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리즈 4차전에서 예고된 양 팀의 선발 투수는 삼성 장원삼과 SK 글로버로 삼성의 우세를 점칠 수 있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3연승의 SK가 3연패의 삼성을 분위기에서 압도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삼성이 초반에 선취점을 뽑으며 리드를 잡아야만 5차전 이후로 승부를 미루며 상경할 수 있었지만, 선취 득점에 실패하고 이후 무수한 기회도 날리면서 자멸, 홈구장에서 SK의 우승 헹가레를 구경하는 굴욕을 맛봤습니다.

▲ SK 와이번스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마무리투수 김광현이 포수 박경완과 포옹하며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2회말 1사 3루의 선취 득점 기회에서 조영훈이 짧은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나며 삼성은 득점에 실패했는데, SK의 실책이 수반된 가운데 얻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욱 뼈아팠습니다. 선취 득점에 실패하자 심리적으로 쫓긴 장원삼은 4회초 박경완에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는 등 3실점하며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한복판 직구를 우두커니 지켜보는 스탠딩 삼진을 양산하는 삼성의 부진한 타선을 감안하면 승부는 4회초에 갈린 것과 다름없습니다.

특히 어제부터 유독 많은 기회가 조영훈에게 걸렸지만 단 1타점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어제 3차전 1회말 2사 만루, 오늘 4차전 2회말 1사 3루에서 범타로 물러났고, 5회말 무사 1루에서 병살타, 7회말 무사 1, 2루에서는 진루타도 기록하지 못하며 파울 플라이, 8회말 2사 만루에서 삼진으로 물러났는데, 어제부터 부진이 이어졌음을 감안하면 5회말 무사 1루에서 SK 좌투수 전병두가 마운드에 오를 때 우타자 강봉규로 교체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5회말, 7회말, 8회말 모두 좌투수를 상대로 좌타자 조영훈이 범타로 물러났고, 강봉규가 9회말 2사 2루에서 대타로 기용되어 적시타를 터뜨렸음을 감안하면 더욱 아쉬웠습니다.

▲ 5회말 무사 1루 상황. 삼성 조영훈의 병살타 때 SK 나주환이 삼성 박석민을 포스아웃시킨 뒤 1루로 송구하고 있다. 2루수는 정근우 ⓒ연합뉴스
선동열 감독의 선수 교체는 2005년과 2006년 2년 연속 한국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감독이 아니라 마치 초보 감독처럼 어긋났습니다. 1차전에서 경기 중반 호투하던 권오준과 정현욱을 강판시키고 오승환과 이우선을 등판시켰지만 난타당해 패했는데, 준플레이오프에서 극적으로 두산을 제치고 올라온 삼성이 1차전 중반의 리드를 지켜 승리하며 분위기를 이어나갔다면 한국 시리즈의 향방은 SK의 스윕 압승과 삼성의 무기력한 패퇴로 마무리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 삼성 선발 장원삼 ⓒ연합뉴스
2차전 이후 삼성의 마운드는 매 경기 4실점으로 최소화하며 나름대로 호투했지만, 침묵으로 일관한 타선이 문제였습니다. 부진한 조영훈을 고집한 것이나, 어제 3안타로 분전한 현재윤을 오늘 선발 출장시키지 않은 것, 페넌트 레이스부터 부상 후유증에 시달린 채태인이 부진했지만 베테랑 양준혁을 엔트리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로써 김재현과 달리 양준혁의 은퇴 모양새는 더욱 씁쓸했습니다.) 선동열 감독은 한국 시리즈 준우승으로 충분히 자족하는 듯 시리즈 내내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선동열 감독은 박석민, 최형우, 채태인 등 자신이 재임하며 키운 타자들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였지만 한국 시리즈에서 이들은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중에 이승엽의 삼성 복귀를 부정한 바 있는데, 내년 우승을 바라보기 위해 삼성은 타선 보강이 시급합니다.

반면 상대에 허점을 보이지 않는 SK의 완벽한 야구가 빛났습니다. 한국 시리즈에서 SK의 강점 중 가장 돋보인 것은 김광현, 정우람, 전병두, 그리고 두 명의 이승호로 구성된 두터운 좌완투수진이었습니다. 5명의 좌투수는 최형우, 채태인, 조영훈 등 삼성 좌타자들을 꽁꽁 묶었는데, 김성근 감독의 투수 교체가 절묘했다는 평이 주류이지만, 그보다는 수준급의 좌투수들을 언제든지 투입할 수 있도록 양적으로 충분히 확보, 양성했다는 점에서 더욱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우완 송은범과 언더핸드 정대현이 가세하며, 8개 구단 최강이라 일컫는 삼성의 불펜을 실전에서 압도했습니다. 작년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한 기아의 원동력이었던 2명의 외국인 투수가 올 시즌 대세가 되었듯이, 내년에는 SK의 두터운 좌투수진과 공격에 있어서 작전 운용이 한국 프로야구에서 대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성근 감독은 5차전 선발이 예상되던 김광현까지 마무리로 투입하며 4차전으로 우승을 확정짓고자 했는데, 1경기를 삼성에 내줄 경우 자칫 시리즈 분위기가 반전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2002년의 설욕을 대구에서 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2002년 LG 재임 당시 김성근 감독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현대와 기아를 연파하고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기본적인 전력이 삼성에 비해 열세인데다 준플레오프부터의 피로가 누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LG는 삼성과의 한국 시리즈를 장기전으로 이끌고 갔고, 7차전으로 승부를 끌어가는 듯 했던 대구 구장에서의 6차전에서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9회말 이승엽에 동점 홈런, 마해영에게 역전 끝내기 홈런을 허용하며 분루를 삼킨 바 있습니다. 김성근 감독은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석연치 않게 해임되었고 LG는 이후 포스트 시즌에 8년 째 진출하지 못하고 있지만, 김성근 감독은 2002년 우승을 내준 대구구장에서 SK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우승 헹가레를 하는 것으로 8년 만에 삼성에 설욕을 한 셈입니다.

▲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차전을 싹쓸이하고 우승한 SK 와이번스 선수들이 시상대에 올라 손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2년 한국 시리즈 6차전 당시 중견수 키를 넘기는 2루타성 타구를 치고도 고관절 부상으로 인해 다리를 절룩이며 1루에 머물러야 했으며, 팀의 패퇴와 준우승을 지켜봐야 했던 김재현도 SK 선수로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며 대구에서 마지막 우승을 맞이했습니다. LG팬들로서는 아쉽지만 김재현으로서는 해피 엔딩입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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