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경기 모두 1점차로 승부가 갈린 삼성과 두산의 플레이오프는 1차전과 4차전 승리팀이 5차전도 승리하며 한국 시리즈 티켓을 거머쥔다는 징크스를 재확인하며 마무리되었습니다.

두산은 불운이 겹쳤습니다. 선발 차우찬과 배영수를 상대로 타선이 폭발해 일거에 5득점하며 쉽게 인천으로 향하는 듯했지만, 호투하던 히메네스가 갑작스런 손가락 물집으로 인해 최형우에게 홈런을 허용한 후 조기 강판당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게 되었습니다. 히메네스의 물집은 3회말부터 문제가 되었으니 일찌감치 왈론드가 몸을 풀어둔 뒤, 히메네스가 4회말 신명철에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준 뒤 박한이부터 이어지는 삼성의 좌타자들을 상대로 구원 등판하는 편이 나았습니다. 하지만 히메네스가 최형우에게 2점 홈런을 허용하며 분위기가 삼성으로 넘어간 뒤 등판한 왈론드는 추가 실점하고 말았습니다. 김경문 감독의 투수 교체가 한 박자 늦었습니다.

▲ 두산 선발투수 히메네스가 경기 도중 손가락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더욱 아쉬웠던 것은 그에 앞서 5:0으로 앞선 4회초 무사 1, 2루에서 이종욱이 희생 번트에 실패한 후 병살타로 물러나며 추가 득점에 실패한 것입니다. (이종욱에 이은 김동주가 사실상 고의 사구로 출루하고 최준석을 상대로 배영수가 고전하자 볼카운트 2-2에서 정현욱이 구원 등판해 최준석을 삼진 처리했는데, 선동열 감독의 투수 교체는 결과적으로 적중했습니다.) 만일 4회초 1점이라도 추가했다면, 정규 이닝이 종료될 때까지 삼성이 5점에 묶였으니 두산이 승리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문책성 교체된 이종욱을 대신한 김현수가 2타수 무안타에 그쳤기에, 준플레이오프부터 타격감이 좋았던 이종욱이 그대로 라인업에 남아있었다면 경기의 향방이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접전 양상의 큰 경기 종반에는 주루사나 실책이 승부를 좌우하는 일이 잦은데, 11회말 박석민의 타구를 끝내기 내야 안타로 만들어준 손시헌의 수비는 사실상 실책과 다름없었습니다. 타구를 처리하지 못하면 패배한다는 압박감과 더불어 어느덧 두 자릿수에 달한 포스트시즌 출장으로 인해 피로가 누적되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박석민이 발이 빠르지 않은 우타자였음을 감안하면 손시헌의 수비는 평소 안정적인 모습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2007 시즌 이후 4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으나 2년 연속 준우승에 이어 2년 연속 플레이오프 5차전 끝에 무너진 두산은 마무리 이용찬의 공백이 아쉬웠지만, 근본적으로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습니다. 한국 시리즈 우승을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선발 투수진이 약하다는 점에서 두산이 내년 시즌을 앞두고 보강해야 하는 과제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 11회말 1사 상황 삼성 신명철의 타석 때 2루주자 김상수가 폭투를 틈타 3루로 슬라이딩 하고 있다 ⓒ연합뉴스
히메네스가 물집으로 강판되는 행운을 놓치지 않은 삼성의 집중력이 돋보였습니다. 특히 데뷔 2년차로 포스트 시즌에 처음 출전한 김상수의 활약이 빛났습니다. 5:2로 추격한 4회말 2사 만루에서 터진 김상수의 2타점 적시타는 삼성으로 하여금 자신감을, 두산으로 하여금 조바심을 불러온 결정적인 안타였습니다. 6회초 선두 타자 이원석과 10회초 1사 후 양의지의 안타성 타구를 모두 아웃 처리한 호수비도 돋보였습니다. 장원삼이 구원 등판한 6회초 첫 타자 이원석의 타구를 김상수가 처리하지 못해 출루시켰다면 6이닝 1피안타 1사사구 무실점의 놀라운 호투가 뒤따르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김상수는 11회말 선두 타자로 나와 안타로 출루해 조동찬의 희생 번트로 2루를 밟은 뒤, 임태훈의 폭투에 3루까지 진출했는데, 기록상으로는 폭투였지만 포수 양의지로부터 투구가 멀리 벗어난 것은 아니었기에, 김상수의 기민한 주루 플레이는 3루 도루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1사 3루의 위기에 몰린 두산은 만루 작전을 쓸 수밖에 없었고, 2사 만루에서 박석민의 땅볼을 손시헌이 처리지 못해 김상수가 결승 득점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팀 막내인 김상수가 공수주 모두에서 수훈을 세운 것입니다. 수비 부담이 가장 많은 유격수로서 완벽한 수비가 뒷받침되었기에 타격과 주루에서의 활약이 가능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삼성은 6회말 무사 1루에서 좌월 동점 2루타를 터뜨리고도 3루에서 횡사한 이영욱의 주루사로 인해 한국 시리즈 티켓을 날릴 뻔 했습니다. 무사였으니 2루에서 있으나 3루에 있으나 큰 차이가 없으며, 2루에 머물러도 김상수가 희생 번트로, 조동찬의 희생타로 충분히 득점할 수 있었는데, 이영욱의 과욕이 자칫 경기를 그르칠 뻔 했습니다. 1993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김선진이 오버런으로 아웃되어 LG가 한국 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던 장면이 떠오르는 주루사였습니다.

▲ 11회말 2사 만루에서 삼성 박석민의 결승타로 승리한 삼성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기뻐하고 있다ⓒ연합뉴스
한국 시리즈는 충분한 힘을 비축했지만 경기 감각이 다소 떨어지는 SK와 투수진이 바닥났지만 극적인 승리로 분위기를 탄 삼성의 대결로 압축되었습니다. 한국 시리즈의 장기화를 노리는 삼성은 인천에서의 원정 2연전에서 1승 1패를 목표로, 패하는 경기에서는 무리한 투수 운용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투수진에서는 권혁과 안지만, 타자들 중에서는 채태인의 부활이 필수적입니다. 반면 SK는 지친 삼성을 상대로 시리즈를 빠르게 끝내고자 인천에서의 2연전에서 전승을 노리며 에이스급 투수들을 총동원해 기선을 제압하려 할 것입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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