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리즈 4차전에서 예고된 양 팀의 선발 투수는 삼성 장원삼과 SK 글로버로 삼성의 우세를 점칠 수 있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3연승의 SK가 3연패의 삼성을 분위기에서 압도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삼성이 초반에 선취점을 뽑으며 리드를 잡아야만 5차전 이후로 승부를 미루며 상경할 수 있었지만, 선취 득점에 실패하고 이후 무수한 기회도 날리면서 자멸, 홈구장에서 SK의 우승 헹가레를 구경하는 굴욕을 맛봤습니다.
특히 어제부터 유독 많은 기회가 조영훈에게 걸렸지만 단 1타점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어제 3차전 1회말 2사 만루, 오늘 4차전 2회말 1사 3루에서 범타로 물러났고, 5회말 무사 1루에서 병살타, 7회말 무사 1, 2루에서는 진루타도 기록하지 못하며 파울 플라이, 8회말 2사 만루에서 삼진으로 물러났는데, 어제부터 부진이 이어졌음을 감안하면 5회말 무사 1루에서 SK 좌투수 전병두가 마운드에 오를 때 우타자 강봉규로 교체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5회말, 7회말, 8회말 모두 좌투수를 상대로 좌타자 조영훈이 범타로 물러났고, 강봉규가 9회말 2사 2루에서 대타로 기용되어 적시타를 터뜨렸음을 감안하면 더욱 아쉬웠습니다.
반면 상대에 허점을 보이지 않는 SK의 완벽한 야구가 빛났습니다. 한국 시리즈에서 SK의 강점 중 가장 돋보인 것은 김광현, 정우람, 전병두, 그리고 두 명의 이승호로 구성된 두터운 좌완투수진이었습니다. 5명의 좌투수는 최형우, 채태인, 조영훈 등 삼성 좌타자들을 꽁꽁 묶었는데, 김성근 감독의 투수 교체가 절묘했다는 평이 주류이지만, 그보다는 수준급의 좌투수들을 언제든지 투입할 수 있도록 양적으로 충분히 확보, 양성했다는 점에서 더욱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우완 송은범과 언더핸드 정대현이 가세하며, 8개 구단 최강이라 일컫는 삼성의 불펜을 실전에서 압도했습니다. 작년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한 기아의 원동력이었던 2명의 외국인 투수가 올 시즌 대세가 되었듯이, 내년에는 SK의 두터운 좌투수진과 공격에 있어서 작전 운용이 한국 프로야구에서 대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성근 감독은 5차전 선발이 예상되던 김광현까지 마무리로 투입하며 4차전으로 우승을 확정짓고자 했는데, 1경기를 삼성에 내줄 경우 자칫 시리즈 분위기가 반전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2002년의 설욕을 대구에서 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2002년 LG 재임 당시 김성근 감독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현대와 기아를 연파하고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기본적인 전력이 삼성에 비해 열세인데다 준플레오프부터의 피로가 누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LG는 삼성과의 한국 시리즈를 장기전으로 이끌고 갔고, 7차전으로 승부를 끌어가는 듯 했던 대구 구장에서의 6차전에서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9회말 이승엽에 동점 홈런, 마해영에게 역전 끝내기 홈런을 허용하며 분루를 삼킨 바 있습니다. 김성근 감독은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석연치 않게 해임되었고 LG는 이후 포스트 시즌에 8년 째 진출하지 못하고 있지만, 김성근 감독은 2002년 우승을 내준 대구구장에서 SK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우승 헹가레를 하는 것으로 8년 만에 삼성에 설욕을 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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