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무릎팍도사는 밋밋해졌습니다. 충분히 예상가능하고 그 결말이 뻔하게 보이는 작품 홍보, 출연자 포장을 위한 안전한 방향으로만 치우쳐버렸거든요. 초대 손님들의 치부를 은근슬쩍 물어보던 초기의 과감함, 의외성을 덧입혀주었던 유세윤과 올밴의 난입, 게스트와 밀고 당기며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게 했던 강호동 특유의 집요함은 모두 예전의 일이죠. 이제 무릎팍도사님과 그의 동료들은 게스트가 말하고 싶은 것을 털어놓게 해주는 해명과 변명, 혹은 호감을 배가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우미 역할에 충실할 뿐입니다. 무릎팍도사는 어디서 웃음을 터트려야 할지 난감한, 킥킥거리며 웃기 위해선 라디오스타를 기다려야 하는 지루한 연예인 홍보쇼가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이렇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어떤 내용을 강조할지를 세련된 조율과 합의로 결정한 홍보의 장에 색다른 재미를 주는 사람은 방송 카메라가 어색하고 예능 프로그램이 불편한 출연자들입니다. 10여년만의 예능 나들이가 신기한 듯이 두리번거리고,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머뭇머뭇거리던 영화배우, 유지태처럼 말이죠. 도무지 빵 터진 부분도 없었고, 그가 스스로 어떤 재미를 창출한 것도 아니지만, 이 진지하고 차분한 게스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무릎팍도사 사람들과 그 틈새로 보이는 사람의 매력을 지켜보는 재미가 은근 쏠쏠했거든요.

따지고 보면 유지태 스스로 감당한 방송 분량은 많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의 숨겨진 무언가를 모두 다 털어놓게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한 시작에 비해, 지금까지의 출연자 중에서도 그가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새로운 것을 밝힌 것도, 인상적인 내용도 별로 없어요. 차분하게 가족관계를 이야기하고 학교 시절의 에피소드, 자신의 꿈, 작품과 관계된 이야기, 오래된 연인 김효진과의 러브스토리를 나열하는 동안 어떤 군더더기도, 포장도, 포인트도 발견하기 힘들더군요. 그냥 유지태가 이야기하고 듣고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담담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이전의 다른 출연자들이 했던 자극적인 폭로나 고백, 변명이나 자기과시보다 훨씬 더 배우, 사람 유지태에 대해 가깝게 느낄 수 있더군요. 재미나 웃음을 위해서 무엇 하나를 더하려고 하거나 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질문에 따라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툭툭 털어놓았던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마음 속 아주 깊은 것까지 털어놓지 않더라도, 눈물범벅의 감동을 말하지 않더라도 훨씬 더 진솔하고 솔직해 보였습니다. 재미와 감동은 없었을지언정 훨씬 더 진정성을 보여준, 수줍고 진중한 남자 유지태에 대한 가장 적절한 소개장이었어요.

올드보이의 이유진 역할 촬영 당시 성관계를 하지 않겠다고 박찬욱 감독에게 결의를 말했다는, 미혼 남자 배우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폭탄발언을 하고도 그 수위가 과해 보이지 않습니다. 무릎팍 도사에 나오는 사람들마다 모두 한 번씩 거치는 영상 편지를 그의 연인에게 보내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상대방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것인지를 먼저 말합니다. 얼마든지 흥미를 끌 수 있는 독특한 가족 내력,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지만 고생을 자랑하거나 한탄하지 않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그가 느꼈던 만큼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였죠. 이렇게 담백할 수가. 유지태는 어떻게든 자신을 포장하고 홍보하려는 의도가 역력했던 이전의 무릎팍도사가 초대했던 다른 게스트들과는 조금은 다른 사람이었어요.

물론 그렇기에 많은 방송 내용이 나간 것은 아닙니다. 앞부분은 그의 절친한 동생이라는 스모선수 김성택의 이야기로 채워졌고, 전체 방송도 40여분이었으니 최근 그 누구보다도 분량이 적었죠.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재미있었습니다. 이 진지한 남자를 설명하는 것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 이야기한 것처럼 무릎팍도사는 여러 장점들을 포기했지만 그럼에도 이 프로그램의 생명력이 여전히 강력한 것은, 이렇게 한 사람을 그에 맞추어 능숙하게 수위를 조절하면서 알맞은 강도와 호흡으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담담해서 특이한 폭탄발언을 하는 남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방송. 유지태의 무릎팍도사는 지금 이 프로그램이 가진 장점을 보여주는 방송이었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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