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글을 써오지 않았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또 청와대가 모든 것을 잘하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권력을 비판하는 일이 언론의 본령이라 해도 최근 보수언론의 태도는 지나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민간인 사찰 등의 특별감찰반 문제에 대한 보도가 그렇다.

보수언론은 비위 혐의로 특감반에서 배제된 김태우 수사관이 제공한 자료를 토대로 연일 청와대를 비판하는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청와대가 민간인을 사찰해왔으며 이에 대한 해명에 있어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수언론 보도의 상당 부분은 자의적으로 사실관계를 비틀거나 왜곡하고 있어 문제다.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청와대가 특감반 관련 실무를 어떻게 처리해왔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기자들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특감반의 보고체계는 크게 3가지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특감반원들이 첩보를 수집해 문건을 만들어 보고하면, 특감반장이 이를 분류해 부적절하거나 가치가 없는 것들을 폐기하는 ‘데스킹’ 과정을 거치고, 이를 통해 추려진 정보들은 매주 월요일 오후 또는 화요일 오전에 반부패비서관에게 보고돼 이후 대응 방침을 정한다는 것이다.

김태우 수사관이 스스로 작성해 언론에 제공한 자료들은 어느 단계까지를 거친 것인지 명확치 않다. 김태우 수사관은 비위 혐의로 직무 배제됐기 때문에 ‘첩보 문건’들은 본인이 작성한 단계에 멈춰있는 상태인 것일 수도 있고 ‘데스킹’ 과정에서 폐기를 결정한 것일 수도 있다. 실제 청와대는 김태우 수사관이 작성했다는 첩보 문건들에 대해 윗선에 보고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고 해명했다. 첩보 문건들은 일상적으로 생산됐으므로 시간이 충분하다면 각 문건에 담긴 첩보가 어떻게 처리됐는지를 밝히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보수언론은 김태우 수사관이 작성한 문건들이 담긴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찍은 사진을 근거로 청와대가 감찰 대상에 속하지 않는 경우 등 원칙에 맞지 않는 첩보가 생산됐을 경우 이는 폐기한다고 해명한 것은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논조로 보도를 하고 있다. 폐기한다던 첩보 문건이 사실은 청와대 특감반원들의 컴퓨터에 내에 남아있다고 볼 수 있고, 사진은 그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진은 김태우 수사관 본인이 스스로 청와대에서 찍은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주장과 근거 모두 김태우 수사관이 일방적으로 제기한 것인 셈이다. 김태우 수사관이 문건 폐기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결과라는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보수언론은 청와대가 거짓 해명을 하고 있다는 주장 외의 모든 가능성을 기각하고 있다. 심지어 청와대 컴퓨터의 경우 화면을 촬영할 수 없도록 하는 보안 프로그램이 설치돼있다는 해명이 있음에도 그렇다.

김태우 수사관은 전임 정권에서도 청와대 특감반원으로 일한 이력이 있다. 청와대의 해명에 따르면 김태우 수사관은 청와대의 자체 방침과는 맞지 않는 첩보를 계속해서 생산해 주의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이후에도 김태우 수사관이 유사한 내용의 첩보 문건을 계속 생산한 걸로 보인다는 점을 들어 청와대의 해명이 거짓에 가까운 걸로 보인다는 취지로 보도하고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연합뉴스)

김태우 수사관이 언론에 제공한 첩보 문건들이 왜 생산됐고 폐기되지 않고 남아 있는지를 밝히려면 청와대 윗선의 지시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양측의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청와대의 해명은 김태우 수사관이 알아서 첩보를 생산해오면 이를 선별했다는 것에 가깝고, 김태우 수사관의 주장은 윗선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첩보를 생산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메시지나 문서 등의 형태로 윗선의 일상적 지시 내용이 확인된다면 김태우 수사관의 주장은 바로 증명될 것이다. 그런데 김태우 수사관은 이 대목에서도 특감반장이 자신의 휴대폰을 빼앗아 텔레그램 메시지 등을 지워버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일방적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를 스스로 유리한 방식으로 언론에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김태우 수사관이 애초에 건설업자와의 유착 등 비위 혐의로 업무에서 배제됐고, 이와 관련한 대검찰청의 감찰이 진행 중이며, 이런 혐의를 뒷받침할만한 언론 보도가 이어지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과연 김태우 수사관의 일방적 주장을 이렇게까지 대대적으로 다룰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 상황을 상당히 낯뜨거운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다. 20일 한겨레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의 딸이 KT 자회사에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내부에서 “무조건 입사시키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고 인사 관련 전산기록에서는 정규직 전환과 관련한 석연찮은 정황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김성태 의원은 이 보도에 대한 해명을 하는 과정에서 한겨레의 보도가 청와대의 사찰에 의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주장을 내놨다. 정치인의 가족관계를 언론이 어떻게 알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한겨레는 21자 지면 기사를 통해 “특감반 문제가 발생하기 훨씬 전인 두달여 전에 이미 관련 제보를 입수하고, 10명 이상의 케이티 관계자들을 직접 확인 취재하여 기사를 작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마침 20일 중앙일보는 김성태 의원이 평소 사찰로 의심되는 전화 등을 받아왔다는 내용의 기사를 지면에 게재했다. 기자를 자처하는 누군가가 전화로 자신의 동선 등을 캐묻기에 신분을 확인하려고 했더니 끊어버리더라는 거다. 어느 매체 소속의 누구를 자처한 것인지는 따로 기억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전화를 건 사람이 기자가 맞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봐야 한다. ‘사찰’이 의혹을 비켜가는 핑계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청와대가 특감반 운영을 한점 의혹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했다고 볼 수는 없다. 청와대는 최근에야 특감반 운영과 관련한 내부 규정 등을 만들었고 그 전까지는 자체 가이드라인에 따라 일을 해왔다고 하는데, 다소 헐겁게 운영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자체 수사기능과 권한이 없는 청와대 내의 특감반이 직접 감찰 관련 정보 수집을 하는 이상 무리한 운영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선 독립적인 공수처 설치 등을 통해 감찰 기능을 재조정하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그런데 보수언론들은 생산적 대안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착한 척 하더니 보수정권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만을 반복해서 재생산하고 있다. 이런 유아적 주장을 되풀이하는 게 언론의 역할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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