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슈퍼맨도 아니고, 밤하늘을 가르는 배트맨도 아니고, 시대를 가로지르는 원더우먼도 아니고, 물을 가지고 어찌하는 아쿠아맨이라니! 인지도도 활용도도 떨어지는 히어로라 생각했다. 더구나 DC의 2017년 작 <저스티스 리그>의 만듦새를 돌이켜보면 더욱 기대가 되지 않았다. 그간 DC의 작품들, DCEU가(DC Extended Universe; DC코믹스에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 영화 세계) 최근 <원더우먼>을 빼놓고는 주목받지 못하며 마블에 '완패' 아닌가라는 섣부른 판단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저스티스 리그의 주연도 아닌 <아쿠아맨>의 성공을 점치기는 어려웠다. 더욱, 아쿠아맨이란 캐릭터 자체가 낯선 우리나라에서는.

그런데 드라마는 작가 놀음, 영화는 감독 놀음이라더니 ‘made by 제임스 완’이란 이름표가 붙은 <아쿠아맨>은 달랐다. 제임스 완 감독은 이런 예단을 '기우'로 돌려버렸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스윙키즈>와 <마약왕> 등 우리 영화의 부진을 뚫고 예매율은 물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간 ‘DC는 재미없다’는 관객들의 인식을 개선했다는 점에서 <아쿠아맨>의 성과가 크다.

수중 세계의 화려한 복원

영화 <아쿠아맨> 스틸 이미지

<아쿠아맨>이 1위를 차지하게 된 가장 큰 이유라면, 무엇보다 DC코믹스 속 수중세계의 현란한 복원이라 할 수 있겠다. 사라진 고대도시 아틀란티스를 최첨단 과학도시로 재연한 것부터 7왕국의 정경, 문어 토포, 괴수 카라텐 등등 크리처에 대한 구현 등 시각적 볼거리에서 압도한다.

시작은 동화였다. 폭풍의 밤, 외로운 등대지기에게 찾아온 아틀라나 여왕(니콜 키드만 분), 그렇게 땅과 바다가 만나 두 세계를 아우를 아서가 태어난다. ‘물고기 소년’이라 놀림 받던 어린 시절, 수족관에서 수중 생물과 교감하던 그를 지키기 위해 수족관의 수많은 어류들이 도열(?)하는 장면은 <아쿠아맨> 탄생의 서막으로 손색이 없다.

거기에 <분노의 질주; 더 세븐>에서 인정받은 액션의 장기로, 성장한 아쿠아맨(제임스 모모아 분) 아서가 수중 지뢰는 물론 잠수함까지 너끈히 움직이는 괴력의 향연을 벌인다. 거기에 빌런 블랙 만타의 의미심장한 등장을 통해 슈퍼히어로 영화의 요건을 갖추어 나간다. 수중 세계 속 옴을 비롯한 7왕국 각 인물들과 크리처들의 등장, 그들 간의 쟁투는 물속이라서 한정적인 것이 아니라 물속이라 무궁무진해진다. 그리하야 마치 물 속판 '반지의 제왕'을 보는 듯 시선을 빼앗기도록 만든다.

뿐만 아니라 빌런 블랙 만타의 붉은 레이저를 내뿜는 슈트에서 보여지듯, 지상 세계에서 불리한 수중인들과 수중에서 마찬가지로 불리한 지상인들의 액션적 설정, 그래서 더 돋보이는 수륙양용 아쿠아맨을 비롯한 능력자들의 설정은 지상과 수중을 오가는 <아쿠아맨>만의 볼거리가 된다.

신화와 동화로서의 아쿠아맨

영화 <아쿠아맨> 스틸 이미지

화려한 볼거리와 달리 영화는 전형적인 영웅의 성장서사를 그대로 답습하는 듯 보여진다. 아마도 마블이었다면 어땠을까? 마블이었다면 수족관에서 물고기와 교감했던 소년이 잠수함을 들었다놨다 하는 아쿠아맨으로서의 활약을 선보이며 영웅적 정체성을 받아들이기까지 고뇌의 시간을 공들여 써내려가지 않았을까? 즉, 아서가 왜 땅과 수중세계를 아우르는 왕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개연성’에 고심했을 터이다. 하지만 영화는 벌코를 통한 아서의 훈련 과정을 아서의 활약 사이에 끼워 넣으며 아쿠아맨으로서 성장과정에서의 갈등과 서사를 ‘스킵’한다.

