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라디오 방송국 국악방송이 PP(방송채널사업자)사업을 추진 중인 가운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특위)가 이른바 '소소위'를 통해 사업추진을 위한 정부지원금을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에서 지원하기로 해 논란이다. 방발기금을 운용하는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효성) 상임위원들은 예산운용 원칙에 맞지 않는다며 강경대응을 예고했다.

방통위는 26일 경기도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도로교통공단과 국악방송 재허가에 관한 안건을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안건과는 별개로 국악방송 PP 사업 추진에 대한 방발기금 예산 책정을 두고 방통위 상임위원들의 비판 의견이 잇따랐다.

허욱 방통위 부위원장은 "국회 예산심의에 참여했었는데 나중에 '소소위'에서 이뤄진 결과를 보고 놀랐다"며 "국악방송은 방발기금 주무부처인 방통위와 사전 협의없이 문체부, 기재부, 국회 예결위와 협의해 방발기금 13억을 받았다. 주무부처인 방통위를 무시한 것 뿐만 아니라 국회 상임위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어 "사무처가 강력한 대응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 문제는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며 "예결위에서 13억 원이 책정된 것은 예결위 내에서나 기재부에서 이 사안을 다룰 수밖에 없는 조건이 존재했다고 추론할 수밖에 없다. 방통위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에 고삼석 상임위원은 "이건 기본적으로 심의사업 추진에 있어 예산운용 원칙에 어긋난다. 이런 식으로 예산을 확보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원점에서부터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고, 표철수 상임위원도 "국회에서 처리하더라도 방발기금에서 충당하라고 하면 방통위 의견을 당연히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13억 원은 일부만 반영한 것으로 해마다 40억 이상의 방발기금을 국악방송 PP에 넣어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강하게 조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통위 논의 내용을 종합하면 국회 예결특위는 여야 간사들만 참여해 예산안을 최종적으로 조정하는 이른바 '소소위원회'에서 국악방송에 PP사업 추진 명목으로 13억의 방발기금을 책정했다. 이 과정에서 방발기금 운용 주체인 방통위와의 사전 협의가 전무했던 것으로 보인다. 13억 원은 채널 론칭에 필요한 2개월 분의 지원금으로 애초 국악방송은 4개월 분에 해당하는 26억 원을 신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지원금은 방발기금이 아닌 문화체육관광부 일반회계 처리를 통해 지원될 예정이었다는 게 방통위의 설명이다. 방통위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사업은 심의 과정에서 타당성 검토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소소위'는 공식 협의체가 아니기 때문에 비공개로 진행되며 속기록도 남지 않는다. 국악방송에 대한 예산 책정이 타당성 검토나 주무부처 협의도 없이 '소소위'에서 갑작스럽게 결정된 만큼 국회의원들 간 '이면합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악방송은 국악의 대중화와 보급 교육을 위해 문체부 산하 재단법인으로 설립된 국악 전문 공영 라디오 방송국이다. 때문에 방송사업을 추진한다 할지라도 예술진흥 분야는 문체부 소관인 만큼 방발기금으로는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 방통위의 입장이다.

방발기금은 조세와는 성격이 다른 '특별 부담금'이다. 방송·통신 산업 진흥을 위해 통신사, 케이블, 지상파 방송사업자, 종편채널사업자, 보도전문채널사업자를 대상으로 매출의 일정 비율을 징수해 방통위가 운용한다.

때문에 징수 목적에 맞지 않는 지원은 법률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일례로 아리랑 방송과 언론중재위원회는 현재 방발기금을 지원받고 있는데, 대외적 국가 홍보 채널인 아리랑 방송과 준사법기구 성격의 공적기관인 언론중재위에 국가 일반예산이 아닌 방발기금을 지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게다가 아리랑 방송과 언론중재위의 경우 '보도'라는 영역이라도 있지만, 국악방송은 이들과도 결이 다르다는 게 방통위원들의 지적이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원칙적으로 예술진흥은 문체부 소관이고 일반회계재정으로 이뤄지는 게 마땅하다"며 "방발기금은 방송발전을 위해 방송사들에게 징수한 것을 지원해야 맞는 것이고, 부족해서 지역 지상파 지원도 못하는데 그걸 전통예술을 진흥하는데 쓴다는 것은 논리상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다만, 현실적으로 국회가 결정한 사안을 행정부처인 방통위가 뒤집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방통위 사무처는 문체부, 기재부와 함께 협의를 통해 2020년 이후부터 방발기금을 쓰지 않겠다는 전제조건으로 내년도에 13억 원을 국악방송에 지원할 계획이었으나 원점부터 재검토하라는 상임위원들의 지적이 일면서 방안을 재고하게 됐다. 김석진 상임위원은 "국회 의결을 했는데 원점에서 사업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게 가능한지 법적으로 잘 따져봐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