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감독은 국내 감독 가운데서도 가장 전술적인 이해도가 해박한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틈만 나면 유럽, 남미를 찾아가 현대 축구의 흐름을 따라가려 노력하고, 어떻게 보면 축구에 거의 미쳐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지도자가 바로 조광래 감독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무명 선수에 가까운 선수들을 정상급 수준의 실력으로 끌어올리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조 감독은 대표팀 감독을 맡아서도 점진적인 혁명을 준비하며 한국 축구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 훈련 지도하는 조광래 감독 ⓒ연합뉴스
그런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다양한 창의적인 전술 가운데서도 가장 해보고 싶어하는 것을 꼽는다면 바로 '포어 리베로'라는 일반 축구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포지션을 정착시키는 것입니다. 조 감독은 출범 직후부터 스리백을 가동하면서 기존의 스리백이 아닌 '변형 스리백 형태' 즉 세 명의 중앙 수비수 가운데 중앙에 있는 선수를 활용한 플레이를 시도하려 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이전 대표팀 감독과는 다르게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조광래 감독의 축구를 이해하고 있는 선수들, 이에 기량이 미치는 선수들이 많지 않다보니 두 경기에서 '포어 리베로' 실험은 거의 실패로 끝났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조광래 감독은 이번 한일전에서도 포어 리베로를 시도할 것이며, 이 역할을 조용형(알 라이안)에게 부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조 감독은 왜 아직 정착하기도 힘든 포어 리베로라는 것을 시도해보려 하는 것일까요

일단 포어 리베로라는 용어를 정의해보면 중앙에 위치한 수비수가 공격시 미드필더에까지 가담해 공격적인 역할도 맡는다 해서 fore(앞)를 앞에 붙여 Fore Libero로 부르고 있습니다. 본래 리베로는 특정 선수를 마크하지 않고 자유롭게 폭넓게 움직이면서도 플랫 3에서 최후방에 자리잡아 경기를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해내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요. 이와 다르게 포어 리베로는 기존 리베로보다 더욱 공격적이면서 일선에서 상대 역습을 차단해 후방의 두 중앙 수비수의 부담을 더는 역할을 맡는 특징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중앙 수비수임에도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입니다.

포어 리베로는 공격과 수비를 안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포지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포어 리베로가 수비에 가담하면 경우에 따라 플랫5까지 변형되는데요. 양쪽 측면이 내려오면 수비벽이 두터워지면서 수비 안정화에 큰 도움을 줍니다. 반면 본래 위치보다 다소 올라가 미드필더 위치에서 경기를 펼치면 아래에 있는 다른 중앙 수비수 두명과 측면 수비가 내려와 포백 수비로 변화되는 반면 미드필더 숫자가 1명 늘어나 중원을 강화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포어 리베로는 공격과 수비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과 동시에 허리 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을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어 잘만 활용하면 보다 박진감 넘치는 축구를 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중원 강화를 통해 빠르고 짧으면서 앞으로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전진 패스를 추구하는 조광래 감독 입장에서는 포어 리베로라는 포지션이 이런 이유 때문에 당연히 매력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이 부임한 후 이 실험을 두 번이나 했음에도 이렇다 할 성과가 나지 않은 것은 이 역할을 제대로 할 만 한 선수가 없었던데다 전술적인 이해가 아직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 포어 리베로를 제대로 소화하려면 안정적인 수비 능력만큼이나 경우에 따라 미드필더로 올라가 효과적으로 공격을 뒷받침하는 역할, 적극적인 패싱 플레이 등이 어느 정도 갖춰져야 합니다. 그런 만큼 빠른 생각과 탁월한 축구 지능도 요구되는 포지션인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바탕들은 갖고 있는지 몰라도 워낙 이전 감독과 다른 스타일의 능력을 요구받다보니 이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없었고, 결국 전형적인 스리백 형태로만 경기를 치러 '포어 리베로의 진정한 묘미'를 볼 수 없었습니다.

▲ 포어 리베로 활약이 기대되는 조용형 선수 ⓒ연합뉴스
그런 가운데서 조광래 감독은 이번 한일전에서만큼은 '포어 리베로'를 구사하겠다면서 그 적임자로 조용형을 지목했습니다. 남아공월드컵을 통해 풍부한 경험을 갖춘 수비수로 각광받고 있는 조용형은 안정적인 수비 능력뿐 아니라 공격에서도 날카로운 패싱 능력을 갖춰 이 역할을 어느 정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으로 조 감독은 내다봤습니다. 수비수 가운데서도 축구 지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것도 조용형의 이 포지션 소화가 능할 것으로 보는 큰 이유이기도 했는데요. 어쨌든 강한 미드필더를 갖춘 일본을 상대로 포어 리베로라는 변칙 전술 운영을 통해 조광래 감독은 또 하나의 창의적인 실험 축구로 선전을 자신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번 경기에서도 포어 리베로 실험이 정말로 합격점을 받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탄탄한 일본의 중원과 빠르게 전개되는 변칙 플레이에 밀려 수비에 치중하다가는 또다시 실험조차 해보지 못하고 물러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아직 전 세계적으로 포어 리베로가 정착되지 않은 것도 어쩌면 이 실험이 '무모한 도전'으로 끝날 수도 있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남아공월드컵에서 드러난 수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가 기존에 나와 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데다 오히려 여러 가지 장점을 살려내려 한 실험 정신만큼은 분명히 높게 평가해야 마땅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조광래 감독이 가장 해보고 싶어 하는 전술 가운데 하나인 포어 리베로가 당장 이번 한일전에서 완벽하게 성공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점진적으로 정착돼서 새로운 축구를 구사하는데 큰 역할을 해낼 수 있다면 상당히 흥미롭고 의미있는 포지션, 그리고 실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한 마디로 조광래 감독 그리고 태극전사의 새로운 시도에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흥미롭게, 관심 있게 볼 필요가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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