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 그 때문에 영화를 좋아했고 영화를 시작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인생에 전환점을 준 인물임은 틀림없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중국어 과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장국영이 출연했던 <패왕별희>를 보았던 나는 <패왕별희> 덕분에 장국영이라는 배우를 알게 되었고 이후 수업시간에 보게 된 <야반가성> 덕분에 장국영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이후 장국영이 출연한 영화를 하나둘씩 비디오로 빌려 보게 되었고 그렇게 장국영을 조금씩 알아가던 찰나 그는 만우절의 거짓말처럼 우리 곁을 떠났고 다시는 볼 수 없는 얼굴이 되었다.

지난 14일 JTBC 영화 토크 프로그램 <방구석1열>은 만우절의 거짓말처럼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난 배우 장국영 특집으로 진행되었다. 고인이 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장국영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방구석1열>이 장국영 특집을 진행한다는 소식만으로도 영화팬들 사이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장국영 특집에 걸맞게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을 집필하기도 했던 씨네21 편집장 주성철, 장국영의 대표작 <해피투게더> 공동 제작자로 참여했고 왕가위 감독과 친분을 자랑하는 영화 제작자 정태진이 게스트와 등장해 장국영과 왕가위 영화에 얽힌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하였다.

JTBC <방구석1열>

<방구석1열>이 선정한 장국영 영화의 대표작은 1990년 제작된 <아비정전>과 1997년 제작된 <해피투게더>. 모두 다 왕가위의 대표작이자 장국영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영화이긴 하지만 <아비정전>은 국내 첫 개봉 당시만 해도 기존의 홍콩 느와르 영화와 다른 전개와 연출 때문에 수많은 관객들의 항의가 이어진 웃지 못할 과거가 있었다고 한다. 장국영의 맘보춤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아비정전>은 장국영의 팬들 사이에서는 장국영의 분신으로 여겨질 정도다.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데. 평생 땅에 딱 한 번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야.” (영화 <아비정전> 대사 중)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 정처 없이 날아다니는 아비(장국영 분)는 세상의 모든 고독과 슬픔을 다 짊어지고 가는 듯한 청춘이었다. 아비는 수리진(장만옥 분)과 루루(유가령 분)에게 연이어 상처 주는 나쁜 남자, 천하의 몹쓸 바람둥이지만 <아비정전>의 팬들은 결코 아비를 욕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사랑하는 이들에게 정착할 수 없는 아비의 근원적인 고독과 결핍을 곱씹으며 죽어서야 비로소 땅에 내려와 쉴 수 있게 된 아비의 운명을 안타까워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국적이고 몽환적인 배경 하에 장국영과 양조위의 동성 사랑 연기가 돋보이는 <해피투게더>는 어느 한 사람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헤매는 아비의 또 다른 이야기로 보이기도 한다.

JTBC <방구석1열>

실제 왕가위는 배우 장국영을 매우 사랑했고 장국영 또한 왕가위 영화 속 자신의 분신들을 아꼈다고 한다. 장국영과 왕가위. 이제는 양조위가 왕가위의 대표 페르소나로 자리매김 한지 오래지만 왕가위 영화 특유의 고독, 우울, 슬픔, 허무를 고스란히 대변하는 얼굴은 장국영이었다. 장국영의 수많은 출연작 중에 유독 <아비정전>과 <해피투게더>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도 왕가위야말로 장국영이 가진 근원적인 매력을 잘 끌어올린 유일한 감독이어서가 아닐까.

왕가위 영화 외에도 장국영이 빛났던 영화들은 꽤 있었다. <방구석1열>에서 잠깐 언급하기도 했던 <영웅본색>도 있었고 그를 홍콩 최고 청춘스타덤에 올렸던 <천녀유혼>, 장국영의 경극 연기가 빛났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패왕별희>도 있다. 개인적으로 장국영이라는 배우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야반가성>이었다. 그러나 <야반가성>으로 장국영의 팬이 되었지만 장국영의 최고작을 꼽으라면 단연 <아비정전>을 택하고 싶다. 발 없는 새처럼 정처 없이 방황하던 아비와 만우절의 거짓말처럼 우리 곁을 홀연히 사라진 장국영이 여러모로 닮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아시아 최고 미남, 연기천재, 이 모든 수식어로 설명할 수 없는 영원한 별. 장국영을 더욱 보고 싶게 하는 <방구석1열> 장국영 특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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