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효성)가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 불공정 거래 문제 해결을 위해 가이드라인(안)을 내놓고, 각 주체의 의견수렴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개최했다. 외주제작사의 저작재산권을 인정하고 프로그램 제작비에 대한 표준가격표를 마련하는 내용이 골자다. 그러나 문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지상파·종합편성채널 방송사업자들은 토론회에 불참, 방통위 가이드라인을 사실상 '보이콧'했다.

지난 7일 오후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방통위 주최로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거래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해 12월 방통위·문체부·과기정통부·고용노동부·공정위 등 정부 5개 부처는 '외주제작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 방통위의 가이드라인은 정부 종합대책의 일환이다.

이 자리에서 가이드라인 발제를 맡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황유선 연구원은 '공정거래'에 초점을 맞췄다고 강조했다. 방송제작환경 개선과 같은 노동시장 여건에 대한 내용은 가이드라인에 담기지 않았지만 외주제작사의 저작권 인정, 외주거래 표준가격표 마련 등 외주거래 원칙과 거래정보의 투명화를 중심으로 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됐다는 설명이다.

7일 오후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 주최로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거래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황유선 연구원이 방통위 가이드라인에 대한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가이드라인은 크게 저작재산권 및 수익배분, 방송 프로그램 표준가격표, 거래절차 및 계약방식, 공표와 자료제출 등의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저작재산권 및 수익배분' 조항에는 '외주제작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재산권은 프로그램 창작에 기여한 자에게 발생한다'는 저작권 원칙이 명시돼 있다. 방송사업자의 프로그램 제작의뢰, 기획회의 참여, 장비·설비지원 등 '재정적 기여'는 창작에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으로, 방송사업자는 제작사와 합의하여 이용 권리를 양도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방송사와 제작사는 계약과정에서 프로그램에 대한 권리와 이용·유통으로부터 발생하는 수익배분의 범위와 기간, 독점권 여부 등을 합의를 통해 정하게 된다. 협찬·간접광고 등 수입에 대한 배분기준도 협의를 통해 마련해야 한다.

'프로그램 표준가격표' 조항에서는 방송사업자가 '일차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지불하고자 하는 프로그램 구매가격을 '표준가격표'로 규정했다. 방송사가 제작사와 협의를 통해 일차적 권리의 범위와 이를 기반으로 한 합리적인 '표준가격표'를 마련하여 공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프로그램 이용권리(방송권, 전송권 등)에 대해 방송사와 제작사가 협의하고, 표준가격을 공표하도록 해 '거래 기준점'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표준가격표는 인건비, 관리비 등 제작비와 프로그램을 통해 발생할 기대수익 등을 고려해 외주제작 프로그램의 장르별(교양·다큐·예능·오락·드라마 등), 유형별(단편물·시리즈물·코너물 등)로 최저가와 최고가 제시를 원칙으로 한다. 방송사업자가 마련한 표준가격표에 독립제작사를 대표하는 단체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방통위가 일정기간을 정해 재협의를 권고할 수 있다.

가이드라인은 전반적인 거래절차를 '공표'하는 것으로 '거래 투명화'를 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방송사는 제작사의 기획안 제출부터 최종 편성계약 체결까지의 세부 단계와 각 단계별 기간을 명시해야 한다. 방송사와 제작사가 계약을 체결할 경우 표준계약서 형태의 서면계약서를 촬영 전 작성해야 한다.

방송사가 해당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반영한 '표준 외주제작거래 규칙'을 마련해 홈페이지에 공표하고,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연간보고서를 작성해 방통위에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방통위는 2019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매 3년이 되는 시점마다 타당성을 검토해 개선 등 조치를 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 같은 내용의 가이드라인에 대해 주요 방송사업자, 즉 지상파·종편 사업자들은 이날 토론회에 불참하는 것으로 사실상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들은 방통위가 방송사업자의 의견수렴을 충분히 하지 않은 채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며 해당 가이드라인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11월 9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상생 방송제작을 위한 독립창작자 인권선언문 선포식'에서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토론회 사회자는 "오늘 패널로 참석하기로 한 방송사업자 측에서 내부 사정상 참석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왔다"고 말했다. 이어 고삼석 방통위 상임위원은 인사말에서 "지상파·종편 사업자가 자리에 불참한 데 대해 상당히 아쉽게 생각한다"며 "지상파 4사와 종편 4사가 의견서를 제출해 받았다. 10가지 정도의 의견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방송사업자들의 입장은 애초 '성명서' 형태로 발표될 예정이었지만 '의견서' 형태로 방통위에 제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고 위원은 "이 토론회는 논의의 종료가 아니라 시작"이라며 "방통위는 합의체다. 결코 졸속으로 결정된다거나 밀실로 처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충분한 논의와 공감대 형성없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방송사업자들이 제출한 의견서에 '밀실', '졸속' 등의 방통위를 비판하는 문구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주정민 전남대 교수에 따르면 방송사업자들은 ▲방송사업자에 지나친 구속력 행사 저작권법에 대한 불합리한 해석 특정 사업자를 가이드라인에서 배제해 차별 발생 가능 일부 해외 방송 정책을 그대로 적용 제작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함 대표성 없는 단체에 근거 없는 권한 부여 가능 원저작자 저작권료 책임 소재 불분명 공정위 등 타 부처와 상반되는 법 해석 포함 '규제 완화'라는 글로벌 트렌드에 역행하는 '규제 강화' 기조 지나친 규제 시 콘텐츠 경쟁력 약화 우려 등의 의견을 제출했다.

외주제작 불공정 거래 문제에 대한 정부의 종합대책은 지난해 tvN '혼술남녀' 조연출이었던 고 이한빛 PD의 죽음, 박환성·김광일 독립PD의 죽음, tvN 드라마 '화유기' 제작 현장 스태프 사고 등 열악한 방송제작환경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필요성이 제기됐다.

40개 지상파 방송사를 회원사로 두고 있는 한국방송협회는 지난 달 전국언론노동조합,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등과 함께 '상생 방송제작을 위한 독립창작자 인권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종편은 인권선언에 참여하지 않았다.

지상파방송 중간광고 도입이 사실상 확정되는 것과 맞물려 방송협회는 '방송의 공익성 강화와 상생환경 조성을 위한 대국민약속'을 발표하기도 했다. 중간광고로 발생하는 추가 수익을 프로그램 제작, 외주제작 환경 개선, 방송스태프 처우 개선에 투입하겠다는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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