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권력 비판'이라는 기본 명제에 대한 '원론적인 표현'과 '직접 겨냥해 언급한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포괄적 의미의 '권력 비판'은 원론적인 모범답안이지만 '정치권력 비판'으로 폭을 좁히면 불순한 의도로 봐야 할까?

KBS 1TV <미디어포커스>가 지난 12일, 차기 이명박 정부의 미디어 정책과 영향력을 분석하면서 KBS 정연주 사장의 신년사 가운데 '정치 권력 비판' 부분을 '새 정부를 겨냥한 것'이라고 비판한 동아일보 보도를 문제삼자 동아일보가 14일 보도를 통해 재반박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 1월 12일 KBS <미디어포커스>
이날 <미디어포커스>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정 사장이 취임사나 신년사에서 권력 비판을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라고 비난했지만 정 사장은 2006년 취임식을 포함해 창립기념일, 기자 간담회 등에서 'KBS가 모든 권력에 대해 비판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고 여러차례 말했다"고 보도했다.

<미디어포커스>는 이어 "사장 개개인의 공과에 대한 평가를 떠나 (일부 언론들이 펴고 있는) 정권이 바뀌면 KBS 사장도 교체돼야 한다는 단순 논리는 매우 부적절하다"고 평가했다.

그러자 동아일보는 14일 <KBS 미디어포커스 "정 사장 여러 차례 권력 비판 언급" 두둔 / 한나라 "친권력 엄호, 시대정신 위반">에서 "KBS가 매체비평 프로그램 '미디어포커스'를 통해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거취가 주목되는 정연주 사장을 두둔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 "정 사장이 권력을 직접 겨냥한 비판을 강조한 것은 처음…의미·뉘앙스 달라"

동아일보는 "정 사장이 2003년 4월 취임 이후 지금까지 두 차례의 취임사와 다섯 차례의 신년사에서 권력을 직접 겨냥한 비판을 강조한 것은 처음으로, KBS의 주장은 아전인수 격 해석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동아일보가 14일 보도에서 주장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미디어포커스'가 인용한 정 사장의 2006년 취임사는 언론의 원론을 짧게 언급한 것이다.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권력비판'과 의미나 뉘앙스가 다르다. 정 사장은 창립기념일이나 기자간담회에서도 '강자의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적인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등으로 모범답안만 말했다. 정 사장은 또 2007년까지 6차례의 신년사와 취임사에서 '권력'이란 단어를 13번 썼으나 올 신년사에선 8번 썼다."

▲ 1월 14일 동아일보
앞서 동아일보는 지난 3일 1면과 2면 <현정부 코드기관들 정권 인수인계 과정 '뻣뻣' 정권말 버티기?>에서 KBS 정 사장이 지난 2일 신년사를 통해 "오만한 권력에 대해서 가차 없이 비판해야 한다"고 밝힌 대목을 전하며 "정 사장이 언급한 '오만한 권력'은 차기 정부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과 함께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는 특히 정 사장이 그동안 7번의 취임사와 신년사에서 권력 비판을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라고 강조하면서 "정권 교체 시기에 자신의 거취를 둘러싼 시민단체 등의 공세에 대해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고 전했다.

동아일보의 주장을 정리하면, 정 사장은 그동안 KBS 공영방송 역할에 대해 '정치와 자본뿐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는 모든 집단으로부터 독립' 또는 '독립된 언론사로 사회적 비판 기능을 수행' 등 원론적인 표현을 써왔지만 올해 신년사에서는 "정치권력, 자본권력, 언론권력, 특히 오만한 권력에 대해 가차 없이 비판해야 한다"는 식으로 강도를 높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도 13일 논평을 내고 "KBS '미디어 포커스'에서 KBS 사장인 정연주 씨를 엄호하는 내용의 방송을 한 것은 시대정신을 잘못 읽은 안타까운 방송행태"라고 밝혔다.

<미디어포커스> "'정권교체=사장교체'가 방송독립성 해친다는 지적엔 왜 반론 없나"

이에 대해 <미디어포커스> 한 제작진은 "KBS 노조 특보를 인용해 조합원의 86%가 경영진의 적자경영에 책임을 묻고 있음을 소개하면서 '사실상 사장 퇴진을 요구한 것'이라는 내용까지 보도했는데 이것이 어떻게 정 사장을 두둔하거나 엄호한 것이냐"고 반문하며 "12일 방송에서 핵심적으로 지적한 것은 정권교체가 곧 공영방송 사장 교체라는 논리의 문제점인데 정작 이에 대해서는 반론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 제작진은 또 "자본권력, 정치권력, 언론권력에 대한 비판은 언론의 본연 임무다. 그 자체가 언론학적 원론이다. 그런데 정 사장이 과거에 말한 권력 비판은 원론적인 표현이고, 최근 신년사에서 밝힌 정치권력 비판은 그렇지 않다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지난 3일 보도에서는 정 사장의 권력 비판이 처음이라고 했다가 14일 보도에서는 과거에는 원론적인 모범답안이고, 이번에는 뉘앙스가 다르다는 식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동아일보의 보도는 말 장난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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