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절대 아니라고 하지만 현실 정치에 ‘절대 아닌 것’은 없다. 여의도 주변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정치 복귀가 어떤 방식으로든 이뤄질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인 것 같다. 방송활동에 집중하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은 것은 역시 일종의 ‘신호탄’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이미 나왔다.

유시민 이사장이 최근 팟캐스트 방송 재개나 유튜브 진출 등을 언급하면서 정치 복귀의 가능성은 더 커져 가는 것 같다. 이런 활동이 정치권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사건이 벌어졌다. 유시민 이사장이 출판사 주최 행사에서 했다는 말에 원내정당이 논평을 낸 거다.

유시민 이사장의 문제 발언은 20대 남성들의 지지율 하락 문제를 논하면서 나왔다. 20대 남성들이 성장 과정에서부터 역차별을 당한다는 경험을 하고 있고 학창시절을 지낸 이후에도 게임이나 축구에 열중하느라 ‘공부’를 선택하는 여성들과의 경쟁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경계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남성 이용자가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유시민 이사장의 이 발언에 분노를 감추지 않고 있다고 한다. 요즘 젊은 남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고 애쓰는 바른미래당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논평을 냈다. 유시민 이사장이 20대들이 겪는 고통을 일종의 정서적 문제로 축소해 외면했다는 취지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외곽에서 한 발언을 정파적 싸움의 링 위로 끌고 올라온 셈이다.

유시민 이사장이 팟캐스트나 유튜브를 통해 비정규적인 방송 활동을 재개한다면 이런 일은 더 잦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유시민 이사장은 이런 활동을 통해 ‘가짜뉴스’에 맞서겠다고 하지만 결국 그 귀결은 정치적 주장을 내놓는 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정치의 영역에 스스로 걸어 들어오는 결과가 되지 않겠느냐는 게 호사가들의 시선이다.

그동안 유시민 이사장은 공중파 방송 활동을 하며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입장에서 핵심을 찌르는 주장으로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그러나 심판이 아닌 ‘선수’로 역할이 바뀐다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다른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게 사실이다. 유시민 이사장이 TV에 나와 말할 때는 그러려니 할 수 있었던 얘기도 정치인의 입장에서 하는 말 같으면 반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이 논란이 보여주는 현상이 딱 그렇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20대 남성 지지율 문제에 대한 유시민 이사장의 주장은 사태의 일면만을 본 것이긴 하지만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젊은이들이 현실에서 겪는 고통은 정서적이라기 보다는 실질적인 것에 해당하는 게 사실이다. 취업은 어렵고 설사 어렵게 일자리를 얻는다고 해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일상적인 ‘갑질’을 감내해야 한다. 안정적인 주거지를 마련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닌 게 현실인데, 이 사회는 남과의 일상적 비교를 강요하며 고통을 배가시킨다. 아쉬운 소리라도 한 마디 하면 “이게 다 노력하지 않은 네 책임인데 누굴 탓하느냐”는 반응이 돌아온다. 다 알겠으니 공정한 기회라도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만이 남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성별로 구분할 때 남성만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유독 젊은 남성들이 이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것에는 이것 이상의 고유한 맥락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유시민 이사장의 발언은 나름 이 대목을 해명하려는 시도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여성들에게 유리한 정책 추진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거나 여성 고용률이 올라가는 등의 드라마틱한 변화가 나타났다고 하면 20대 남성 지지율의 변화는 훨씬 더 그럴듯한 방식으로 설명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없고 오히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것에 대한 비난이 나오는 게 현실이다. 이 정부 들어 달라진 여성의 위상을 확인한 일은 미투 운동이나 혜화역 시위 등 여성들이 알아서 스스로 뭔가를 한 것 밖에 없다. 그러니 젊은 남성들이 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정권 지지 철회를 외치게 됐는지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직접적인 정책적 효과로부터 생긴 현상이 아니라면 결국 서사적 문제라고 봐야 한다. 여성들은 당장 고통을 겪고 있어도 미투 운동이나 혜화역 시위 등을 통해 행동에 나서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보는 편이다. 반면 인터넷의 젊은 남성들은 오늘날 공적인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인 것처럼 보이는 ‘피해자’의 지위를 여성들이 독점하고 있으며 이 정권이 그것을 용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남성들의 항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리도 피해자인데 왜 인정해주지 않느냐”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맥락에서 유시민 이사장의 발언은 “뭘 모르면서 노력도 하지 않고 생떼를 쓴다”는 메시지로 번역(?)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의 축구 및 게임에 대응하는 것은 여성의 공부가 아니라 ‘(아이돌)덕질’이라는 반론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젊은 남성이 축구나 게임 등의 여가생활을 즐기는 걸 어떤 나태함으로만 볼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이것은 그저 일상에서 나름의 행복을 추구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오히려 노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잘못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유시민 이사장의 발언은 젊은 남성을 향한 비하나 어떤 꾸짖음이라기보다는 나름 이해와 공감의 시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누가 진정한 피해자인지를 가리는 게 세상만사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남성들도 앞서 서술한 것처럼 어떤 기준에서는 피해자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의 역할은 이 모든 피해들의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회가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놓고 설득에 나서는 게 되어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사회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정치와 극우포퓰리즘의 갈림길이 등장한다.

바람직한 정치는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모색하면서도 젊은 세대가 직면한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 역시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을 함께 만들어 보자고 제안하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논의하는 것이다. 반면 극우포퓰리즘은 “내가 역차별당하는 20대 남성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겠다”면서 정치의 과정을 시장과 상품관계로 치환해 스스로 상품논리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치 복귀를 하지 않겠다는 유시민 이사장의 ‘해설’은 둘 중 어디에 해당한다고 단정지어 말할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유시민 이사장의 정계 복귀를 가정해본다면 좀 미덥지 못하다는 느낌이 남는 게 사실이다. 20대 남성 지지율 하락이 ‘정치적 문제’가 되자 젊은 남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거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당 내에서 제기되는 것을 보면 그렇다. 물론 귀를 기울여야 하고 소통을 강화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는 표 떨어질 일이 두려워서 하는 일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바람직한 정치를 위한 설득으로 귀결돼야 한다. 혹시 유시민 이사장의 정계복귀를 하게 되더라도 이런 점을 간과하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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