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2018년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내세운 마지막 작품은 월화 미니시리즈 <나쁜형사>이다. 2016년 <피리부는 사나이> 이후 2년 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신하균을 주인공 나쁜 형사인 우태석 역으로 내세운 이 드라마는 영드 마니아들 사이에서 이미 입소문이 자자했던 <루터>의 '리메이크' 작이다.

또 한 편의 영드 리메이크

MBC 새 월화드라마 <나쁜형사>

그간 우리나라에서 스테디셀러가 되다시피 했던 일드(일본 드라마)나 미드(미국 드라마)의 리메이크 작들이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이나 <미스트리스>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올해는 부진했다. 그런 상황에서 <라이프 온 마스>가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에서 성공하며, 제작 편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콘텐츠 고갈에 시달리는 드라마 시장에 '영드'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셜록> 신드롬에서 보여지듯 우리에게 '영국 드라마'는 낯선 것이 아니다. 거기에 이미 다수의 영드들이 미드로 번안되고 있듯이, 그 작품성과 대중성 면에서 영드는 세계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중이다.

그 가운데 MBC 월화드라마로 영드 <루터>가 등장했다. <셜록>, <라이프 온 마스> 등을 통해서 보여지듯 '영국 추리물 혹은 수사 드라마'는 독특한 설정과 서사 구성으로 이미 마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제 시즌 4를 마친 <루터> 역시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루터>를? 아니나 다를까. 지상파 10시에 방영하는 미니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루터>의 리메이크 작 <나쁜형사>는 19금의 딱지를 달고 시작했다. 15세가 보기에는 잔인해서? 아니 그건 태생적으로 19금 캐릭터를 품은, 한국으로 온 루터 우태석 형사 때문이다.

마블의 <토르> 시리즈에서 아스가르드의 문지기인 헤임달 역할로 우리에게 얼굴을 알린 이드리아스 엘바가 분한 루터는 영국의 강력범죄 수사관이다. 범죄자 심리 파악에 능하고 거기에 뛰어난 관찰력으로 사건해결 능력이 뛰어난 수사관이지만, 형식과 절차를 무시하고 때로는 정의의 이름으로 ‘나쁜’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고 범죄자들을 응징하는 바람에 늘 감사의 대상이 되는 골칫덩어리이다.

바로 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의를 구현'하는 이 캐릭터가, 그간 늘 법의 테두리 내에서 악, 심지어 권력의 비호를 받는 거악 앞에서 자괴감을 느끼며 무릎을 꿇어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했던 우리 수사드라마 풍토에 신선한 인물 우태석으로 돌아왔다.

신하균 맞춤의 우태석 표 나쁜 정의

MBC 새 월화드라마 <나쁜형사>

우태석. 전국 강력범죄 검거율 1위. 넥타이까지 갖춰 맨, 딱 떨어지는 슈트에 멋들어진 중년 형사지만, '죄지은 자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죗값을 치르게 한다'는 그의 신조로 인해 그의 수사 방식은 늘 윗선을 좌불안석에 떨게 만든다. 또한 감사와 감봉의 처지에 그를 놓이게 만들고, 그런 그가 불안하다며 아내는 이혼 서류를 내민 형편이다.

'잘 할게, 처갓댁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할게'라는 그의 읍소에 아내는 반문한다. '과연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걸 놔두고 달려올 수 있겠는가'라고. 그리고 이혼하기 싫으면 형사를 그만두라 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아내의 요구에 응하는 대신, 어린 아이를 놔둔 채 사라진 젊은 엄마의 실종 사건을 쫓는다. 그리고 거기서 초보 순경 시절 그를 좌절케 만들었던 검사 장형민(김건우 분)과 조우한다.

그가 잡은 아이 납치범을 강압 수사라며 구속영장을 발부해 주지 않은 검사. 하지만 단지 그 사건 이상 우태석을 오늘의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으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장 검사다.

MBC 새 월화드라마 <나쁜형사>

실종된 여고생을 찾아 풀숲을 수색하던 그날, 밤늦은 시각 그곳을 배회하던 또 다른 여고생에게서 그는 사건의 단서를 발견한다. 자신에게도 너 같은 동생이 있으니 보호해주겠다며 약속을 했던 그. 하지만 그런 그날의 약속은 처참한 사고 현장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이제 우태석은 그날의 사건 현장의 목격자와 같은 어린 아이를 아무 것도 모른다며 보호하는 대신, 장형민에게 '미끼'를 던진다.

피해자의 치아를 날로 뽑아대며 쾌감을 느끼며, 그 고문현장의 증거를 깔끔히 인멸하는 그의 용의주도한 범죄 방식을 역으로 이용하여 현장을 조작하는 듯한 인상을 줘 장형민을 사건 현장으로 불러들인 우태석. 그리고 대부분의 수사 드라마가 그러하듯 음산하고 위험한 공장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던 두 사람은 앞서 장형민이 구속영장을 발부해 주지 않은 그 사건에서처럼 난간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된다.

난간에 매달린 장형민. 그런데 우태석은 앞서 사건보다 한 술 더 뜬다. 양손으로 매달린 장형민의 손을 구두로 짓밟고, 결국 높은 난간에서 떨어져 죽고 만다. 아마도 장형민의 손을 잡아 법의 심판대로 갔다면 검사였던 그의 신분으로 '법망'을 유유히 피해갈 수도 있을지도 모를 상황. 우태석은 그런 번거로운 절차 대신 이미 10년 전에 죽었어야 했다며, 그랬다면 아이 엄마도 죽지 않았을 거라며 스스로 '심판자'가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장면이 이 드라마가 ‘19금’인 이유가 된다.

MBC 새 월화드라마 <나쁜형사>

법의 절차 대신 스스로 '심판자'가 된 우태석. 그런데 놀랍게도 이 <나쁜형사>에 시청자는 동시간대 1위 7.1, 8.3%의 시청률로 답했다. 물론 거기엔 영드 <루터>의 이드리아스 엘바 저리가라 할, '나쁜 정의'의 캐릭터에 안성맞춤인 돌아온 '하균신'의 존재감이 크다. 그리고 ‘드라마왕국 부활’의 기치를 내걸을 만한 연출과 극본, 음향, 조명 등의 절묘한 조합이 거들고 있다. <라이프 온 마스>에서 이미 판가름 났듯 제 아무리 명작도 ‘탱자’가 될 수 있는 리메이크 시장에서 <나쁜형사>가 된 <루터>는 손색이 없었다.

19금이란 한계가 무색하게, 첫 회에 19금의 정당성을 선포한 스피디한 수사와 캐릭터 소개는 색다른 수사 드라마를 기대한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는 그간 '법'의 테두리 내에서 고전했던 수사 드라마에 갑갑함을 느끼던 시청자의 니즈가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이다.

첫 술은 배불렀다. <셜록>이 소시오패스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정신적 편력에 기반한 사건 수사를 배치해 나가듯, 거기에 한 술 더 떠 <루터>는 스스로 '나쁜 정의'를 자처하며 사이코패스와 공조수사를 펼치는 형사의 정신적 방황과 고뇌가 심도 깊게 펼쳐지는 사색적인 작품이다. 과연 이런 무게감 있는 작품을 <나쁜형사>가 우리 현실에 맞게, 연출자의 말처럼 ‘한국판 다크 히어로'로 승화시켜낼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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