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가요계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화제를 낳고 있다. 아직 소녀시대 Gee만큼의 메가 히트곡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2NE1의 트리플 타이틀 곡을 통해서 앨범 내 수많은 수록곡의 활용도를 높여 그만큼의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미스에이라는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슈퍼 신인을 발굴해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2010년 가요계 최대 히트상품은 뭐니 뭐니 해도 18세 소녀 가수 아이유가 아닐까 싶다.

작년 마시멜로우로 상큼 발랄한 모습을 대중에게 다가섰지만 조권 가인의 ‘우리 사랑했어요’에 이어 2AM 임승올과 함께 부른 ‘잔소리’로 대히트를 기록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가을을 맞아서는 군대에서 돌아온 성시경을 도와 부른 ‘그대네요’를 오랫동안 차트 상위에 머물게 했다. 이즘 되면 정식 듀엣은 아니더라도 피처링이라는 품앗이를 통해서 솔로가수들에게 또 다른 무기를 장착하게 해주는 공식이 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6일 MBC 쇼 음악중심에서도 그런 달콤한 혼성 듀엣곡을 부르는 여가수가 하나 눈에 띄었다. 베이지는 FM 라디오를 듣자면 만만치 않은 입담과 라이브 실력을 과시해 목소리가 귀에 익었던 터라 주의 깊게 듣게 되었다. 방송에서는 엠투엠 정환과 나왔지만 실제 앨범은 슈퍼주니어 막내 려욱과 녹음한 ‘친구와 사랑에 빠질 때’는 노래 자체는 앞서의 혼성 듀엣곡의 느낌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었다.

댄스 아이돌의 노래처럼 절로 어깨가 들썩거리거나, 혼신을 다한 솔로곡들처럼 심취하게 되지는 않지만 한가로운 가을날 차를 타고 가면서 가볍게 들으며 누구나 한 번은 경험했을 친구와의 사랑 그 위험하면서도 숨기고 싶어 짜릿한 감정을 떠올리면 흐뭇한 미소를 지을 만한 노래다. 방송이 아닌 뮤직비디오를 보면 마치 오누이처럼 닮은꼴의 두 사람이 부르는 모습이 신기한 느낌을 준다.

이 노래를 부른 베이지는 아직 인터넷 검색을 하게 되면 유행 패션 칼라에 밀리는 인지도가 낮은 가수다. 그러나 2009년의 지지리로 마니아층도 나름 적지 않고, 최근에는 KBS 슈퍼주니어의 키스 더 라디오와 SBS 김희철의 영 스트리트에 고정 출연을 하면서 그녀의 갈고 닦은 노래 실력은 물론이고 숨길 수 없는 예능 끼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올해는 이번 디지털 솔로 ‘친구와 사랑에 빠질 때’와 더불어 올해 최대 히트 드라마 중 하나인 추노의 OST ‘달에 지다’를 불러 알게 모르게 귀에 익숙한 가수다.

혼성 듀엣은 우리나라 가요사에 그리 흔치 않다. 아주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나나에로스포가 있고 높은음자리, 한마음 등의 이름들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단일 팀으로서의 혼성 듀엣은 가요계에서 자취를 감췄고 가끔씩 피처링을 활용해서 보이고 있다. 올해 혼성 듀엣 붐을 일으킨 장본인 조권과 가인은 MBC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의 폭넓은 팬층의 뜨거운 호응을 통해 음반판매도 없이 뮤직뱅크에 연속 우승도 기록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아이유가 소녀 디바라는 명성을 공고히 하게 된 곡이 임승옹과의 잔소리였기에 이와 같은 혼성 듀엣은 앞으로도 솔로가수들의 활로찾기를 위한 주요한 방편이 될 듯싶다. 특히 아이돌 댄스그룹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없는 발라드 가수들은 그나마 한 명이라도 곁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게 되면 커다란 무대 위에서 외롭지도 않을 것이고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도 풍부한 화음을 감상할 수 있어 좀 더 각별한 흥미를 가질 수 있어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슈퍼스타K2의 장재인에 대한 지대한 관심 그리고 준준결승에서 탈락한 강승윤의 음원 사이트 정복 등 최근 한국 가요계는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댄스 아이돌 지배를 벗어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음악이 그리고 노래가 당연히 듣는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는 지극히 기본적인 원칙으로 회귀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런 흐름이 좀 더 폭넓은 유량을 갖기 위해, 발라드로 통칭되는 솔로가수들의 영역에서도 혼성 듀엣과 같은 다양한 모습으로 대중의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을 쏟고 있어 다행이다. 베이지도 그런 노력 중 하나로 눈여겨 봐야 할 가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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