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땐뽀걸즈- 학원물 그 이상의 학원물,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 그 자체로 충분하다거제판 <빌리 엘리어트> … 따뜻하고 진솔, 현실감각 빛난 학원물
장영 기자 | 승인 2018.12.12 11:25

거제는 조선소의 도시다. 조선업이 비틀거리며 거제 전체가 휘청거리게 되었다. 상고를 다니는 소녀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체육관으로 향한다. 춤추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그녀들에게 '땐뽀걸즈'는 가장 값진 기억이다.

땐뽀걸즈에 담아낸 학원물의 새로운 가치

KBS 스페셜로 방송되어 화제를 모았던 <땐뽀걸즈>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되어 극장 개봉까지 되었다. 그 안에는 기존 학원물에서 볼 수 없는 새로움이 가득했다. 학원물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상업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새롭다.

드라마로 극화되며 다양한 이야기들이 추가될 수밖에는 없었다.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가 아닌 살이 붙으며 본질이 훼손되는 경우도 생긴다. <땐뽀걸즈>도 그런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다큐를 봤던 이들에게 드라마는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KBS 2TV 월화드라마 <땐뽀걸즈>

거제 여상에 있는 동아리 중 하나인 '땐뽀걸즈', 노력(?) 없이 손쉽게 들어간 그곳에서 벌어지는 학생들과 교사의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여기에 학원물이라는 특성에 맞는 배우들까지 가세했다. 

여상에서는 졸업도 하기 전 조선소 경리로 취직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져 왔다. 이미 정해진 미래,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할 이유가 없다. 다양한 이유와 조건이 가득한 개인들이 모여 있는 학교에서 댄스 스포츠 동아리에 모인 이들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기존 학원물은 공식이 있다. 모든 것을 가진 집안의 아들과 딸들, 그리고 그들에 빌붙어 살아가는 존재들이 있다. 이들과 맞서게 되는 외로운 늑대와 같은 아웃사이더가 존재한다. 거칠지만 순수하고 멋지다. 그리고 그런 가진 것 하나 없고 적응하지 못하는 이를 사랑하는 청순가련한 인물이 나와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간 학교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일 뿐 현실감이 없었다. 다른 형식의 드라마 속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 연령만 낮춘 수준에 그친 것이 사실이다. 여타 학원물 드라마와 <땐뽀걸즈>가 다른 이유는 바로 현실감에 있다.

KBS 2TV 월화드라마 <땐뽀걸즈>

아는 이들은 알고 있듯, 이 드라마는 KBS 스페셜이 원작이다. 이후 다큐멘터리 영화로 극장에 걸리기까지 했다. 철저하게 거제여상의 날 것 그대로라는 의미다. 드라마는 여기에 살을 더 붙여 시청자들이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가공했지만 기본 틀 자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땐뽀걸즈>의 배경은 여상이다. 예술고나 유명 사립고가 아닌 여상이 배경이라는 것 자체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곳에 다니는 아이들의 집안은 기존 학원물 드라마와는 다르다. 대단한 갑질을 할 만한 집안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조선업이 흔들리고 있는 거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한때 조선업으로 큰 혜택을 받았던 도시이지만, 역설적으로 흔들린 조선업으로 함께 힘겨운 신음을 내는 도시의 이야기는 시대상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환경이나 도전 등이 유사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상에 들어가 취업을 하고 그렇게 엄마가 걸어온 길을 가는 아이들. 그런 그들에게 댄스 스포츠는 자신의 청춘을 기억하게 하는 가장 값진 추억이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고 인생의 패배자처럼 취급 받는 그녀들에게도 꿈이 있고 희망도 존재한다. 누군가에게는 실패한 인생이고 날라리라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지만 그녀들에게는 자신만의 삶이 있다.

시은을 중심으로 학교 동아리 '땐뽀걸즈'에 모인 학생들과 교사의 이야기는 다큐와는 또 다른 재미로 다가온다.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고민을 품은 채 모여 춤을 배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작고 큰 일들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적 편견에 맞서든 모는 것을 포기하든 선택해야만 하는 그녀들에게 삶은 고달프다.

KBS 2TV 월화드라마 <땐뽀걸즈>

비정규직 자녀들의 삶은 힘들 수밖에 없다.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쉽지 않는 현실에서 비정규직 어머니는 막내딸을 인문계가 아닌 상고에 가도록 강요한다. 현실의 척박함을 아는 어머니에게는 꿈은 무모한 가치로 다가온다.

남편이 사망한 후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어머니. 회사의 부당해고에 맞서 싸워야 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별에 대해서도 맞서야 한다. 하지만 고되고 힘겨운 투쟁 과정에서 동지들은 떠나가고 힘겨운 현실에 맞서 싸워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어머니의 삶은 고달프다.

거친 노동현장에 있는 어머니를 외면하는 딸. 그런 딸의 마음을 읽고 교사의 상담도 외면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어머니 본인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현실과 이상 속에서 조금씩 삶을 배워가는 딸 시은도 고통스럽기만 마찬가지다.

중학교 시절 공부를 잘했다. 그렇게 남들처럼 공부해 대학을 가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지도 않은 여상에 간 시은은 마침 동네에 촬영 온 영화제작 현장을 보고 꿈을 키웠다. 멋져 보이는 오빠도 사귀고, 그가 성공하기 바라며 자신도 감독으로 성공해 그와 함께하겠다는 꿈도 꿔보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저 현실일 뿐이었다.

여상에 다니는 친구들을 스스로도 경멸했던 시은. 자신은 공부와 담을 쌓은 그들과 다르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들켜버린 후 친구들과 서먹해진 그녀. 이미 깊은 상처들로 내공이 쌓인 혜진은 시은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파본 이는 아픈 사람을 안다.

KBS 2TV 월화드라마 <땐뽀걸즈>

그 무엇보다 아픈 말로 벤 상처. 그런 상처들마저 치유하는 춤의 매력. 그 매력으로 하나가 된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아름답다. 그들의 삶이 녹록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조선업이 다시 성황을 이룬다고 한들 그들의 삶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은 없다.

기회의 사다리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 사회 속에서 그럴 듯한 꿈은 허상으로 다가온다. 현실적인 꿈은 꿈이라 말할 수도 없어 스스로 포기해버린 청춘들. 그런 청춘들에게 '땐뽀걸즈'는 유일하게 애정을 품을 수 있는 공간이다.

대단할 것 없고, 앞으로도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삶 속에서 오늘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한 노력. 최근 유행했던 삶의 가치와도 맞닿아 있는 <땐뽀걸즈>다. 여성 드라마이자 학원물인 이 드라마가 던지는 화두는 심오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그저 있는 그대로 삶을 이야기할 뿐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야기는 더욱 선명해진다.

<땐뽀걸즈>는 따뜻하다. 소녀들이 가질 수 있는 감성과 우정을 잘 담아내고 있다. 대단한 이야기를 품을 수 없지만 그 작고 별 볼일 없어 보이는 것에서 우리네 삶을 진솔하게 끌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장영 기자  mfmc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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