저력을 보여줬고, 변수가 많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결승에 올라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번 결승 진출로 당연히 명문구단으로서의 자존심을 어느 정도 다시 살리는 데도 성남에게는 의미 있는 성과이자 쾌거였습니다. 특히 이전에 K-리그에서 몇 년 연속으로 우승했을 때와는 다르게 어려운 여건에서도 오직 제대로 된 전력을 갖춰 결승에 오른 지금의 순간이 오히려 더욱 돋보이기까지 합니다. '선수 빨'이 아닌 실력으로 아시아 정상 문을 노크한 성남은 어떻게 보면 진정한 명문구단으로의 도약을 꿈꿀 수 있게 됐습니다.

이렇게 성남의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은 팀 자체적인 자존심 회복뿐 아니라 다른 K-리그 구단들에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순 없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며 남다른 의미를 가져다줬습니다. 광주 상무를 제외하곤 가장 선수 보강이 적었던 올 시즌에 이 같은 혁명을 일으키면서 어떻게 보면 재정적으로 열악하고, 이 때문에 선수층도 얕은 시민, 도민 구단에 적지 않은 희망을 안겨줬다고 보고 있습니다. 팀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알고, 팀을 누구보다 잘 아는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지도자 아래 단합된 자세로 '진짜 강팀'이 된 성남에게서 벤치마킹할 부분이 많은 만큼 시민, 도민 구단 나아가 내셔널, K3 리그 등에도 좋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팀이 보다 경쟁력 있고 내실 있는 팀 운영으로 탄탄한 클럽 축구의 토대를 만드는 데도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러한 내부적인 성과도 성과지만 이번 결승 진출을 통해 성남이 팀 인기몰이에 다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도 상당히 값집니다. 사실 성남은 모기업(일화)의 특성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편견에다 스타 플레이어 부재 등으로 수도권 연고를 가진 팀임에도 이렇다 할 인기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결승 진출을 넘어 우승에 성공하고, 내년 시즌에 전력을 부분적으로 보강하면서 더 좋은 팀으로서의 면모를 갖춘다면 충분히 팬들을 사로잡을 만 한 요소들을 갖추고 보다 공격적인 팬 마케팅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번 4강전에서도 1만여명의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 가능성을 보여준 만큼 충분히 '아담한 경기장'의 특성을 잘 살리고, 아시아 최강팀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고, 관심을 유발시킨다면 옛 인기를 다시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어쨌든 성남의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은 상당히 놀라우면서도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한 점에서 값지고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달 13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리는 조바한(이란)과의 결승전에서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두며 드라마틱한 올 시즌 행보의 '해피엔딩 드라마'를 종결짓는 성남 일화가 될 수 있을지 흥미롭게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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