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MBC(대표이사 최승호)가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을 위한 정기적 면담을 요구한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지부장 김두영)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방송제작환경 개선 문제는 MBC만이 아닌 지상파방송사 모두의 문제로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를 시작했기 때문에 지부와의 개별 협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MBC 측 공식입장이다.

하지만 최 사장이 공약을 위반했다는 비판과 함께 논의 테이블에서 당사자를 배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사장은 지난해 12월 사장 후보자 시절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을 위한 '비정규직 대표와 정기적 현안 협의'를 공약한 바 있다.

방송스태프지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언론개혁시민연대, 방송작가유니온 등 단체는 20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부 면담 요구를 거부한 최 사장을 규탄했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언론개혁시민연대, 방송작가유니온 등 단체는 20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부 면담 요구를 거부한 최승호 MBC 사장을 규탄했다. (사진=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지난 달 27일 방송스태프지부는 MBC 항의 방문에 나섰다. 방송제작환경 개선 논의 과정에서 방송사들 중 MBC가 가장 개선이 더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장시간 노동과 위법한 턴키계약 관행이 문제제기 이후에도 MBC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지부는 ▲드라마 제작 스태프 개별근로계약 체결 ▲장시간 노동 개선대책 마련 ▲드라마제작환경 개선을 위한 정기적 면담 요구 등을 담은 요구서한을 MBC 측에 전달했다.

그러나 지난 4일 MBC는 방송스태프지부에 공문을 보내 사실상 이를 거부했다. 공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제작환경개선 문제는 MBC만의 문제가 아닌 지상파 방송사 모두의 문제이며 ▲이에 따라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와 산별협약 체결 후 '드라마제작 환경개선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를 시작했고 ▲해당 협의체를 통해 전반적인 방향과 가이드라인이 정해진 후에 개별 사항을 논의하는 것이 혼선과 오해를 막는 일이라는 내용이다. 개별협의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게 MBC 측의 공식입장이다.

또한 방송스태프지부는 지난 13일 이뤄진 정영하 MBC 정책기획부장과의 면담에서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을 위한 협의체’에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는 참여할 수 없다”는 발언을 듣고 '면담 거부' 입장이 MBC 측 공식 답변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고 밝혔다.

12월 4일 MBC 측이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측에 보내온 공문 (제공=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방송스태프지부는 이 같은 MBC의 태도가 최 사장의 공약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최 사장은 지난해 12월 사장 후보자 시절 방송노동환경 개선과 관련해 ▲표준계약서 도입 ▲방송 스태프 노동조건 개선 ▲비정규직 대표와 정기적 현안 협의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지부는 "최승호 대표이사는 3가지 약속 중 단 하나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표준계약서 작성을 아직도 도입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단체와의 정기적 현안 협의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드라마제작환경 개선을 위한 논의 테이블에 정작 당사자인 스태프들의 자리는 없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방송스태프지부는 "연출감독 등 자사 소속 제작현장의 실질적인 지휘·관리자들과의 협의를 통해 제작 기준을 만들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일방적으로 적용시키겠다는 의도"라고 규탄했다. 사실상 비정규직 방송스태프들의 유일한 노조인 지부를 제외한 협의체 구성과 논의는 당사자를 배제한 논의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이날 기자회견 일동은 기자회견문에서 "요즘 MBC 뉴스에서 이야기한다. '죽음의 외주화'에 관한 것"이라며 "한국서부발전을 MBC로,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을 외주 드라마제작사로 바꾸면 모든 게 딱 들어맞는다. MBC는 원청업체라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했고, 드라마제작현장은 쉼 없이 돌아갔다"고 비유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 씨의 사례를 빗댄 것이다.

한편, 이날 언론노조는 성명을 내어 산별협약에 따른 드라마제작환경개선 협의체에 참여하지 않는 SBS를 비판했다. 언론노조는 "언론노조는 산별협약에 의거 지난 11월 13일 ‘드라마제작환경개선 특별협의체’구성을 제안했고 지상파방송사들은 이에 동의했다"며 "SBS는 한 달이 넘은 지금까지도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않아 협의체는 구성도 못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SBS 사측은 드라마분야 분사 추진을 명분으로 분사화 여부에 따라 책임 주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이유를 든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언론노조는 "이렇게 개선 논의가 중단된 사이 현장 사정은 더 악화됐고, 급기야 스태프노조와 시민단체들이 SBS ‘황후의 품격’을 노동부에 고발하고, MBC사측의 소통 의지와 개선 노력 부족을 규탄하고 나섰다"면서 "마치 특별협의체가 모든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것처럼 이해해서는 안 된다. 특히 방송사가 제작사로 하여금 스태프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하게 해야 한다. 턴키계약은 ‘방송판 위험의 위주화’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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