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남북 철도·도로 착공식이 열렸다. 서울역에서 출발해 북한 개성 판문역까지 왕복 74km 구간에 열차가 오갔다. 또 하나의, 남북관계 역사의 큰 획을 긋는 일이었다. 북측의 철도사정상 짧은 거리였지만 오랜 분단의 세월만큼이나 운행시간은 더뎠다. 그렇지만 엄중한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승인을 받아 유라시아 열차라는 원대한 장도의 첫발을 뗀 것의 의미는 매우 크다.

정부는 이번 착공식이 실제 공사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어서 착수식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남은 과정이 멀고 어렵다는 의미이다. 여전히 모든 남북 간 협력사업의 실질적 진전의 근본적인 열쇠는 북한 비핵화에 달려 있다. 그렇지만 북한으로서도 결코 쉽지 않은 것이어서 남북 철도·도로 착공식이 열렸어도 갈 길은 멀고도 멀다. 그러나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처럼 그 상징적 첫발의 의미와 희망만으로도 흥분을 감출 길 없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이 예정된 26일 북측 개성 판문역으로 향하는 특별열차 안에서 한 참석자가 특별열차의 승차권을 보여주고 있다.[공동취재단=연합뉴스]

남북 간의 철도·도로 연결은 가깝게는 남북 교류로 인한 거대한 경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멀게는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닿는 철도 실크로드라는 더 큰 청사진을 그릴 수 있다. 남북 철도 연결만으로도 거둘 수 있는 경제 효과는 30년간 140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베이징에서 모스크바까지는 이미 열차가 운행 중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미 이 구간의 고속화를 추진하고 있어 남북한 철도가 연결된다면 부산에서 모스크바까지 단번에 갈 수 있는 루트가 완성되는 것이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은 한국이 세계 교역량 6위라는 점에서 국내적 의미를 넘어선다. 남북 철도·도로 착공식에 중국, 러시아, 몽골 등 이웃국가들이 참석한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이들 역시도 남북 철도·도로 연결이 가져다 줄 경제적 이익에 기대와 관심이 큰 것이다. 비록 상징적 의미의 성대하지 않은 행사였지만 기대치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남과 북은 서로 적대에 여념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보고도 믿지 못할 변화인 것이다. CNN은 2018년에 일어난 좋은 일 중 첫 번째를 남북한 종전선언 약속으로 꼽았다. 지구촌에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음에도 유일한 분단국가의 평화노력의 가치와 의미를 높이 산 것이다.

26일 판문역에서 열린 '동·서해선 남북 철도, 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에서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왼쪽부터), 김정렬 국토교통부 제2차관 등 참석자들이 도로 표지판 제막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제공=연합뉴스]

외신의 평가를 떠나서 적대와 대립에서 평화와 번영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는 지금 당장 체감하지 못해도 한반도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남북관계의 경색과 전쟁공포를 통해서 집권을 유지했던 세력들이 차마 접근할 수 없었던 영역이다. 갈 수만 있다면 돈을 내고서라도 참석하고 싶은 행사였지만 초청을 받고도 가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한 정치인은 여론 조작용 행사라 불참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 번 전화했다는 통일부장관의 말에 대한 옹색한 변명으로는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정치인이 과거 일본 자위대 창설기념식에 참가해 구설에 올랐던 사실이 겹쳐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남북의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는 것은 경제적 효과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런 경제적 효과를 떠나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의 한과 불편을 극복하는 것이라면 어떤 노력도 아낄 이유는 없다. 또한 전쟁의 공포와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성과다. 야당이 정부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은 숙명적이라지만 적어도 평화에 재를 뿌리는 일만은 용납할 수 없다. 만일 차기 집권을 바란다면 적어도 한반도 평화에 대한 자세만은 정략에서 제외시켜야만 할 것이다. 평화의 맛을 본 국민에게 더 이상 북풍은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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