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의 인기가 급물살을 타는 한편 드라마 제작 주변 분위기는 대물이 그리고 있는 정치판만큼이나 엉망진창이다. 작가에 이어 PD까지 갈아치우는 드라마라면 당장은 몰라도 그 여파는 중반을 넘어서면서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드라마, 영화는 분명 감독놀음이다. 감독이라 함은 연출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이다. 그런데 작가와 감독이 동시에 교체됐다는 것은 대물의 제작 환경이 적어도 정상은 아니라는 것을 강하게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속에 서혜림(고현정)은 집권 여당의 후보로 보궐선거에 나서게 된다. 이 드라마가 가진 정치적 꼼수가 있다면 서혜림이 여당을 선택했다는 모순에서 그 시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드라마 속에서는 강태산(차인표), 백영민(이순재) 등의 지극히 가상 인물의 존재가 서혜림을 움직인 근거를 마련해주지만 남편을 잃은 깊은 원망을 품은 여자가 선택하기에는 지나치게 비정치적인 결정이었다.

그렇지만 그 점을 현시점에서 걸고넘어진다면 이 드라마는 한 치도 진전을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잠자코 지켜보는 것이 일단은 최선의 자세일 것이다. 그렇게 일단 양해하고 이 드라마 속에서 순백의 인물로 등장하고 있는 고현정이 진흙탕 같은 현실 정치에 부딪쳐 겪는 일들을 분노와 안타까움을 섞어 지켜보게 된다. 여자 대통령이라는 엄청난 화두를 제시하고 있는 대물이기에 지금의 보궐선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이 과정에서 정말 중요한 인물이 급부상하고 있다.

바로 강태산이다. 3선의원이면 알 것 다 아는 닳고 달은 정치배가 분명하다. 게다가 처가가 굴지의 재벌가인 이 성골 정치인이 여당의 부정부패를 도려내고 참신한 정치 신인들로 물갈이를 하고자 한다. 그 대표격이 바로 서혜림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강태산의 질주를 지켜보기만 할 정치권이 아니다. 물론 무리는 있다. 정당 대표가 대놓고 무소속 후보의 공약을 그것도 보궐선거위원장의 장인에게 확답을 받아내는 장면은 무리한 설정이다.

어쨌든 그만큼 기득권층의 반격과 복수가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받아드릴 수 있다. 민우당 대표 조배호는 강태산과 서혜림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정당의 선거자금을 단절시켰다. 그러나 서혜림이 오랫동안 진행했던 어린이 프로에 함께 출연했던 아이가 자라 걸그룹의 멤버가 되었고 공교롭게 무소속 후보의 유세에 동원되었다. 회사에서 섭외된 만큼 일하고는 우연히 서혜림을 발견하고는 자발적으로 유세에 뛰어들어 파리조차 날리지 않았던 서혜림 유세장을 뜨겁게 달군다.

물론 현실적으로 여러모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오류는 픽션의 범주 내에 두지 않고는 도저히 드라마를 구경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선거 코디네이터의 공약도 마다하고 뚝방에서 소주를 마시다가 의기투합한 어젠다에 걸그룹의 즉흥적인 합류로 인해 서혜림의 공약은 청송 보궐선거의 헤게모니를 쥐게 된다. 그러자 다시 기득권층의 반격이 아주 모질게 시작된다. 바로 마타도어와 서혜림이 획득한 간척지 개발에 대한 선점 효과를 무색케 할 수 있는 결정적 한수이다.

조배호가 밀고 있는 무소속 후보의 공약에 강태산의 장인 회사가 손을 들어준다는 것인데, 이것 역시 선거기간 중에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려니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고 싶지 않더라고 그럴 수밖에 없는 장면이 곧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조배호는 강태산 앞에서 최일화 회장에게서 무소속 후보의 공약을 서포트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그리고 조배호와 최일화가 퇴장하자 강태산은 유리병을 마구 내리쳐 손이 피로 낭자해진다. 그러면서 차인표에게서 일찍이 보기 어려웠던 치떨리는 분노의 한마디를 내뱉는다.

“내가 이딴 쓰레기 같은 인간들 뒤치다꺼리나 하려고 정치 시작한 줄 알아!” 이 대사는 정말 속이 다 후련해지는 말이었다. 그러나 문제적 발언임에 분명하다. 강태산의 절규는 시청자에게는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주겠지만 정치인들 보시기에는 정말 불편할 대사였다. 이런 대사를 그토록 온몸을 불사를 분노를 실어 토해낼 수 있다면 대물은 정말 괜찮은 사회성을 획득한 것이다. 적어도 대물 5회에 있어서는 강태산이 겪는 좌절과 굽히지 않는 의기는 압권이었다. 그것이 4회까지와 다른 그래서 지루했던 5회를 벼랑에서 구한 한 샷이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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