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경기는 경험이 풍부한 선수가 해낸다는 야구의 통설이 입증된 경기였습니다. 7:2로 넉넉하게 앞서던 삼성이 7회말 2사 후 6연타수 안타를 허용하며 거짓말처럼 7:7 동점이 된 후, 분위기는 두산으로 완전히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8회초 1사 2, 3루에서 박한이는 포스트 시즌 내내 호투하던 왈론드에게 희생 플라이를 뽑아내며 삼성이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한 2경기에서 모두 결승타를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경기 종반 8회에 얻은 타점으로 1점차 승리로 귀결되었기에 더욱 값집니다.

▲ 8초 1사 2,3루 삼성 박한이가 1점을 리드하는 희생 플라이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박한이의 타점으로 8:7로 앞선 8회말 2사 3루의 동점 위기에서 등판한 배영수는 최준석을 범타 처리하며 위기에서 벗어났고, 9회말에는 삼진 2개 포함 삼자 범퇴로 깔끔히 처리하며 삼성의 그 어떤 투수도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달아오른 두산의 타선을 상대로 완벽한 세이브를 따냈습니다. 오늘 배영수가 과시한 마운드에서의 배짱과 승부 요령은 전성기였던 2006년 한국 시리즈를 연상시킵니다. 정현욱, 권혁, 안지만이 모두 무너진 상황에서, 애당초 선발로 분류된 배영수의 호투로 인해, 삼성의 포스트시즌이 종료될 때까지 배영수가 마무리로 옮겨갈 것으로 보입니다. 10시즌 이상을 경험한 박한이와 배영수가 삼성의 승리를 견인했습니다.

▲ 경기를 승리로 마친 삼성 투수 배영수가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1점차 신승으로 승부를 홈인 대구로 끌고 가는 삼성이지만 선동열 감독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듯합니다. 3차전까지 정현욱, 권오준, 권혁의 부진이 확연했고, 오늘은 믿었던 안지만마저 무너졌습니다. 7:3으로 앞선 7회말 2사 만루에서 등판해 3연속 적시타로 7:7 동점을 허용한 것은 안지만답지 않은 최악의 투구였습니다. 8회말 선두 타자 오재원에게 볼넷을 내줬고, 이종욱과 김동주의 타구도 매우 잘 맞은 타구로 야수들의 호수비가 아니었다면 역전을 허용했을 것입니다. 연속 안타를 허용하며 자신감을 상실하자 제구마저 흔들렸습니다. 기록상의 승리 투수는 안지만으로 남았지만, 더 이상 안지만에게 마무리를 맡기기는 어려워졌습니다. 따라서 삼성은 5차전에서 선발 차우찬, 마무리 배영수를 제외한 모든 투수들을 중간에 대기시켜 투입하는 소위 ‘벌떼 야구’로 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 7회말 2사 1,2루 상황. 두산 이원석의 적시타 때 홈인하며 동점을 만든 김현수가 세이프 동작을 하며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두산은 7회말 놀라운 집중력으로 동점까지 만들었지만, 그에 앞서 지나치게 쉽게 실점한 부담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두산이 중반까지 쉽게 무너진 것은 배터리가 기본적인 수비에서 허점을 노출했기 때문입니다. 2회초까지 1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던 선발 홍상삼은 3회초 무사 1, 2루에서 김상수의 번트 타구를 3루에 악송구하며 대량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김상수에 뒤이은 조동찬의 번트를 처리하지 않고 3루수 이원석에게 미루며 안타로 만들어준 것이 추가 2실점의 화근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실책성 플레이를 범할 수 있지만, 동일한 번트 수비에서 연속으로 2개를 범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홍상삼은 앞으로 번트 수비에 상당한 트라우마를 겪을 것으로 보이는데, 만일 두산이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더라도 현미경 같은 분석을 바탕으로 상대 약점을 파고드는 데 능한 SK가 홍상삼이 등판할 경우 번트로 뒤흔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포수 양의지도 아쉬웠습니다. 5회초 2사 만루에서 진갑용을 삼진 처리한 투구를 뒤로 빠뜨리며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으로 실점했고, 이어 신명철의 타석에서 블로킹에 실패해 폭투로 실점했는데, 둘 모두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양의지가 진갑용을 삼진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포구해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을 허용하지 않았다면, 5회초에 3실점은커녕 단 1실점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즌 20홈런으로 신인왕을 확정지은 양의지이지만, 인사이드 워크에서는 아직 섬세함이 부족합니다. 반면 삼성의 진갑용은 6회말 손시헌의 좌전 안타에 홈에 쇄도한 2루 주자 김동주를 절묘하게 블로킹으로 막아 아웃시켰는데, 결국 1점차로 승부가 갈렸음을 감안하면 결정적인 호수비였습니다. 양 팀 주전 포수의 경험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 6회말 두산공격 1사1,2루에서 7번 손시헌의 좌전 안타때 2루주자 김동주가 홈으로 쇄도하다 포수 진갑용의 블로킹에 막혀 아웃되고 있다 ⓒ연합뉴스
두산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올린 김성배, 성영훈, 김창훈이 의외의 호투를 했고, 하루 만에 중간에 등판한 에이스 김선우가 부진했다는 점에서 뒷맛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승부수를 띄우기 위해 중간에 등판시킨 선발 에이스가 부진하고, 추격조로 등판시킨 투수들이 호투하는 두산이나, 철벽이라 믿었던 중간 투수들이 줄줄이 난타당하는 삼성을 보며 계산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야구의 의외성의 매력을 새삼 절감하게 됩니다. 플레이오프 최종 5차전 역시 양 팀의 투수진이 바닥난 상황에서 난타전이 예상되며, 실책이나 주루사와 같은 본 헤드 플레이로 한국시리즈 티켓의 향방이 좌우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준플레이오프에 이어 플레이오프도 최종전까지 치달으며 SK와 KBO는 함박웃음을 짓게 되었습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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