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은 2014년 3월 노조 결성 이후 ‘진짜사장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투쟁해왔다. 노조가 끈질기게 싸워온 결과, LG유플러스는 지난 9월 드디어 정규직화 방안을 내놨다. ‘부분자회사’다. 전국 72개 홈서비스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2600여명인데 이중 1300명만 자회사로 고용하고, 나머지 1300명은 하청업체 소속으로 남기겠다는 것이다. 천하제일의 어용노조라도 수용할 수 없는 황당무계한 방안이다. 그래서 우리 노조는 10월 15일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32 소재의 LG유플러스 본사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매일 같은 메뉴의 도시락을 꾸역꾸역 삼켜낸다. 춥고 시끄럽고, 매연도 심하다. 잠이 오질 않는다. 억울하다. 그래서 쓴다. / 글쓴이 주

⑧편 <이 동지들이 트윈타워 연단에 오를 수 있을까>를 잇습니다.

노숙농성을 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던 것 같다. 동지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답답합니다. 솔직히 어디라도 올라가야 하나 싶어요.” 동거인에게 물어본 적도 있다. “내가 고공농성을 한다면 자기는 어떨 것 같아?” 투쟁이 장기화하면 사고방식은 극단적으로 변한다.

11월까지만 해도 자전거를 타고 연신내 집과 한강대교 북단 농성장을 출퇴근 했는데, 오가면서 그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올라갈 만한 곳을 찾아봤다. 이 국면을 뚫어내기 위해 어떤 게 필요할까.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언론과 국회와 시민들의 관심, 아니, 동정을 받을 수 있을까. 온통 이 생각이었다. 다른 노조에 쏠리는 관심이 부럽기까지 했다.

12일 오전 희망연대노동조합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이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사진=희망연대노동조합 제공

그러다가 LG전자 사태(!)가 터졌다. LG그룹의 기술서비스노동자 정규직화 모델이 ‘원청 직접고용’으로 확정된 것이다. 기대감이 다시 부풀어 올랐다. 긴급하게 성명을 쓰고, 여기저기 취재하고, 원청의 입장 변화를 기다렸다. 그런데 원청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를, 그것도 모자라 노동자의 절반만, 얼씨구나 단계적으로, 절씨구나 내년이 아니라 내후년부터…

단계적 부분자회사. 이걸 고집할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아… 상대를 만만히 봤다. 딜라이브, 120다산콜재단, 경희대, 삼성전자서비스, SK브로드밴드 같은 정규직화 모델이 버젓이 있는데도 그걸 깡그리 무시한 LG유플러스 아닌가. 국회와 노동부에 부분자회사를 ‘최종안’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단식’을 밀어붙였다. 우리 조합원들이 목숨을 걸고 곡기를 끊는다면, LG유플러스가 압박을 더 강하게 받을 거라 생각했다. 단식이 열흘이 넘어가면서 동지들은 서 있을 힘이 없고, 눈에 핏줄이 터지고, 코에서 피가 나고, 구급차에 실려 갔다. 농성장에 남은 동지들은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미치겠다.

그리고…

그나마 생글생글 웃고 말도 열심히 하는 동지 둘이 사라졌다. 김충태, 고진복 두 동지는 어제 새벽 철탑에 기어올랐다. 강변북로와 한강대교 북단 사이, 높이는 40미터, 바람에 흔들리는 저 철탑에 기어올랐다. 두 사람은 장문의 글을 남겼다.

“오늘 새벽 저희는 이곳 원청 앞 철탑에 올랐습니다. 오늘이 단식 14일차입니다. 단식을 함께 시작한 동지들이 하나둘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희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2달째 원청 앞에 농성을 하고 있어도, 보름이나 사람이 곡기를 끊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원청! 더는 참을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새벽 굶주려서 기운 없는 몸을 채찍질해 이곳 철탑에 올랐습니다. 여기서라면 좀 더 우리 목소리가 크게 들리기를 바라는 간절함 하나로 간신히 올라왔습니다.”

눈물이 났다. 특히 이 대목에서. “여기서라면 좀 더 우리 목소리가 크게 들리기를 바라는 간절함 하나로 간신히 올라왔습니다.” 사실 기자와 PD와 작가를 설득해서 언론을 조직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다. LG가 말도 안 되는 부분자회사를 내놨을 때, 노숙농성에 들어갔을 때, 단식투쟁에 돌입할 때마다 나는 ‘이 정도 문제라면 언론이 받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언론은 붙지 않았다. 어떤 동지가 이야기하더라. ‘이제 직접고용 투쟁, 단식투쟁은 언론이 붙질 않는다.’ 나는 언론을 욕하기 시작했다. “우리 목소리가 크게 들리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뒤늦은 고백이지만, ‘한강대로32’ 시리즈는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쓰기 시작한 거다.

동지들은 고공에 체류하고, 우리는 그 밑을 지키고 있다.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이고, 땅은 온통 얼어붙었고, 겨울 강바람이 우리 동지들을 흔들어대고 있지만, 고공의 동지들도 땅을 딛고 있는 동지들도 그리고 나도 애를 써야 한다. “노조 때문에 생긴 연차, 노조를 위해 쓰겠다”는 동지, 고공농성 사수대에 지원한 수십명의 동지들, 부부가 함께 단식에 참여하겠다는 조합원 동지, 긴급한 파업지침에도 한걸음에 달려오는 조합원들도 같은 마음일 거다. 지금 우리는 ‘단결’했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LG그룹 정규직 노동자들이 21일 종무하고 내년 1월 1일까지 겨울휴가에 들어가든지 말든지, 구광모 회장은 내년 1월 ‘뉴 LG’ 비전을 선포하든지 말든지, LG그룹이 ‘120억 이웃사랑 성금’과 LG유플러스가 ‘독거노인 난방용품 나눔활동’으로 (정말 오랜만에 주목받은) 투쟁 이야기를 밑으로 끌어내리든 말든 우리는 최선을 다해 싸워야 한다. 고공농성 2일차, 단식 15일차, 노숙농성 60일차.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야 한다.

※ ⑩편을 마지막으로 <한강대로32> 연재를 마치려 합니다. 투쟁이 끝나는 날, 기어코 우리가 이기는 날 마지막 원고를 쓰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한강대로32로 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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