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월드컵 당시 한국 축구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것은 바로 수비 자원을 제대로 할만한 선수가 별로 없었다는 것입니다. 허정무 감독은 포백 수비를 정착시키기 위해 다양한 조합을 투입하며 시험을 거듭했지만 확실한 조합을 찾는 데는 실패했고 결국 손발을 많이 맞춰본 조용형, 이정수로 월드컵에 나섰습니다. 분투하기는 했지만 월드컵 16강전까지 4경기를 치르면서 8골을 내주며 다소 아쉬운 성적을 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 축구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가장 큰 과제로 대형 수비수를 찾는 것이 가장 먼저 꼽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조광래호가 출범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형 자원이 나타났습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끌었던 U-20(20세 이하)대표 출신으로 지난해 U-20월드컵 8강 주역이었던 홍정호(제주)와 김영권(FC 도쿄)이 짧은 기간 안에 대표팀의 주축 수비수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경험 면에서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를 벗어던지고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기존 선배 선수들의 아성을 뛰어넘고 일찌감치 붙박이 가능성을 보여주려 하고 있습니다.

▲ 한ㆍ일 축구대표팀 평가전에서 한국 홍정호가 일본 마에다와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조광래호 출범 후 3경기를 치르면서 홍정호와 김영권은 나란히 3경기, 2경기에 출전해 활약했습니다. 나이지리아전에서는 김영권이, 또 한일전에서는 홍정호가 90분 풀타임을 뛰며 소중한 경험을 쌓았는데요. 나름대로 조광래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는 플레이를 펼치며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부진한 경기력 때문에 비판받고 있는 조광래호지만 대형 수비수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선수에게 기회를 줬고 그 선수들이 기대에 부응하며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상당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바로 어제 출전해 조광래호 출범 후 모든 경기에 출전한 홍정호는 전체적으로 부진한 팀 분위기 속에서 한국 축구가 찾은 희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안정적인 경기를 펼쳐 인상적이었습니다. 활발한 움직임과 제공권을 활용한 플레이로 안정적인 수비 운영을 펼치는 데 한 몫 해냈는데요. 빠르게 역습해 들어오는 일본 공격진을 적극적인 몸싸움과 적절한 위치 선정으로 차단해 내면서 진가를 보여줬습니다. 무엇보다 큰 경기에서 풀타임을 뛰어 부담이 있었을 텐데도 안정적인 폼을 유지했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히려 전혀 주눅들지 않고 자신감 있는 수비력을 보여주며 차세대 대표팀 수비를 이끌 자원임을 제대로 확인시켰습니다.

이번 한일전에 출전하지 않았지만 김영권도 홍정호와 더불어 좋은 활약을 펼칠 기대주로 떠오르며 조광래 감독의 신임을 받고 있습니다. 187cm라는 큰 키를 활용한 가공할 만한 제공권, 위협적인 압박이 좋은 김영권은 체격 좋은 선수들과의 매치업에서 밀리지 않고 부지런히 폭넓게 움직이는 모습으로 자신의 수비 역할을 효과적으로 잘 해내는 선수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특히 체격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을 수 있음에도 발군의 스피드 실력을 자랑하며 측면 자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는 다재다능한 능력이 김영권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이 젊은 선수들의 선전은 대표팀 수비 경쟁에도 더욱 불을 지피는 계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허정무호 시절 '황태자'로 불렸던 곽태휘는 완전히 서브(Sub)로 전락했고, 이정수나 조용형 역시 주전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조광래 감독 역시 홍정호, 김영권의 활약에 기대감을 가지면서 만족을 표하고 있는데요. 지난 이란전에서 경기를 마친 뒤 조 감독은 "젊은 수비수가 나오지 않으면 대표팀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무리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홍정호와 김영권을 투입하고 있다."라면서 "월드컵, 아시안컵 등 중요한 대회에 김영권, 홍정호 등 젊은 선수들의 활약이 중요한데 오늘 좋은 활약을 보여 큰 기대를 걸고 있다."라며 높은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중용해서 멀리는 2014년 월드컵에서 뛸 선수 재목으로 김영권과 홍정호를 지목한 셈입니다. 기회를 얻은 이들의 발전 가능성이 확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젊은 선수들인 만큼 자신만의 컨트롤을 통해 지금의 폼을 잘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에 하나 부상이나 어떤 계기로 슬럼프에 빠졌을 때 이를 만회할 수 있는 모습도 보여줘야 합니다. 하지만 크게 걱정되지 않는 것은 이들이 앞으로 21세 이하 아시안게임, 23세 이하 올림픽 등을 통해 '대형 수비수 출신' 홍명보 감독 아래서 배우고 성장할 선수들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축구에 수비 자원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홍 감독 밑에서 탄탄한 기량을 배우고, 개성 넘치고 지능적인 축구를 선호하는 조광래 감독 아래서 자신의 기량을 매번 100% 잘 보여주기만 한다면 2014년을 넘어 그 이후에도 한국 축구의 수비를 책임질 확실한 자원으로 이 두 선수가 거듭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가능성 있는 이 선수들의 성장으로 든든한 벽을 갖춘 한국 축구를 보다 오랫동안 볼 수 있도록 코칭스태프나 지도자의 끊임없는 도움이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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