대신 <아쿠아맨>은 수중판 아서왕의 서사적 틀을 가져다 아서의 영웅 등극을 설득하고자 한다. 전설의 아서왕은 마법사 멀린의 도움으로 왕재를 연마하고, 그 누구도 뽑지 못한 왕의 상징인 바위 속에 꽂힌 칼을 뽑아내어 왕이 된다. 이렇듯 등대지기의 아들로서 잠수함을 구하는 등 영웅적 면모를 보이지만 수중 세계의 권좌에는 관심도 없던 '아서'가, 아버지가 다른 동생 옴의 도발로 싸움에 뛰어들고 사지와 마찬가지인 괴물들의 나라에 뛰어들어 아틀란티스 왕의 상징인 삼지창을 쟁취하는 '신화적 설득력'을 선택한다.

영화 <아쿠아맨> 스틸 이미지

바위 속 칼을 뽑은 소년 아서에게 모든 이들이 무릎을 꿇고 경배하듯, 삼지창을 가진 아서는 그 누가 뭐라 하든 아틀란티스의 왕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애초 아틀란티스 자체가 신화적 세계인 한에서, 삼지창으로 인한 왕권의 정통성이 무엇이 문제랴. 거기에 마치 수중세계의 원더우먼과도 같은 메라와의 만남을 수중판 ‘피노키오’ 등 에피소드를 통해 이어간다. 그리고 다짜고짜 키스씬까지 애교로 넘겨줄 두 영웅의 격한 액션씬으로 지상세계와의 평화주의를 내세운 전우애적 사랑을 완결시킨다.

그렇게 메라와의 사랑이 지상세계와의 평화주의적 정전협정과도 같은 것이라면, 그 맞은편 이부형제 옴과는 마블 시리즈 속 라그나로크의 두 형제 토르와 로키의 생사를 내세운 질투와 경쟁을 벤치마킹한다. 어머니가 같은 형제이지만, 심지어 땅과의 혼혈임에도 형이라는 이유만으로 아틀란티스 왕위 승계에 우선권을 가진 아서의 등장은, 정통성과 순혈성이라는 요소를 혼합해 갈등을 부추긴다.

제임스 완의 복선

영화 <아쿠아맨> 스틸 이미지

하지만 아서와 옴의 갈등은 그저 신화적이지만은 않다. 해양오염의 주범인 지상세계의 무책임한 태도. 이에 옴이 내세운 수중세계의 분노는 해일 등을 일으켜 지상세계를 진압하겠다는 식으로 권력의 수단으로 활용한 것은 문제가 있지만, 오늘날 나날이 심해져 가는 해양오염 문제로 볼 때 분명 설득력을 가진다.

또한 빌런 블랙 만타와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부 설정은 아쿠아맨과의 갈등에, 그리고 집요한 빌런으로서의 블랙 만타의 존재론적 개연성에 필연성을 부여하는 등 논리적 개연성 면에서도 놓치지 않으려는 흔적이 역력하다.

시각적 볼거리의 향연인 것처럼 보인 <아쿠아맨>. 하지만 파고들면 영화는 수미일관되게 전통적 영웅 신화의 서사와 갈등 요소를 짜임새 있게 배치해 놓았단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마블이 보다 캐릭터 자체를 품은 세계관에 대한 설득력에 고심하는 것과 달리, 제임스 완은 '신화'적 설정의 치밀한 배치와 그걸 설득해낼 시각적 배경과 액션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파고들수록 겹겹의 퍼즐처럼 제임스 완의 <아쿠아맨>이 선사한 영화적 재미는 쏠쏠하다.

어쩌면 이렇게 고심해서 9첩반상처럼 차려낸 <아쿠아맨>조차 성기다고 느낄 정도로 이제 히어로 영화, 아니 영화 자체에 대한 관객들의 시선이 높아졌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높아진 관객들의 시선이야말로 2018년 한국 영화계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결국 문제는 ‘마블이냐 DC냐’의 양자대결의 귀추가 아니라, 관객들의 발길을 돌리게 만든 한국 영화의 완성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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