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과 다르다고 말하는 것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보통 자신과 남이 다르다는 점을 찾아내 강조하는 것으로 우월함을 증명하려고 한다. 전직 특감반원 논란에 “유전자”를 말하거나 “미꾸라지”를 언급한 청와대의 태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자신과 남의 같은 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 이런 사람이라고 하면 보통은 ‘외부인’도 우리와 다를 것 없는 한 사람의 인간임을 역설하는 이상주의자를 쉽게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신문 지상에서 발견하는 이러한 인간형의 대부분은 놀랍게도 보수정치의 자장 속에서 재현되고 있다. 보수정치와 보수언론이 “문재인 정부도 우리처럼 더럽고 나쁘다”라는 주장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것이다.

최근 신문 정치면을 점거하다시피 하고 있는 전직 청와대 특감반원 김태우 수사관의 사례를 다시 보자. 김태우 수사관은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변호를 맡았던 석동현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한다. 석동현 변호사는 자유한국당의 당협위원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정치적 색깔이 명확한 인물인 셈인데, 여기에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변호인’이라는 사실을 더하면 명확한 맥락이 형성된다. 이 정권도 전 정권처럼 똑같이 민간인 사찰을 했으면서 죄 없는 사람을 압박해 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김태우 수사관 본인이 그런 주장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진 않다. 그러나 김태우 수사관의 자료를 받아 크게 보도한 보수언론들은 대개 위의 논리를 전제로 하고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일화를 이미 언급해왔다. 그러니 위의 맥락이 없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일전에도 적었듯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사망 사건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국군 기무사령부의 세월호 참사 유가족 사찰을 김태우 수사관이 주장하는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과 동렬에 놓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김태우 수사관이 주장하는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은 적어도 공적 영역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비위 혐의에 대한 것이다. 김태우 수사관의 주장을 전부 인정해도 그렇다. 반면 세월호 참사 유가족 사찰은 사건이 정권에 미치는 정치적 영향을 우려해 군 조직이 직접 나서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론 관리를 하려 든 것에 가깝다. 이 두 사안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맥락 파악을 못 한 결과이거나 다른 정파적 의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백 보 양보해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측이 주장한대로 기무사 요원들이 참사 현장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선의로 나선 것이라 할지라도 사건의 무게감이 다른 것은 마찬가지다. 기무사는 법적으로 보장된 대공수사권과 이를 관철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에 전국적 조직망까지 갖춘 곳이다. 이런 조직이 현장에 투입된 해군 등을 대상으로 했다면 모를까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정치 성향과 음주 습관, TV 시청 및 인터넷을 통한 중고물품 거래 기록까지 뒤져 그 내용을 청와대에 전달한 것은 큰 문제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이번 사건에서 청와대 특감반이 했다는 것은 소문을 수집하고 공직자의 비위 혐의가 의심되는 내용을 가려낸 것 정도에 불과하다. 김태우 수사관이 작성했다는 첩보 보고서의 내용은 이미 언론을 통해 보도되거나 증권가 정보지 등을 통해 알려진 것들이다. 청와대 특감반은 수사권도 보장돼있지 않다. 청와대 특감반의 권한과 업무 내용은 시행령인 대통령비서실 직제에 “법령에 위반되거나 강제처분에 의하지 아니하는 방법으로 비리 첩보를 수집하거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에 한정하며,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해당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거나 이첩한다”고 돼있다. 결국 수사는 검경에 맡기는 구조인 것이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운데)와 최교일 의원(왼쪽), 김도읍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장이 23일 오후 국회에서 청와대 특별감찰반 의혹 진상조사단 회의를 마치고 열린 브리핑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별 권한도 없는 청와대 비서실 내 일개 부서가 왜 이런 일을 떠맡고 있는 것일까? 공무원에 대한 일상적 감찰을 책임지는 기구가 사실상 없고, 비리에는 오직 공직자만 연루되는 게 아니라 민간인이 함께 끼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부 언론은 국정원 국내정보담당관(IO) 폐지가 사태를 키운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국정원이 각 부처 등 정보 수집을 중단하더라도 ‘정보 수요’는 그대로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청와대 감찰반의 권한이 비대해졌다는 것이다.

이런 진단에도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문재인 정권이 별다른 대안도 없이 이상에 치우친 정책을 추진하다 문제가 생겼으니 다시 전으로 되돌려야 한다며 “그것 봐라, 이 정부도 별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건 정파적 해법일 뿐이다. 오히려 합리적인 결론은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대안적 제도를 시급히 안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여당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대안으로 말하고 있지만 자유한국당은 특별감찰관 임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특별감찰관 역시 수사권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청와대 조직으로부터 분리돼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 실질적으로 하는 일은 청와대 특감반과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 더군다나 법이 어떻든 청와대가 권력을 휘두르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특별감찰관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게 전임 정권의 우병우 민정수석 사례에서 드러났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이 특별감찰관 임명을 대안으로 언급하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 번째는 검찰과 조직적 입장을 같이 하며 공수처 도입 자체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특별감찰관 추천권을 요구해 자신들이 원하는 인사로 청와대와 공직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함이다.

이상적으로 본다면야 야당에 감찰기구에 대한 인사추천권을 주거나 이를 보장하는 제도를 설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대안이 못 되는 제도를 활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과연 이런 조치가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주장이 더더욱 현실적이지 않아 보이는 것은 보수세력이 추천한 인사가 신의성실하게 감찰 업무에 임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드루킹 특검을 보라.

이런 저런 불신과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논의를 공수처 설치라는 맥락 안에서 진행한다면 어떤 야당의 권한을 인정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것이다. 이번 기회에 공수처 설치를 현실화할 수 있다면 청와대 조직에서 감찰 기능을 아예 없애는 것까지도 전향적으로 제안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 상황이 장기화되면 특별감찰관도 없고 특감반도 와해된 상태에서 다른 부서나 기관의 권한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발생하거나 최악의 경우 공직기강이 방치돼 또 다른 비리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게 되면 보수세력은 꽃놀이패를 쥐게 될지 모르지만 국민에게는 불행이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개혁을 관철하기 위한 전략을 갖고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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