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깔아 뭉개면서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의혹을 크게 키워 보도할 때 심상치 않은 배경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일보가 민주노총 문제로 ‘오버’하는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막 나가는 이유는 ‘큰 그림’ 차원의 판단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최근 유성기업 관련 보도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노조원들이 회사 임원을 폭행한 것은 물론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다. 그러나 언론이 보도를 할 때에는 어떤 맥락으로 하느냐가 중요하다. 조선일보는 정권이 민주노총과 한편에 서서 비호하기 때문에 생긴 일처럼 묘사했다. 문재인 정권이 반대파를 잡아 가두고 기업을 때리는 것은 법치를 포기하고 폭치를 택한 결과라는 프레임까지 등장했다.

이런 어이없는 생각을 이들은 진심으로 믿는 것일까? 그렇다기보다는 결국 분위기 조성에 강한 동기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이 반감을 느낄 만한 일을 모아 이 정권과 연결고리를 만들고 보수야당이 이에 대한 반대를 결집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실제 같은 시기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언론 인터뷰에 응해 조선일보 등이 만든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인 게 사실이다.

이게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 하락 국면과 겹쳐 자유한국당 지지율의 소폭 상승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낸 한 원인일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의 하락과 자유한국당 지지율의 상승 국면은 보수야당들에게 다음 총선에서 “한 번 해볼 만하다”라는 모티브를 줄 수 있을 걸로 보인다. 최근 20대 여론 논란에서 드러난 ‘명분보다는 실익’이라는 인식이 보수야당들에게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도 이런 생각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최소한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보수야당이 드라마틱하게 부활하는 시나리오는 현실이 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수야당에게 기회가 되는 이런저런 요인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지만 이들이 다수의 여론으로부터 ‘비호감’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결정적 조건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표적으로 전직 대통령들 문제가 그렇다. 자유한국당이 이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다음 국면으로 넘어간다면 앞서의 조건들이 기회 요인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게 계속해서 확인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김무성, 권성동 의원과 홍문종 윤상현 의원이 이른바 보수논객이라는 정규재, 조갑제 씨 등과 함께 모처에서 회동했다는 소식에서도 이 점이 드러난다. 보도에 의하면 이 자리에서 김무성, 권성동 의원은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들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사법당국에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이를 시작으로 해서 ‘반 문재인 빅텐트’를 만들어 보자는 게 이들이 제안한 담대한 구상의 핵심이었다고 한다.

구 친박계에 속했던 홍문종, 윤상현 의원 입장에서는 표면적으로 볼 때 거부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다. 하지만 홍문종 의원이 김무성 의원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고 보수를 분열시킨 것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면서 논의가 꼬였다고 한다. 김무성 의원이 난색을 표하자 홍문종 의원이 사과가 전제되지 않으면 함께할 수 없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 논쟁은 지난 6월 탈당해 현재 무소속인 서청원 의원까지 가세하면서 코미디와 비슷한 구도가 되고 있다. 서청원 의원은 지난 4일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고 당에 침을 뱉고 나간 사람들이 슬그머니 복당하더니 이제와서 반문 빅텐트론을 말하는 것은 후안무치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정치는 대도무문”이란 표현까지 등장했는데, 결국 같은 상도동계 출신인 김무성 의원을 겨냥한 행동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원내대표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고 이후에는 곧 전당대회 레이스가 본격화된다. 원내대표 선거는 2강 2중 구도를 전망하는 시각도 있지만, 결국 김학용 대 나경원 구도로 치러질 거라는 분석이 다수다. 김학용 의원은 김무성 의원이 새누리당 대표일 때 비서실장을 오래 했다. 나경원 의원은 과거 친이계로 분류됐지만 바른정당 창당을 거부하면서 ‘잔류파’로 묶을 수 있는 고리가 형성돼 지금은 구 친박계의 지지를 받고 있다. 여기에 김무성 대 서청원이란 구도가 형성되니 결국 ‘친박 대 비박’에서 벗어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 이른 것은 아무래도 조직적 구심이 와해된 상태인 구 친박계가 과거의 계파 대결 구도를 되살려 당내선거에 활용하려는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하는 게 합리적일 것 같다. 사실 양쪽은 ‘반문 빅텐트’의 범위에 대해서도 미묘한 인식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나경원 의원이 “태극기부터 안철수까지”로 범위를 명확히 하고 있는 데 반해 김학용 의원은 이른바 태극기 세력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의 경우 최근 당외의 보수세력과 네트워크적 관계를 가지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는데, 결국 태극기 세력의 직접 입당은 부담이라는 얘기로 받아들여진다. 태극기 세력의 결합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들의 복당 여부와도 연결된다. 결국 여전히 보수재편의 핵심은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 기반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양대 계파가 서로 사이좋게 양보해서 단결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지만 다음 총선의 공천 문제가 남는다는 게 문제다. 보수세력의 재편은 결국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 조정과 맞물릴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구 친박계는 자신들이 희생양이 될 거라는 공포심을 느끼고 있다. 홍문종 의원 등이 공공연히 분당론을 언급하는 배경에 이런 인식이 있다. 안 되면 ‘TK자민련’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복당파’로 불리는 현재의 당 주류 입장에서 구 친박계의 분당론이 부담스러운 것은 보수세력이 추가로 분열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문제가 다음 총선에서 다시 점화되는 상황을 우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 거드는 것은 자유한국당 일각에서 계속해서 언급되는 박근혜 사면 시나리오이다. 문재인 정권이 적당한 명분으로 전직 대통령을 사면하면 보수세력 입장에선 이들이 여론에 노출된 채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된다. ‘문재인 정권 반대’ 프레임이 ‘이명박근혜 대 문재인’ 구도로 전환되고 이래서는 이길 수 없다는 거다.

물론 특히나 사면에 인색한 이 정권이 전직 대통령을 사면해줄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런 결정은 지지층 분열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시나리오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자유한국당의 처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보수세력이 이 정권 내에 유의미한 전열 정비 정도를 할 수는 있겠지만 총선에서 부활하거나 정권을 교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본다. 바꿔 말하면 이런저런 위기를 겪고 있다고는 하지만 문재인 정권으로서는 한국 사회를 뿌리부터 개혁할 수 있는 기회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성급히 민주노총 등과의 밀월관계 종료를 말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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