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달간 월화 심야를 설레게 했던 동이가 마침내 12일 연장 60회로 막을 내린다. 허준과 대장금의 신화적 시청률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번 동이에 대해서 성공이라는 단어를 아끼고 있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월화 드라마 1위를 유지했으며 평균 시청률 20%대의 드라마를 실패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체로 사극 명가라는 대단한 수식어가 나타내듯이 이병훈 PD의 작품으로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라는 아쉬움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동이는 지난 이병훈 PD 작품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못하면서도 또 아주 크게 다른 점이 있었다. 이병훈 PD의 사극은 항상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특정한 전통문화를 크게 알리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그러나 동이만은 조선 왕조에 있어서 지금까지 다뤄왔던 의술, 요리, 그림 등보다 훨씬 중요했던 장악원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

장악원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이해조차 없는 작가와 제작진의 안일한 태도에서 비롯된 참담한 결과였다. 그 점은 기존 이병훈 식 사극의 전형적인 형식이면서도 명백하게 실패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앞서 다뤘던 것들보다 장악원이라는 배경 자체가 섣불리 도전할 수 없는 전문적인 영역임에도 제대로 된 현장 전문가 하나 없이 장악원을 그리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었다.

▲ 상반된 입장에 놓인 두 남자. 최철호는 나락으로 정선일은 무존재감에서 미친 존재감으로.
그뿐 아니다. 동이와 팽팽하게 힘의 균형을 통해서 긴장과 감정이입을 지탱해야 할 장희빈의 주력부대인 남인세력이 최철호의 폭행 사건으로 인해 정동환까지 참담하게 물러나게 되는 바람에 애초에 작가가 구상했던 그림이 구겨지게 됐다. 어차피 장희빈의 오라버니 장희재는 지나치게 가볍게 설정해서 도무지 동이를 핍박하는 포스를 보일 수 없었던 바, 정동환 사단의 퇴출을 장무열(최종환)로 바꿔치기 해 잠시 묵직한 존재감을 보였으나 결국 막판에는 시쳇말로 쩌리 취급을 당하고 말았다.

대장금과 이산에 이어 세 번째 조선의 여걸로 선택된 동이는 지금까지의 이병훈 PD의 여주인공들과 달리 슈퍼동이라는 별명이 붙었듯이 개연성 없는 초능력 발휘로 인해서 전작을 뛰어넘는 성과를 얻기는 진작부터 무리한 일이었다. 그 점에서는 한효주의 열심과 성실이 참 아쉬운 대목이다. 그에 대해서 한효주의 연기력을 문제 삼는 이도 있는데 이는 조금은 다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동이는 대장금과 이산과 달리 남녀 주인공의 달짝지근한 연애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그 달콤한 사탕을 입에서 빼지 못한 드라마는 개연성을 갖춰 스토리에 몰입하게 만들기보다는 동이와 숙종의 달콤한 사랑 이야기에 집착하게 됐다. 입에 단 것은 몸에 나쁘다고 동숙의 러브라인은 분명 동이 마니아를 양산시킨 원동력이지만 좀 더 폭넓은 시청자군을 유인하고 만족시키기에는 부족감이 있었다. 대장금과 달리 동이는 숙종을 멀리 떠나 있을 수 없었고 그로 인해 동이가 겪어야 할 좀 더 혹독한 시련은 아주 짧게 끝나버렸다.

▲ 60회의 동이가 만들어낸 수많은 장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개인적으로 이것이다.
지금까지 동이에 대해서 고증을 요구한 적은 없었으나 동이가 가장 실패한 부분은 역사적 배경에서의 리얼리티와 개연성이다. 이는 고증과는 다른 것이다. 드라마가 작가의 상상과 의지에 의해서 허구를 구성하게 된다. 지금까지 사극들이 고증을 중요시 여겼으나 동이는 가채를 벗어버린다는 선언부터 시작해서 고증에 얽매이지 않을 것을 암시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앞서 지적한 역사적 리얼리티와 개연성마저 무시한 진행은 바쁜 동이의 발목을 잡는 스스로의 함정이었다.

결정적으로 동이가 실패한 것은 조연의 몰락에 있다. 캐스팅부터 운영까지 동이의 조연들은 끝날 때까지 특별한 재미나 의미를 보여주지 못했다. 다만 동숙 러브라인에 편승한 상선 정선일만이 한 때 누리꾼들로부터 뜨거운 인기를 독차지한 정도이다. 허준부터 호흡을 맞췄던 이희도는 이광수와 짝을 이뤘으나 이들의 소속인 장악원과 같은 신세가 돼버렸다. 이희도만큼이나 이병훈 PD의 단골인 임현식 대신에 이계진이 등장했으나 역시 마찬가지.

▲ 새로운 장희빈에 대한 기대감을 들뜨게 했던 이소연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선 단아 인현 박하선
올해 동이 말고도 많은 사극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드라마 세계를 강하게 지배한 것은 추노와 동이 두 작품이 아닌가 싶다. 그 외 김수로, 거상 김만덕, 명가 등이 있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추노가 주연은 물론 많은 조연들을 스타덤에 올려놓았듯이 동이 역시도 장희빈의 이소연과 인현왕후의 박하선을 어떤 측면에서는 동이 한효주를 능가하는 존재감으로 키워주었다. 그 정도가 동이가 배우들에게 선사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쨌든 3월 22일부터 10월의 중순 무렵까지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은 동이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다른 무엇보다 컸다. 그동안 칭찬보다 비판이 좀 더 많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비판할 열정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애정을 반증하는 것이다. 후반부에 들어서는 욕한 기억이 더 많은 동이지만 끝나는 것이 두렵다. 이제는 다섯 달간 시달렸던 월화의 기다림에서 해방되는 것이 홀가분할 듯하면서도 마치 십년 사귄 애인과 헤어지기 전날 밤 같은 심정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고운정 미운정 다 들었던 동이였다. 그리고 이병훈 PD가 다시 허준이나 대장금 같은 사극으로 반드시 돌아올 것을 기대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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